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쟁이 꼬마 버스
지금은 사라진 추억의 개그프로그램 ‘웃찾사’를 기억하는 사람이 적을 것인데, 그것이 ‘웃음을 찾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라는 사실도 비슷한 처지이리라.
레트로한 이야기를 꺼낸 건, 내가 바로 그 '웃찾사'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자칭 웃찾사인 내가 일상에서 사건사고를 겪는다면, 필시 개그 포인트를 찾으려고 두뇌회로를 돌릴 것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이상한 구석이 있고 웃기다고 여기는 것도 다르다. 내가 말하는 사람들이란 우리가 거리에서 스치는 평범한 소시민을 가리킨다.
평범한 삶이란 과연 무엇일까.
나와 대화를 가장 많이 나누는 상대는 아들이라서, 여기서도 아들의 말을 인용하고자 한다.
며칠 전 아들은 자신은 아침에 일어나 마포07을 타야 하니까 교통카드를 반드시 챙겨서 다녀야 한다고, 교통카드를 필참해야 하는 인생이라고, “그러니까 난 평범한 인생이지.”라고 평가했다.
교통카드 필참이 곧 평범한 인생이라니. 따지고 볼 것도 없이 지당하다고 공감했다. 아들의 말이 이런 즉, 나의 삶이라고 평범의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다.
평범한 삶을 사는 나와 아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보면 온갖 이벤트를 목격하고, 나는 이런 소시민의 웃기는 삶에 대해 혼자 생각하고 웃지 않을 수 없다.
내가 매일 평균 3회 탑승하는 마포07에도 나를 비롯한 독특한 승객들이 종종 탄다. 이 마을버스의 재미있는 점은 다양한 버스 사양에 있다. 가장 승차감이 좋은 사양은 저상형 전기버스이고, 가장 승차감이 나쁜 건 소형 승합차이다. 전자는 부드러운 코너링과 쾌적한 실내장식(쿠션)을 느낄 수 있지만, 후자는 뭐랄까? 나로서는 일단 버스가 존재해 주는 것만으로 고맙기 때문에 단점 설명은 생략하겠다(나는 꽤 과묵한 사람이다).
아마 예상하겠지만 웃기는 이벤트는 대개 후자(언뜻 보기에 후지다로 보였을 수도 있다)에서 '발생'한다.
아무래도 버스 크기가 문제다. 홍대에 관광 온 체격 좋은 외국인들이 타면 유치원 버스에 어른들이 몸을 욱여넣어 억지로 탄 꼴이 된다.
"타요타요 타요타요, 개구쟁이 꼬마 버스."
관광객들이 각자의 언어로 무어라 버스 탄 소감을 주고받으며 겨우 탑승이 완료될 때까지 내 머릿속에는 공전의 빅히트작 <꼬마버스 타요>의 주제가가 울려 퍼진다. 어떻소, 이국 땅에서 온 여러분. 고개가 절로 숙여지지 않습니까? 겸손한 층고로 유교버스가 된 마포07이 손님들을 레드로드(따위)에 내려주어야 차내 인구밀도가 조절된다. 반대편 현대백화점 방향은 신촌로터리를 지나야 한숨 돌릴 수 있다.
승객 수요가 이렇다 보니 양방향을 자주 타는 나는 다양한 외국인들을 만나는 재미가 있다.
개인적으로는(아주 지극히) 레드로드가 아닌 곳에 내리는 외국인들을 높이 평가하는데, 최근에는 어린 아들을 데리고 탄 일본인 엄마, 숙소를 찾아온 젊은 중국 여성뿐이어서 현 세태를 애석하게 여기고 있다(나는 유교인이다).
딱 이 정도, 사람 구경을 즐기며 소소한 재미를 느끼던 날이었다.
중국에서 온 듯한 앳되어 보이는 젊은 처자 4명이 상수역에서 올라타기 시작했다. 문제는 두 번째로 타려던 사람에게 발생했다.
"잔액이 부족합니다."
태그와 동시에 교통카드 단말기가 한 마디를 내뱉었다.
