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도 바빠도 웃기지

우주로 간 건강

by 코알라

한때 아들이 킥보드가 없던 시절, 어린이집 교우들의 킥보드를 바라보며 물었다.


“엄마, 내 킥보드는 어디 있어?”

“너의 킥보드는... (1초 고민) 미래에 있어.”

“미래? 미래가 어디야?“

“미래는 가까운 곳이지.”


실제로 그의 킥보드는 가까운 미래에 그를 찾아왔다. 그럼으로써 나는 시공간의 신비를 느끼며, 영화 <인터스텔라>에 나왔던 주인공이 우주공간을 통해 과거의 자신을 목격하는 명장면을 떠올렸다.


나는 안방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보고 어제의 나를 만난 것처럼 애처로워하고는 한다. 아들은 매일 미래를 조우하는데, 어미는 매일 고양이 모래를 조우한다. 치우고, 또 치우며, 결국 아무것도 치운 것 없어 보이는 집안 상태를 복기하고, 이쯤에서 만족하는 게 살림의 도리(?)이다, 이런 자기 최면에 취해 침대에 눕는다.


‘내 집이 깨끗해질 수 없는 건 내가 있기 때문인가?’


깨달음이 찾아왔을 때 고양이가 웅낭, 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나는 참지 못하고 지게차가 팔레트를 뜨듯 고양이를 두 팔로 확 들었다. 그리고 고양이 얼굴과 몸에 내 얼굴을 마구 비볐다.


정말 살 맛 났다.

이 맛에 산다. 고양이. 최고다.


분명히, 나의 장래희망은 앙고라 인간이다.


내가 이런 행동을 주기적으로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음을 잘 아는 남편은 롤테이프를 들고 의식이 끝날 때를 기다린다. 얼마 전에도 고양이 털범벅이 된 내 몸에 롤테이프를 대고 돌돌돌 굴렸다.


그러므로 앙고라 인간을 꿈꾸는 내가 인간답게 살아가려면 남편이 필요하다. 20퍼센트의 근육과 80퍼센트 지방으로 구성된 내가(마포구보건소 인바디 결과) 저사양 HP를 운용하는 데 있어 남편은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여자 나이 40이 되면 대체로 아픈 곳이 늘어난다. 나는 이따금 나의 건강이란 존재가 과연 실존했는지를 자문하고, 실존을 확신하면 역시 그것은 4차원 통로로 우주 저너머에 가버렸을 것이리라 여긴다.


지금도 아득한 우주 어딘가 나의 건강이 혹은 건강했던 내가 결코 오늘의 나와 물리적으로 접촉할 수 없는 시공간에 가로막혀 소리치고 있을 것이다.


“아몬드! 그래, 식탁에 아몬드 봉지! 아니, 칙촉 말고, 아몬드, 제발 무시하지 말고, 빨리 오메가3를 늘려야 해!”


중요한 친구를 언급하는 걸 잊었다. 복직근은 소리치는 건강이를 응원하고 있을 것이다(안녕, 복직근. 그곳에서는 잘 지내니?).

기립근과 중둔근도 잊었다.


글 제목을 ‘잃어버린 코어를 찾아서’로 바꿔야 할 것인가. 아니, 생각해 보니 그럴 필요는 없다.


코어만 잃은 것이 아니므로 우주적으로 방향을 잡는 게 옳겠다. 칼 세이건도 코스모스를 논함에 인류문명을 빼놓지 않았다. 우주가 지구 생명체의 원류였으면서 인류 과학 문명의 원축이 되어간 것처럼 내 건강 상실(우주행)은 건강 종합회복을 향한 시발이 되리라 희망한다.


나는 오늘도 곧게 뻗은 아들의 등 선을 보고 부러움을 표현했다.


“그래, 난 저 3번, 4번이 밖에서 보이지 않지. 녀석들은 은둔해 버렸어! MRI만은 알고 있겠지.”


아들은 뜻도 모르고 영문도 모르고, 이제는 엄마가 아프다는 말을 하다 하다 괴상한 소리를 한다고 짐작한다.

하루는 엄마는 허리가 아프니까 오늘은 비디오게임을 실컷 같이 하면 되겠다고, 사려 깊은 처방을 내려주기도 했다. 그러면 어미는 요 착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어떤 대답을 해줘야 할지 고민에 빠진다.


내 장래희망은 72시간 잘 수 있는 앙고라 인간이다. 아시다시피 꿈이란 꿈에서 머무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꿈은 크게 꾸라는 말이 있다. 말이 나온 김에 장래희망을 ‘5박 6일 동안 잠만 자는 앙고라 인간’으로 수정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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