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을 준비하면서)
새벽에 눈이 뜨여 시계를 보니 3시다. 다시 자야지 하며 다짐을 했지만 허사임은 늘, 알고 있다. 왜 이렇게 새벽부터 요란을 떨까? 이 생각에 저 생각을 끌어다 붙이고, 순서를 바꾸며 또 되새김질에 끊임이 없다.
오늘이 김장하는 날이다. 멀리 사는 아이들이 김장을 한다니 집으로 오는 날이다. 일찍 눈을 뜨게 된 이유다.
평소 살아감도 바쁜데 김장을 한다니 어쩔 수가 없었으리라. 간단하게 구입해서 먹으면 될 일을 부모가 김장을 한다고 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어렵지만 집으로 오는 수밖에 없다.
김장하는 날, 아무 말없이 찾아오는 것이 고마울 따름이다. 부산 사는 딸은 회를 떠 온다 했고, 분당 사는 아들은 전복을 미리 보냈다. 김장하는 날에 푸짐한 점심상을 위해서다. 얼마나 다행인가?
혹시, 바빠서 오지 못한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무 말없이 찾아와 줌이 고맙다는 생각과 고맙다고 해야 하는가를 고민하게 한다. 아내는 며칠 전부터 고군분투 중이다.
무엇이 그리 살 것도 많고 준비할 것도 많다던가? 시장을 가자는 말에 따라나서는 길이 벌써 서너 번째다. 가끔은 퉁명스레 대답을 하지만 바로 후회하고 만다. 그렇게도 많은 준비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아서다. 따스함에 몸을 맡기다 6시가 넘어 일어났다. 이것저것 준비 할 것이 많아서다.
아내와 둘이 사는 살림살이, 뭐가 그리 필요한 것이 많다던가? 수도 없이 많은 물건들을 보며 한숨짓는다.
아내는 얼마나 머리가 아플까? 가끔은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는 이유는 그 많은 것의 소재를 알고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모든 것을 외우고 있을까? 어림도 없는 나의 기억력을 원망하기도 한다. 얼른 일어나 방정리를 해야 했다.
우스갯소리로 펜션주인이 손님 맞을 준비를 한다고 하자 아내는 반응이 없다. 왜 반응이 없을까?
대구 할 가치도 없다는 뜻인지 아니면 뭔 소리를 하는 거냐는 뜻인지는 알 수 없다.
청소기로 보이지 않는 구석구석 먼지롤 찾아 나섰다. 혹시, 머리카락이라도 있으면 불편해할까 해서다.
그냥 두면 안 될까? 제집에 아이들이 오는데 부모가 과한 반응인 것 같아서다.
먼지를 털어내고 물걸레로 바꾸었다. 일층과 이층을 밀고 닦아내니 마음이 개운하다.
이런 맛에 청소를 하는구나! 아이들 덕에 집안 청소를 했다.
얼른 방 안의 냄새를 바꾸기 위해 문을 열어 환기시키며, 청소를 했으니 이부자리를 새것으로 교체했다. 혹시나 하는 부모의 마음이다. 이부자리를 새것임을 알도록 한 편으로 쌓아 놓는다. 추운 동네에 왔으니 따스함을 유지해야 한다. 얼른 보일러를 틀어 놓고 실내 온도를 조절한다. 평소와는 전혀 다른 온도다.
기름값도 아끼지만 조금 더우면 불편하다. 조금은 서늘해야 상쾌하고 마음이 가볍다.
보일러를 가동하니 바닥이 따스하고 실내 온도가 높아졌다. 조금은 더운 느낌, 불편하다.
내가 불편하다고 서늘함을 선택하면 아이들을 싫어한다. 아이들의 온도에 맞추어 실내 온도를 맞추었다.
다시 할 일이 남아 있다. 세면장을 청소하고 수건을 바꾸는 일이다. 얼른 바닥과 세면대를 닦아낸다. 어느새 아내가 올라와 세재를 뿌리고 닦는다. 순식간에 해놓은 청소가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다.
깨끗하게 청소 한 세면장이 상큼하다. 아이들을 위한 부모의 청소가 끊임이 없다. 김장을 한다고 불러 놓고 집안 청소를 하고 있다. 오래전 나의 부모님은 어떠했을까? 자식들이 찾아오면 긴장하셨을까?
새 수건을 걸어 놓고, 말끔하게 정리된 집안의 조도를 맞추어야 한다.
언제나 절약하고 아끼는 것이 일상생활이다. 가급적이면 불필요한 전등은 자제한다. 웬만하면 어둠을 해소할 수 있을 정도를 유지하지만, 아이들은 달랐다. 밝은 빛을 선호하는 아이들이다. 왜 이렇게 어둡게 사느냐는 핀잔이다. 전구를 바꾸고 먼지를 닦아내야 마음이 편하다. 웬만하면 수건도 아끼고, 물도 아끼면서 살았다.
세월은 성큼 변했고, 삶의 방식도 바뀌었다. 시대 흐름에 따라 아이들도 따라가야 했다.
김장하는 날, 김장보다도 청소에 중점을 두고 있다. 아내는 김장준비를 하고 있지만, 주인장은 방청소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한참을 움직였더니 온몸이 나른하다. 아이들이 아비 집에 오는데 왜 이리 수선을 떨어야 할까? 세월이 만든 삶의 방식이 달라졌다. 아무 거리낌 없이 찾아갔던 우리 집, 아버지의 집이었고 나의 집이었다. 세월은 삶의 방식을 뚜렷이 바꾸어 놓았다.
시간이 나면 집을 찾아갔다. 하교 후에는 들로 나서 고추를 따고, 부모님을 도왔다. 부모님이 하는 일이니 당연히 해야 되는 일이었다. 부모님의 삶이 내 삶이었고, 내 삶은 부모님이었다. 한 방에서, 한 몸처럼 살아가던 방식이 방향을 바꾼 것이다. 아이들의 삶과 나의 삶은 달랐다. 방식이 변했고 살아감이 너무 달라졌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따라가야 할까 아니면 따라오게 하여야 할까? 당연히 전자를 택하고 만다. 아니면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김장하는 날 아침, 김장준비보다는 집안 청소를 하면서 드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