그러자 그룹은 일동 술렁거렸고, 당사자인 두 번째 승객은 당혹감에 휩싸였다. 그때 세 번째 승객이 친구를 구해주려고 불쑥 자기 교통카드를 앞으로 내밀어 카드를 태그 해줬다. 그 태그는 성공적이었다. 친구들이 모두 안심하고 탑승행렬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대중교통 시스템을 익히 파악하고 있는 한국인이라면 이 상황의 문제점을 재빨리 눈치챘을 것이다.
세 번째 승객의 행동이 친구 몫까지 버스요금을 지불하고자 했다면, 총 2,400원을 카드 태그로 지불해야 했다. 그러나 한 번의 태그는 1,200원에서 끝난다.
두 번 찍으면 되지 않는가,라고 생각했을 있는데, 동일한 카드를 동일 차량에서 두 번 태그 하면 하차 처리로 끝난다. 그러므로 친구 몫을 내고자 했다면 '다인승 처리'를 버스 기사에게 요청해야 맞다.
이 사실을 몰랐던 세 번째 승객은 당당히 탑승하면서 자기 교통카드를 단말기에 다시 태그 했던 것이다.
"하차입니다."
단말기가 다시 한 마디를 하자, 그룹은 또다시 혼란에 휩싸여 자기 나라 말을 주고받았다. 네 번째 승객이 무사히 카드 태그를 마치자, 그들은 "야, 제 기계라서 그냥 계속 뭐라 말하나 보다." 이런 안도감을 공유하고 뒷자리를 찾아갔다.
하필 그 버스는 꼬마버스였다. 나를 포함해 승객 3명이 미리 탑승한 상태였고, 우리는 원지 않았으나 긴밀한 거리감을 유지한 채 이 그룹의 문제가 속히 해결되기를 지켜봤다. 아직 안도하기는 이르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한 사람 더 내야 해요."
기사님이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이 사안을 다루는 판사와 같은 위치에 서 있다.
나는 긴장했다.
또한, 해당 승객들이 당연히 몰랐을 사실인데, 이 기사님으로 말할 것 같으며, 진솔한 입담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분이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버스가 레드로드를 통과하는 구간은 택시 등이 가세해 혼잡도가 올라간다. 그날도 그런 오후였고 날씨는 뇌세포를 소멸시킬 수 있을 만큼 강렬한 태양에 지배당하고 있었다.
기사님은 직사광선을 꿰뚫듯 힘차게 버스를 몰아 레드로드 코앞에 당도해 강한 분노를 느꼈다. 버스가 설 자리에 택시 한 대가 떡하니 주차를 해둔 것이었다.
기사님은 클랙슨을 거침없이 연신 눌러댔다.
빵-빠-빵, 빵-빵
대포 같은 경고에 택시는 화들짝 놀라지도 않았다. 운전자가 이미 카페에 서서 음료주문을 하고 있었서였다. 택시기사는 카페에 서서 손을 흔들고 양해를 구하는 포즈를 취했다.
그러나 기사님은 정다운 자세를 취하는 이유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안색으로, 클랙슨으로 모스부호를 보내듯 마구 눌러댔다. 강약약강강강강, 어쨌든 '당장 차 빼.'라는 소리다.
택시기사는 포즈를 바꿔 성을 내려고 했는데, 그 순간을 우리 기사님은 잘 알고 있었다.
기사님은 클랙슨과 몇 가지 언어표현을 더해 택시기사에게 버스 정류장 무단 주정차의 위법성을 강하게 경고하고 다음 정류장을 향해 핸들을 돌렸다.
이 장면을 지켜본 한 탑승객(할머니)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호호호, 뭘 잘했다고 저런 답니까?"
그것은 누군가의 화답을 원해서 한 말이 아니었다. 나는 할머니의 여유 넘치는 미소를 보고 무엇을 자랑스러워(?)하는지를 짐작했다.
그러므로 이런 어긋난 시추에이션이 기사님으로서는 달가워할 수 없었다.
비단 저런 마찰이 있었다고 해서, 기사님이 늘 과격한 언행을 과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분은 자기 승객들에게는 한없이 자상했다. 자애로움을 유니폼으로 지어 입고 교양과 상식의 근육으로 핸들을 조종하는 분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분이 마침내 오른손 검지손가락을 펴 들어,
"한 명 더 내야 해요."
