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짜기에서 만난 햇살)
운동을 마치고 들어선 골짜기에 햇살이 가득이다. 산 말랭이에도 내려왔고, 거실에도 앉아있다. 언제나 포기할 수 없는 햇살이 자리한 것이다. 이렇게 맑을 수가 있을까? 앞산에 내린 하얀 눈을 밟고 튀어 오른 햇살이 허공을 갈랐다. 눈이 부셔 바라볼 수 없는 맑음, 얼른 눈을 감고 말았다.
이내 손차양을 하고 올려 본 햇살은 여전히 아름답다. 도심에선 어디서도 만날 수 없는 맑음의 눈부심, 골짜기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 새봄이 문을 열었다.
자그마한 도랑물이 옹알거리는 골짜기에 햇살이 내렸다. 두터운 대지를 뚫고 올라온 초록에 햇살이 앉은 것이다. 잔잔한 이슬에 앉은 맑은 햇살, 흩어질까 두려워 숨이 멎었다. 이내 산을 넘은 작은 바람이 흔들어 준 옅은 초록이 바르르 떤다. 숨조차 쉴 수 없는 밝은 햇살의 아슬아슬함에 발길을 멈췄다. 그예 튀어 오른 햇살은 허공을 갈랐고, 초록은 이슬의 영롱함에 물들었다. 맑은 햇살은 봄이 익어가도록 산을 넘었다. 여름이 다가왔다.
지루함을 달래려는 듯, 맑은 햇살은 힘을 더했다. 산을 넘은 햇살이 골짜기를 달구는 아침, 모든 것을 데워 놓듯이 작열하는 햇살이다. 곡식이 무르익고 푸름이 짙어지며, 계절의 순환을 재촉하는 햇살이다. 여름이 무럭무럭 익어가고 있는 골짜기는 싱그럽다. 짙어진 초록에 내린 햇살은 색이 다르고 맛이 달랐다. 진초록은 빛을 발하며 계절을 노래했고, 가끔 찾아온 햇살과 어울렸다. 짙은 초록에 맑음 햇살의 조화,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골짜기의 여름 풍경이다. 가끔 찾아온 바람이 심술을 부려도, 어림없다는 손짓으로 햇살은 그대로다.
짙은 초록을 뚫고 골짜기를 가로지른 햇살이 허공을 갈랐다. 시위를 떠난 화살이 꽂히듯이 산을 넘은 햇살의 위용이다. 초록은 이글이글 익어갔고 서서히 계절은 가을로 가는 계절이다. 매미소리가 골짜기를 떠났고, 초록이 가득한 날 서늘함이 내려왔다. 서서히 가을로 접어드는 골짜기는 햇살로 가득해졌다. 붉음과 주황에 노랑이 섞인 골짜기에 햇살이 참견한다. 맑음을 주고 환함을 주며 반짝임을 선사한다. 가을비가 내린 단풍은 계절의 절정인데, 여기에 내린 햇살은 신이 났다. 붉음에서 주황으로, 다시 노랑으로 튀어 오른 햇살은 서둘러 겨울로 들어선다. 위대한 햇살이 신비함을 보이는 계절이다.
하얀 눈이 내린 골짜기는 한없이 고요하다. 고요한 골짜기를 빛내는 눈 위에 햇살이 찾아왔다. 철없는 아이처럼 텀벙대는 맑은 햇살, 누구도 탓하지 않는 순수함이다. 맑은 햇살의 찬란함을 맛볼 수 있는 계절, 눈이 오는 겨울이다. 하얀 눈과 맑은 햇살의 조화, 계절은 한 바퀴를 돌아 맑음의 제자리다. 골짜기는 하얀 겨울 속에 잠이 들었다. 농사일도 그리고 추위대비 겨울준비는 벌써 끝이 났다. 겨울을 데우는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는 골짜기엔 가끔 찾아오는 택배차량만 움직이는 물체다. 산새들도 흔적이 없고 이웃들도 따스함에 묻혀있다. 맑은 햇살이 하얀 눈 위에서 쉬고 있는 골짜기의 아름다운 풍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