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정원이 주는 환희)
자그마한 잔디밭엔 아직도 꽃들이 핀다. 봄부터 여름까지 갖가지 꽃으로 메웠던 정원, 하얀 구절초가 해맑은 꽃을 피웠다. 직사각형 모양의 잔디밭, 한 변은 주황빛 메리골드가 차지했다. 메리골드는 차맛도 좋지만 해충을 물리친다는 소문에 아내가 심은 것이다. 어떻게 저런 빛이 나올까, 골짜기의 꽃을 보면서 언제나 나오는 말이다. 와, 꽃을 보며 감탄하고 햇살을 보며 숨이 멎는다.
한 변이 주황빛 메리골드면 다른 두 변은 구절초가 메웠다. 하양이 맑음을 먹은 구절초, 몇 년 전에 심었던 구절초가 꽃을 피운 것이다. 지난해까지도 몇 송이만 피어 서운했다. 퇴비를 주고 잡초를 뽑아주며 하양을 기대했던 구절초, 몇 년 전에 200여 포기는 심었다. 가을날의 구절초가 좋아 심었던 꽃이다.
직사각형 두 변의 차지하고 있는 구절초, 작은 틈에는 노란 산국이 노리고 있다. 산에 올라 향에 반에 옮겨 심었던 산국이다. 먼 산에 일렁이는 노랑은 가을날의 선물이었다. 고속도로변이며 얕은 산에는 어김없이 노랑이 자리를 잡는다. 노랑 산국이 온 가을을 차지함이 너무 아름다웠다. 한 무리의 산국을 옮겨 심었지만 햇살이 부족한 뒤뜰은 어림도 없었다. 여기에 앞산엔 세상을 압도하는 하양이다.
어떤 꽃이 저렇게도 피었을까? 오가는 사람들이 묻는데 알 길이 없다. 하양을 가득 실은 가을의 열매, 종족번식을 위해 씨앗을 날리고 있는 하양이다. 개망초꽃일까 아니면 엉겅퀴가 가을을 알려주는 것일까? 벌목을 하고 난 곳엔 작은 자작나무가 흔들거리고, 군데군데 온 산엔 하양이 가득이다. 이름도 낯선 주홍서나물, 붉은 서나물이란다. 언제 저렇게 많이 번져 있었을까? 아무도 몰랐던 서나물의 존재다.
잎이 소의 혀처럼 까끌까끌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 소의 혀나물이란다. 소의 혀나물 즉, 쇠서나물이 다시 서나물이 되었다는 식물이다. 주홍빛 꽃이 아래로 향한 것은 주홍 서나물, 붉은빛 꽃이 하늘로 향한 것은 붉은 서나물이란다. 서나물의 씨앗이 하얗게 가을산을 덮었다. 씨앗을 날려 번식하려는 식물의 처절함이다. 존재조차 알지 못했던 서나물이었다. 내년 봄엔 어떤 모습일까가 궁금한 앞산의 하양에 구절초가 어울리고, 주황빛 메리골드가 노란 산국과 조합을 이룬 뜰이다.
골짜기에서의 삶은 늘, 어렵다. 비가 와도 힘겹고, 눈이 와도 걱정이다. 긴 장마는 어김없이 고단한데, 굳이 골짜기를 원하는 삶은 이런 이유에서다. 맑은 바람이 넘어오는 창을 열면 숨이 멎는다. 창을 열자 보여주는 거미들의 설치예술은 신비함이다. 여기에 이슬이 내렸고 햇살이 찾아왔다. 가을 햇살은 한 편의 시라고 하지 않던가? 여기에 무엇을 더 바랄 수 있다던가? 가을을 알려주는 꽃이 더해진 것이다.
하얀 구절초가 피었고, 메리골드에 산국이 거들었다. 이름도 낯선 서나물이 하양을 가득 뿌리고 있다. 온통 하양으로 물든 골짜기에 맑은 달빛이 찾아온다. 차갑지만 맑은 달빛이 찾아온 골짜기는 고요함뿐이다. 아무 생각도 고민 없이 바라보는 골짜기, 갑자기 바람이 찾아왔다. 살갗에 돋아나는 잔잔한 소름, 마음에도 가득한 가을날이 찾은 저녁이다. 가을이 더 깊어지만 갖가지 색깔로 단풍이 찾아오리라.
산을 넘은 바람 따라 일렁이는 하양의 무리들, 자그마한 자작나무가 박자를 준다. 앞면을 보여주다 뒷면으로 넘아가는 자작나무의 몸짓이다. 언젠가는 앞산을 하얗게 메울 자작나무의 흔들림이다. 고고한 흰빛의 자작나무에 하얀 달빛이 내려오고, 여기에 구절초가 어울렸다. 무슨 조합이 더 필요하단 말인가? 서서히 달빛이 잦아들면 외로운 가로등만이 서 있는 골짜기, 슬쩍 울어주는 소쩍새 소리는 어김없는 가을이다. 여기는 사람과 자연이 함께하는 골짜기 속의 작은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