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하는 범인의 삶을 위하여
“걸레가 된 행주를 아시오?”
나는 보았다. 위생이라는 대의의 바다에 일생을 투신한 그 무명천을 말이다. 인도 공장에서 태어나 한국 다이소 합정점에 배치되기까지 이 사람, 저 사람 손에, 손에, 손을 거쳐 박스에 담기고 매대에 걸리는 세월의 부침을 겪은 4장에 천 원의 삶.
한 장은 하이라이트에 데어 누런 구멍이 나고, 또 한 장은 먼지로부터 양조간장과 식초를 지켜주는 우산이 되고, 또 한 장은 마를 날 없이 젖고, 마지막 한 장은 방충망 청소에서 공을 세우고 과탄산소다 비눗물에 절여졌다. 걸레가 되기 전에도 그는 온전히 마른 천으로서 살지 못했다. 우리 집에 도착했던 날, 당장 부엌 행주로 명명되어 식탁을 닦으며 반찬국물로 몸을 적셨다. 그러고 나서도 다시 하이라이트에 튄 된장국을 닦아야 했다.
그의 일상은 그런 식이었다. 부엌에 불이 켜지면 찬물에 몸을 적시고 일을 개시했다. 부엌일을 마무리하는 밤에는 상부장까지 닦고서야 비눗물로 세탁됐다. 비록 축축한 몸이지만, 비로소 커피 머신 위에 걸쳐져 잠을 청할 수 있었다.
그는 가장 먼저 활주로를 닦는 청소차와 같았으며, 가장 마지막 거리를 빗질하는 청소부 같았다. 어떻게 보면 그는 책임감으로 무장한 주인 같았다. 그가 그토록 많은 책임을 도맡게 된 데에는 사정이 있다. 사실 그는 첫 번째 행주가 아니었다. 첫 번째는 하이라이트에 몸을 덴 행주였다. 그가 한가운데 누렇게 타 구멍이 휑 뚫린 몰골이 되어 버리자, 나는 고민 없이 두 번째 행주를 정해 오늘날까지 곳곳을 닦아왔다. 그래서 두 번째 행주의 책임이란 첫 번째가 완수하지 못한 숙제들까지 껴안으며 막중해진 것이리라. 이런 생각이 들자, 나는 방충망 청소에 앞서 그를 행주로서의 책임에서 내려오게 해야겠다는 이상한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도리에 맞자면, 오래도록 고생한 두 번째 행주를 자유롭게 해줘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내 결론은 달랐다. 두 번째 행주가 지금껏 여러 임무를 무사히 수행해 주었으므로, 그 능력을 보건대 노련함이 필요한 방충망 청소에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셋째, 넷째보다 낡았지만 그것은 흠이 아닌 장점이었다. 손에 익어 적당히 느슨해진 짜임은 방충망을 부드럽게 훑고 가기 좋다고 느껴졌다. 그것은 경험의 흔적이었다. 군데군데 얼룩이 남아있지만, 몹시 더러워질 수밖에 없는 방충망 청소 후에는 그 모습이 가장 청결한 상태였다고 추억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온몸을 던져야 한다, 예전으로 돌아가기 어려울 수 있다, 이것은 각오가 필요한 일이었다.
그래도 나는 그가 아직 쓸모 있다고 확신하고, 극적으로 표백되어 몇 번이고 되살아나, 좁은 부엌이 아닌 온 집안을 누비며 놀라운 힘을 발휘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것은 이상에 취한 근거 없는 상상이 아니었다. 그는 그만한 상상의 주인공이 될 경험을 쌓았고 나이 들었다고 뒤안길로 내몰리지 않아도 될 운명이었다.
나는 그가 뽐냈던 순백색을 평범하다 여겼다면, 얼룩진 오늘을 특별하게 바라본다.
그리고 청소 후, 우리 희망대로 그가 과탄산소다 비눗물에 세탁되었으니, 때 이른 한파가 사라진 곳에 내리쬐는 청명한 가을빛이 노장을 치하하며 표백 같은 건조를 하사했던 것이다.
나는 건조대에 걸린 범인의 삶이 그토록 빛나던 광경을 바라보고 곁에 누워 가을하늘을 올려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