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도 바빠도 웃기지

대체 왜

by 코알라

왜는 조선에 이웃한 국가였고, 또 다른 왜는 가던 길을 멈추게 만드는 의문의 물음표다. 길을 가다 보면 ‘도대체 왜?’, ‘어째서?’라고 자문하게 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최근에 있었던 일을 설명하자면, 다시 정강이 근육이 파열된 그날로 돌아가야 한다.

실용의 최전선에서 허우적거리며 2단 접이식 지팡이를 겨우 구매한 후 나는 만족스러운 심정을 감추지 못하고 집에서 마스터 요다 흉내를 내고 있었다. 그런데 내 유치한 놀이가 정말 제다이의 포스를 불러일으킨 것일지도 모른다는 기묘한 상상에 빠지게 되었다. 나는 아들을 유치원에 데려다주며 생애 첫 지팡이 생활을 시작하였다. 아들은 지팡이를 가리키며 그것 참 좋아 보인다고 잘 샀다고 아낌없이 칭찬해 주었다. 그리고 엄마는 곧 할머니가 될 예정이니, 지팡이를 잘 아껴 써야 할머니가 되었을 때도 쓸 수 있을 것이라고 당부했다. 나는 그의 말에 수긍하고 되도록 아껴 쓰겠노라고 대답했다.

지팡이 사용이 익숙지 않았던 나는 홀로 집으로 돌아가며 왼손에 쥐었다, 오른손에 쥐었다 등 동작을 바꿔가며 편한 보법을 연구했다. 그리고 적절하다고 여겨졌을 때 힘 있게 지팡이를 내디뎌 걸어 나가니, 참으로 듬직한 하인을 얻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흡사 돌쇠라도 하나 데리고 다니는 듯한 기분에 취해 나는 전날의 좌절감을 신촌역 로터리에 내던져버리기로 하고 용기 있게 횡단보도를 건넜다. 그것으로 제다이의 포스가 생긴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사건은 횡단보도를 건넌 직후에 일어났다.

신촌역 로터리 그랜드마트 앞은 여러 종교인과 상점에서 급파된 전단지 요원들이 수시로 돌아다니는 번화가의 요지였다. 그런데 그들 중 누구도 내게 손짓하거나 다가서지 않았다. 누구 한 사람 나를 실존하는 사람으로 대하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광흥창역에 내려서도 같은 일을 경험했다. 분명히 내 앞을 걸어가던 행인이라면 그들 앞을 지나는 족족 포교망에 걸려 사양의 뜻을 말하고 빠져나가기 바빴다. 그러나 나의 경우는 정반대였다. 내가 그 종교인들을 투시할 듯이 뚫어지게 바라보아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들은 포교전선을 확대할 생각에 찬 눈빛을 하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을 점검하고 있었다.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나는 그들 모두의 눈에 비치지 않는 투명인간과도 같았다. 나는 의기양양해져서 “동그라미 그릴까요? 동그라미 그릴까요? 빙글빙글 그려봐요.“ 동요를 흥얼거리며 여유롭게 그들 주위를 지났다. 그럼에도 그들은 나에게 전단지 한 장, 눈길 한 번을 건네지 않았다.

나는 이 일이 경이로울 지경이라서 누구든 아는 사람을 만나면 반드시 이야기해줘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했다(매일 할 말을 잊기 때문에). 아마도 내가 포스의 힘을 얻었다, 이렇게 말하지는 않을 것이지만, 대체 왜 내게 이런 신비한 능력이 생겼는지를 스스로도 의아하게 여기면서도 다쳐서 아프지만 좋은 일도 있었다고 말할 것이다.

그래서 누구에게 말했는가.

역시 아들과 고양이들에게다(남편은 출장). 주변에 스몰토크라도 나눌 사이가 없어서인데, 다행히 아들은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어주었고, 고양이들도 곁을 지켜주었다.

대체 왜 내게 이런 힘이?

(이런 물음을 떠올리기 전에, 대체 왜 내게 이런 사고가 일어났는지 애석하게 여겨야 하지만)

다시 생각해도 놀라운 일이었다. ‘었다’로 끝난 것으로 짐작할 수 있을 것인데, 이미 이 일은 과거형이 되었다. 나의 포스는 실밥을 푸는 날 증발하고 말았다. 기이하게도 지팡이나 깁스로부터 자유로워졌기 때문에 홀가분해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나는 믿고 싶었다.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존재, 혹시 제다이의 묵직한 영령이 내게 깃들었다가 연세수정형외과 원장님의 “이제 깁스 풀죠.”라는 말에 마침내 안도하고 아디오스, 떠난 것은 아닐지, 믿고 싶었다. 그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지난 지팡이 생활을 회고함에 있어, 단지 대중교통 노약자석 혜택을 누렸을 뿐이라고, 단조롭고 무료하게, 영면한 듯 현관문에 기대어 자는 지팡이를 바라보게 될 것 같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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