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독한 겨울 골짜기는 아직도 고요하다.

(골짜기의 겨울 풍경)

by 바람마냥

가을이 오나 했는데 흔적도 없고, 다시 온 겨울은 깊어만 간다. 눈 내린 앞산이 겨울임을 알려준다. 추운 겨울을 잘 지내야 봄을 맞이할 수 있다. 추위는 걱정도 않던 젊음은 늘 내 곁에 있을 것 같았지만 어림없다며 손사래 치는 세월이다.

마지막까지 버텨야 만찬을 즐길 수 있다지 않던가! 새벽 문을 열고 체육관으로 향하는 이유다. 더워도, 추워도 포기할 수 없다. 밥은 먹고살듯이 늘, 운동을 하며 살아간다. 도심에서 일자리를 찾아 나서는 차량 틈에 끼어 체육관으로 가는 길, 사람들의 향하는 길은 여러 갈래다. 고급진 차량이 앞질러 간다. 근처의 골프장을 향하는 차량이다.

면소재의 문화센터에도 사람들로 붐빈다. 운동하러 온 사람, 무엇인가 배우러 온 사람들 그리고 공공근로 하러 오신 어르신들이다. 체육관 들어서기엔 늘 죄스럽다. 어른들이 청소하는 곳을 가로질러 가야 해서다. 건강은 괜찮으시냐는 질문엔 운동삼아 왔다는 말로 대신한다. 주춤거리다 눈길이 멀어지면 들어가는데, 오늘은 들키고 말았다. 인사를 하며 날씨가 춥다 하자 환하게 웃으신다. 용돈이라도 벌러 오신 어르신들과 가끔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한 겨울, 하얀 눈이 쏟아지는 새벽에 눈이 떠졌다. 부엌에서 어머니의 불 때는 소리가 들려와서다. 구들장이 미지근해짐이 알려주고, 나무 분지르는 소리가 또 알려준다.

문에 달린 작은 유리로 바라본 마루엔 하얀 눈이 깔려있고 어머님의 발자국이 선명하다. 어머니는 찬 바람 부는 부엌에서 군불을 지피고 계신 것이다. 구들장이 따스해 오고, 나무 분지르는 소리가 들리는 이유다. 어머니의 시골살이는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셨야 했다.

봄이 찾아왔고 일철이 돌아왔다. 한 시도 쉼이 없는 삶은 쪼들리는 살림살이와 자식을 위함이었다. 간신히 추운 겨울을 버티고 맞이한 고단한 일철 그리고 다시 만난 한 여름 더위도 힘들다 하셨다. 식사를 하기도 힘들다 하셨다. 왜 더위가 힘겹고 밥 먹기가 힘들다 하셨을까? 이해하기 힘들었던 여름 나기와 힘든다는 식사였다.

세월은 말없이 지났고, 어머님의 세월이 되어서야 그 삶을 조금 이해할 수 있는 철부지다. 사람다운 삶을 생각도 못하셨던 당신들, 언제나 일에 치이며 세월을 버티셨다. 아무 대가도 없는 자식들의 삶을 위함에서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홀로 남아 있던 그 세월,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기어이 버티시다 아들을 불렀다. 자그마한 염소라도 한 마리 키우겠다 하셨다. 외로움에 적적함을 달랠 수 없었던 어머니, 오죽하면 염소를 키우며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하셨을까? 감히 그 세월을 상상도 못 한 철부지가 이젠, 그 가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세월이 되었다. 왜 그렇게도 당신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을까?


운동을 마치고 나오던 길, 오래 전의 할아버지를 만났다. 암수술을 마치고 건강하게 살아가신다는 할아버지다. 홀로 계시는 할아버지는 자식들이 잘 산다고 자랑이셨다. 자식들이 잘 살아 수술을 해 주셨단다. 공공 근로 나오시길 잘하셨다는 말에 얼른 수긍하며 빗자루를 드셨다. 언제나 씩씩한듯해도 쓸쓸함은 늘 자리하고 있는 할아버지다. 무엇이 그렇게도 쓸쓸하게 만들었을까?

오래전 내 어머니를 기억하게 한다. 세상에 자식이 있는 듯 없는 듯한 삶이 한없이 외로웠으리라. 할아버지는 자식들이 자주 오느냐는 말엔 잠시 멈칫하신다. 끝내 대답이 없으시더니 자리를 뜨고 마신다.

염소를 사 달라하시던 내 어머니, 자식들이 자주 오느냐는 말에 자리를 뜨신 할아버지의 가슴엔 무엇이 자리 잡고 있을까? 감히 헤아리지 못한 여한의 세월이 오고 가는 겨울이다.


시골엔 젊은이들보단 어르신들이 많다. 문화센터에도 그리고 체육관에도 대부분 어르신들이다. 일철이면 대부분 어르신들이다. 따가운 햇살아래 풀을 뽑고 소독을 한다. 도저히 견딜 수 없는 더위도 마다하지 않는다. 겨울이면 장작을 패며 겨울을 준비한다. 경운기를 운전하고 트랙터를 몰고 다닌다. 삶을 유지하고 자식들을 위한 처절한 노동이다. 무심한 전동스쿠터가 대변해 주고 유모차가 알려준다.

간신히 몸을 가누는 어르신들이 대부분이다. 우리의 현실을 보여주는 시골의 풍경이다. 봄부터 냇가에는 많은 고기가 있고, 철새들이 오고 간다. 여기에 빠질 수 없는 강태공 노부부가 계신다. 날씨 좋은 날엔 강아지까지 대동하고 늘 출근하시는 노부부이시다.

자그마한 의자에 앉아 피라미를 낚으신다. 붕어는 낚을 줄을 모른다며 쑥스러워하시는 노부부옆엔 늘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었다. 가족이 출동하여 하루를 보내시는 노부부, 고기를 낚으려야 오셨겠는가? 라면을 끓이는 할머니와 낚시하는 할아버지, 언제나 정감이 가는 풍경이었다. 언제부턴가 할아버지, 할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늦가을부터 보이지 않던 할아버지, 추위에 못 오시는지 궁금하다. 아직도 안녕하실까 궁금한 아침이다.


추운 겨울에 만난 골짜기의 풍경은 조용하지만 서글픔도 섞여 있다. 젊은이가 없고 대부분 노인들이 사는 동네, 초저녁이면 가로등 불빛만 오고 간다. 가끔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가 정적을 깨고, 심심함을 이기지 못한 동네 개들이 짖어댄다. 임을 찾는 고라니 울음소리가 처절하게 들리는 동네는 아직도 고요하다. 그렇게도 재잘대던 새들도 소식이 없고, 작은 도랑물 소리만 옹알댄다. 시골에서 만날 수 있는 흔한 풍경이다.

늙음은 오직 내가 감당해야 하는 세월이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고 기대할 수도 없다. 힘들어도 살아 내야 하고, 추워도 견디어 내야 하는 세월이다.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야 하는 골짜기는 아직도 고요만이 지키고 있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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