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다시 만난 지난가을의 그 햇살

(가을에 만난 햇살)

by 바람마냥

언제나 무심히 대하며 살았던 햇살이다. 자연이 주는 햇살에 무관심했고, 늘 그러려니 하며 살아온 삶이다. 은퇴하면서 골짜기에 자리를 잡았고, 조금은 여유로운 삶이다. 근근이 살아갈 연금으로 하고 싶은 것을 해 가는 일상에서 만난 햇살은 대단했다. 어떻게 이런 햇살을 무시하며 살아왔을까? 유럽을 배낭여행하면서 만났던 기억이다. 햇살에 눈이 멀어 온몸을 벗겨놓고 있던 사람들, 이래서 그랬구나라는 생각을 하는 아침이다.


창문을 열자 오늘도 시끄럽다. 추녀밑에 자리를 잡은 참새다. 무슨 할 말이 그렇게도 많은지 끝이 없다. 아무리 손사래를 쳐도 잠시뿐이다. 앞산으로 건너간 눈빛, 숨이 멎어버렸다. 맑은 햇살이 쏟아내는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야, 이렇게 맑은 빛을 본 적이 얼마만인가? 지난가을에 만난 그 햇살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 햇살을 오늘 아침에 또 만난 것이다. 한 곳에 머물지 못하는 햇살은 현란한 몸짓이다.


나뭇잎에도 떨어졌고, 이슬 위에도 앉아있다. 벌써부터 꽃을 피운 하얀 구절초가 환하게 빛이 난다. 햇살과 이슬이 만들어내는 으뜸 조합이다. 그 햇살은 공작단풍으로 튀어 올랐다. 어느새 붉음으로 갈아입은 잎에 내린 이슬과 햇살은 대단했다. 맑음을 머금고 튀어 오르는 햇살은 허공에서 빛이 났다. 언제나처럼 잔디밭에 내린 이슬은 잊을 수가 없다.


자잘한 잔디에 거미줄이 이어졌다. 밤새 거미가 그려 놓은 구부러진 선이 출렁인다. 이슬의 무게를 이겨내려 버티는 하얀 줄, 거기에 햇살이 앉아있다. 이슬의 무게에 더함이 없는 햇살, 오로지 맑음으로 빛을 더하고 있다. 맑음으로 빛나는 햇살이 앞산에도 가득 덮었다. 자잘한 가을의 흔적 위에 내린 햇살이다. 맑음이 튀어올라 빛이 되었고, 그 빛은 다시 튀어 오른다. 가을이 깊어지는 10월의 끝날에 맞이한 아침이다.


어느 가수의 노래가 떠오르는 10월의 끝날, 이젠 이해의 끝으로 가고 있다. 맑은 아침에 바라보는 나, 올해는 무엇으로 시간을 메우며 살았을까? 서서히 세월만 축내고 살아내지는 않았을까? 맑은 아침에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이다. 곳곳에서 축제가 열린다는 전갈이다. 연말이 다가오는 10월의 끝날, 나만의 축제는 어떤 것이 있을까?


올해도 어김없이 색소폰 연주회를 준비하고 있다. 어렵고 고단한 준비다. 회원들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치밀한 기획으로 준비해야 한다. 연주회장을 찾는 100여 명의 손님들께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다. 어렵게 준비한 연주회가 마무리되면 나만의 축제를 만들어야겠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준비해야 하는 나만의 축제는 무엇이 있을까?


이젠, 봄과 여름을 지나 가을의 끝자락을 넘고 있다. 서서히 나의 겨울이 오는 아침이다. 이 겨울을 서서히 아름다움으로 물들고, 소리 없이 떨어지는 낙엽처럼 그런 축제를 만들고 싶다. 어떻게 살아온 삶인데 하루도 허투루 보낼 수는 없어서다. 현란하게 빛나는 아침햇살처럼은 아니어도, 그냥 그런대로 살았다는 축제가 되었으면 좋겠다. 맑은 햇살이 건네주는 아름다음에 잠시, 삶을 되돌아보는 늦가을의 아침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