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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짜기 어느 부부의 잔디 깎는 풍경

(잔디를 갂았다)

by 바람마냥

전원 살이의 으뜸은 맑은 녹색의 잔디밭이다. 잔디밭에 큼직한 소나무가 있고, 소나무 그늘에서 삼겹살을 굽는 풍경은 포기할 수 없다. 무시할 수 없는 전원 살이의 풍경이자 로망이다. 시골에 자리를 잡고 잔디밭을 가꾸고 있다.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꿈을 실현하고 싶어서다. 넉넉히 70여 평, 오늘 아침도 어김없이 잡초를 뽑아내고 있다. 어느 것이 잡초일까?


친구들이 권한다. 잔디밭용 제초제를 뿌리라고. 아직은 버티고 있음은 시골에 살려면 그만한 대가는 지불해야 한다는 지론 때문이다. 손수 잔디밭에 잡초를 뽑아내고, 잔디를 깎는다. 적당한 기계가 없으니 일일이 뽑아내고, 낫으로 깎아야 했다. 요일별로 구역을 정해 놓고 잔디를 깎았다. 시원한 아침에 부분별로 깎는 잔디밭은 그럴듯했다. 오래전 내 아버지 모습이다. 산소를 말끔하게 낫으로 정리했던 아버지다.


꾸준히 잡초를 뽑고, 잔디를 깎아내는 일은 할만했다. 아직도 젊음의 끝이 남아 있어서이지만, 시골살이는 아내의 도움이 절대적이다. 혼자서는 어림도 없는 일, 아내의 도움이 용기를 주고 힘을 얹어 준다. 한두 해가 지나며 서서히 힘에 겨웠다. 잡초를 뽑는 일도, 낫으로 깎는 일도 힘들었다. 친구들은 또 핀잔이다. 제초제를 뿌려 보라고. 아직은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며 고집을 부리지만, 몸은 힘겨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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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초기를 구입해 잔디를 깎을까? 부모님 산소의 풀을 깎던 경험이 떠 오른 것이다. 예초기의 사용도 어렵다. 예초기 작동하는 소음과 떨림은 온몸을 흔들어 놓는다. 평상시 운동으로 다진 몸이지만 온몸이 뻐근해 며칠을 고생한다.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다 잔디 깎는 기계를 구입했다. 이런저런 정보를 얻어 구입한 잔디깎이는 그럴듯했다. 손잡이를 잡고 잔디밭을 이리저리 누비기만 하면 예쁜 잔디밭이 되어갔다.


전기를 이용해야 하는 기계도 아내의 도움이 필요했다. 전선을 잡아 주며 뒷정리를 해줘야 해서다. 순식간에 잔디밭을 정리하고 나면 마음까지 후련했다. 낫으로 정리하던 것보다 훨씬 수월했으며 잔디밭의 모습도 그럴듯했다. 시골생활 몇 해가 지난 오늘, 올해 들어 두 번째 잔디를 깎았다. 어김없이 아내가 도우며 깎는 잔디밭, 찌는듯한 더위에 땀이 흐른다. 기계는 전과 같지만 몸은 더 고단하다. 감당할 수 없는 땀에 허리가 뻐근하다. 세월이 만들어준 몸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아내와 정리한 잔디밭은 깔끔해졌다. 허리를 펴고 바라보는 잔디밭, 세월이 만든 몸은 어질어질하다. 거뜬하게 낫으로 정리하던 잔디밭이 기계를 이용해도 고단하다. 아내가 그만하라며 다그친다. 땀으로 얼룩진 몸이 어쩔 줄 모른다. 수건으로 닦아낸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농부들은 어떻게 일을 하고 있을까? 무더위를 견디며 일을 했던 부모님이다. 검게 변한 수건으로 땀을 닦으시던 아버지, 어머니는 어떠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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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물을 한 컵 마시고 난 아침은 개운하다. 잔디밭이 정리되었고, 주변이 말끔히 청소되었다. 깨끗함을 바라보는 몸은 견디기 힘들어한다. 시골살이의 꿈, 푸르른 잔디밭은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고단함이 있고 노력이 있어야 하며, 소진되지 않은 체력이 있어야 한다. 남들은 보기 좋다며 환호하지만 여기엔 고단함이 가득하다. 아이들을 시켜 잔디를 깎아 볼까? 아이들이 찾아와 잔디를 깎으려 할까? 괜히 허튼 고민이라는 생각에 고개를 젓는다. 시골살이의 지론은 고집해야겠다.


아름다운 시골살이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돈으로 해야 하고 노력으로 해야 한다. 서서히 쇠잔해 가는 체력을 탓해보지만 세월 탓만 할 수는 없다. 남은 근육을 보전하며 길러야 한다. 아직은 더 해봐야 하는 시골살이이기 때문이다. 땀을 흘린 후의 아름다움은 고단함을 떨쳐낸다. 와, 이런 맛이구나! 아내와 함께하는 고단함 끝에 맞이하는 후련함이다. 삶을 위한 대가는 지불해야 하지만 아픈 허리와 차오르는 숨은 숨길 수 없다. 어떻게 할까? 오늘도 땀을 흘리며, 끝나지 않는 해결책을 고민하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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