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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채소가 가득한 텃밭을 통째로 물려받았다.

(어설픈 농촌 일기)

by 바람마냥

아침부터 이웃이 부르는 소리다. 아내가 들고 오는 것은 오이 서너 개다. 여름이면 주고받으며 이웃임을 확인하는 농산물이다. 가지가 몇 개 와 있고, 호박이 담긴 검은 봉지가 걸려있다. 옥수수와 청양고추도 와 있다. 모두가 고마운 이웃들의 정성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오이를 심고, 가지를 심었다. 자그마한 텃밭에 식물이 크는 재미를 보고 싶어서다. 값으로 따지면 언제나 손해지만 그 보다 더한 환희가 있어 올해도 어김이 없다. 새싹이 나오고 열매를 맺는 모습은 어디서도 얻을 수 없는 환희다.


토마토를 심고, 옆으로 오이와 가지를 대여섯 포기씩 심었다. 올망졸망 토마토가 붉게 익어가는데 오이는 소식이 없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소식이 없던 오이가 힘을 내기 시작했다.


넓은 잎 속에 숨은 오이를 아내에게 알려주자 그러면 그렇지 하면서 함박웃음이다. 서너 개의 오이가 싱싱하게 자라고, 보랏빛 가지가 주렁주렁 달렸다. 작은 시골의 텃밭이 주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부산 사는 딸한테도 주고 남은 가지가 천연의 보랏빛을 자랑한다. 서서히 오이가 달리기 시작하더니 곳곳에서 오이가 보인다. 주렁주렁 오이가 열리면서 줄기가 찢어질까 두렵다. 이곳저곳에 오이가 열려 가지가 늘어져 있음이 아슬아슬하다.


처절한 장마가 지나고 무더위가 내려온 골짜기다. 한낮이면 숨을 쉬기조차 어려운 날씨가 당황스럽다. 텃밭에 아침, 저녁으로 물을 준다. 물도 주지 않고 오이와 가지를 바라긴 미안해서다.


며칠 전, 체육관에 들어서자 회원들이 운동에 열심이다. 시골의 아침의 일찍부터 서두르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고단함에 일찍 잠자리에 들어 새벽부터 서두른다. 운동도 서두르고 들일도 서두른다. 시원할 때 마쳐야 하기 때문이다.


운동을 나온 이웃이 묻는다. 가지를 심었느냐고. 자기 차에 가지가 열댓 개 있으니 필요하면 가져가란다. 너무 많이 달려서 다 먹을 수가 없단다. 고마움에 얼른 고맙다는 말을 하며 가지를 건네받았다.


시골살이의 즐거움이다. 많으면 나누고 어려우면 도우며 살아간다. 시골에서의 재미가 무엇이겠는가? 골짜기에서의 피서는 특별할 것이 없다. 여기가 피서지이니 하면서 여름을 나곤 한다. 하지만 이웃에 사는 친구는 여름이면 어김없이 피서를 떠난다.

오늘 아침, 피서를 떠나는 친구부인이 오이를 가지고 온 것이다. 청양고추도 따 주고, 풋호박도 따주는 따스한 이웃이다. 오이를 주면서 부탁 아닌 부탁을 한다. 오늘부터 피서를 가야 하는데 걱정이란다. 피서를 가 있는 동안 호박이 늙으면 맛이 없단다.


맛있는 호박을 늙게 할 수는 없으니 호박이 늙기 전에 따다 먹으란다. 어렵게 길러낸 호박,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며 정성을 들인 호박이다. 가지가 있고, 호박이 있으며 오이가 있는 텃밭이다. 아무 걱정 말고 따다 먹으라는 이웃, 피서를 가면서 자기 텃밭을 내어준 것이다.


시골 사는 재미는 곳곳에 있다. 소낙비 피하는 사람에게 우산을 건네주고, 텃밭의 채소를 이웃에게 건네준다. 피서 가는 동안 텃밭을 내어준다. 아직도 남아 있는 이웃들의 따스한 정이다. 오늘 아침 받은 오이 서너 개, 체육관에서 가지을 얻었고 텃밭을 통째로 받았으니 오래도록 골짜기에서 살아야겠다. 무더위 속에 맞이 한 아침이 산뜻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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