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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위에서 부는 바람도 시원함을 잊은 지 오래다.

(여름을 보내며)

by 바람마냥

여름이면 더워야 하고, 겨울은 추워야 한다. 사계절이 뚜렷한 삶에 익숙했던 사람들이었다. 여름이 더워야 곡식이 잘 영글고, 겨울이 추워야 이듬해 병충해가 없다 했다. 올해는 더워도 너무 더운 여름이다. 장마철이 길게 이어저 더위가 머뭇거리기도 했지만, 근래에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짧은 장마가 끝나고 무더움이 이어지는 여름이다. 여름에는 더워야 한다는 더위는 대략 32~33도였다. 사정은 많이 달라졌다. 숨을 쉬기에도 불편할 정도의 폭염이 이어지고 있다.


저녁이면 수채화를 그리러 화실에 간다. 골짜기에서 10여 킬로 떨어진 도심 속 화실이다. 화실을 나오자 후끝하는 날씨에 숨이 멎는다. 차량에 올라 확인온도는 37도. 야, 얼른 도망가야겠다는 생각으로 도심을 빠져나왔다. 전 속력으로 달려온 골짜기의 온도는 25도 안팎이다. 조금 있으면 잘 수 있을 정도의 골짜기가 고마운 밤이다. 어떻게 체온을 넘어서는 온도가 될까?


선풍기는 이미 날개가 돌아가는 기계에 불과하다. 따스한 바람이 나오니 에어컨에 기댈 수밖에 없다. 자연 바람에 익숙한 사람은 에어컨이 두렵다. 좁은 공간에서 찬바람은 머리가 아프다. 맞바람을 피하려 구석으로 숨지만 역시, 아픈 머리는 막을 수 없다. 이래저래 더운 여름, 일을 하든지 운동을 한다. 열심히 땀을 흘리고 샤워를 한 후의 후련함은 잊을 수 없어서다. 젊음이 넘칠 때의 기억일 뿐이다. 세월은 점점 흘렀고, 고희의 세월이 되었다. 오래전 어머님의 생각이다.


더위가 너무 힘든다는 말씀. 왜 더위가 힘들까? 그늘에서 쉬고 찬물로 샤워를 하면 될 텐데. 철부지의 가당치도 않은 생각이었음은 한참이 지나고서 알게 되었다. 왜 더위가 힘든지 이제야 알게 되었고, 추위가 힘든지도 알게 되었다. 사람 체온에 가까운 온도가 연일 이어진다. 햇살이 따가움에 인적이 드문 산골은 고요하다. 가끔 오는 택배차량만 요란하게 오고 간다. 작은 텃밭의 채소도 고개를 숙였다. 따가움에 질린 듯이 잎이 늘어져있다. 아침, 저녁으론 싱싱했던 열무가 축 늘어진 모습이 안타깝다.


모든 길은 아스콘으로 덮여있고, 산길마저 야자매트를 깔았다. 인간이 편리함만을 위해서다. 에어컨 실외기 소리가 대지를 흔든다. 산 위에서 바라본 도심은 시멘트의 집합체다. 빽빽하게 들어선 아파트가 숨을 막히게 한다. 열로 데워진 아파트가 또 열을 뿜어 낸다. 움직이는 차량이 토해내는 더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땅덩어리다. 악순환이 반복되고 또 이어진다. 그늘에 앉아 느긋하게 바람을 일으키던 부채는 오간데 없다.


산을 넘은 바람에도 따가운 햇살이 묻어있다. 바람의 모양만 갖추었을 뿐 바람이 아니다. 산 위에서 부는 바람도 시원한 바람이 아니다. 누구는 지구인이 단체기합을 받는 중이라 했다. 연일 이어지는 폭염을 설명할 수 없었나 보다. 에어컨에 기대는 수밖에 없는데, 실외기가 돌아가며 지구를 데운다. 소나기라도 와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어쩐 일인지 어림도 없는 기다림이다. 더워도 한창 더운 여름날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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