라고 말하자, 차내의 승객들도 결국 그들이 인지할 수는 있지만 너무 공격적이지는 않도록 검지손가락을 자기 어깨 높이 정도로 펴 보였다. 승객들은 적었지만 비좁은 꼬마버스 안에서 펼쳐진 이 광경에, 그들은 놀랐을 것이다. 모두 말없이 검지손가락 하나를 든 채 정작 그들을 똑바로 쳐다보지는 않았기도 했다.
버스는 출발하지도 않았고 사람들은 작은 목소리로 '한 사람 더', '한 사람 더', '한 사람 더', 미지의 언어로 읊조리며 위협하고 있었다.
독실한 신념으로 단결한 지역의 비밀결사단에 멋모르고 들어온 외지인들에게 결사의 각오를 증명하라는 것처럼 느껴지지는 않았을까.
잘 모르겠지만, 일단 당황하지 않았을 수 없었으리라.
그때 뒷 차량이 출차를 종용하는 뜻으로 클랙슨을 울려댔다.
빵-, 빵빵-
"아!! 문을 닫아야 출발하지!!!!!!!!!!!!!!!!!!!!!!!!!!!!!!!!!!!!!!!!!!!!!!!!!!!!!!!!!!!!!!!!!!!!!!!!!!!!!!!!!!!!"
기사님은 열린 승하차문을 향해 응답을 던지고, 승객들을 안심시켰다.
분명히 승객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한 행동이었지만, 문제의 그들만은 안심하지 못했다. 그것이 자기들을 향한 꾸짖음이라 여긴 듯 분주히 회의에 들어갔다.
기사님이 문을 닫고 출차하는 사이, 자기들끼리 힘을 모아 마침내 1,200원 현금을 창출해 낸 것이다.
그리고 다음 정류장에 버스가 정차한 사이 '제일 용기 있는 1명'으로 (아마도) 선출된 사람이 기사님의 확인을 거쳐 요금통에 수납했다.
이로써 그들은 떳떳해졌고 나머지 승객들은 만족했다.
우리는 신촌로터리에서 헤어질 운명이었다. 문이 열리고, 그들이 내 앞에서 카드를 차례차례 하차 처리하며 내리는데, 나도 모르게 아차 소리를 내지를 뻔했다.
"동일차량 재승차로 요금 결제가 필요합니다."
승하차 메커니즘을 이해하지 못한 세 번째 승객이 또 교통카드를 태그 해버린 것이다.
승객은 놀라서 내리던 발걸음을 멈추고 기사님의 반응을 살폈다. 그는 겁에 질려 있었다.
"자네는 진작 하차한 것이라네. 그러니까 상수역부터 신촌로터리까지 자네는 분명 타고 있었지만 유령이나 마찬가지였지."
하얗게 질린 그의 얼굴에 대고, 내가 이렇게 말해주었다면 참 좋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으므로 이렇게 글로 나마 당시의 애석함을 전한다.
기사님도 목석처럼 굳어 내리지도 도로 앉지도 못하는 그의 심정을 알아챘던 것일까.
그저 손짓으로 하차를 하라고 하고, 묵묵히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손짓이 바람이라도 일으킨 것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어느새 하차해 있었다. 나는 버스 곁을 떠나지 못하고 심각하게 대화를 나누는 그들에게 다가가 물었다.
"괜찮으세요?(한국어)"
그들은 어리둥절한 눈빛을 보이더니 어색하게 웃었다.
기계가 내뱉은 말에 울다가 웃다가, 뭐 이런 나라가 다 있냐,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버스가 떠나는 것을 보고서야, 그들은 어쩔 수 없이 길을 떠나야 함을 알았다.
잘 가시오, 이방인들.
두보의 시라도 알았다면 읊어드렸을 텐데.
그러면 두려움도 잊고 안심했을 텐데요.
그래도 좋은 하루, 좋은 여행 하시고요.
참, 레드로드 가지 마세요.
시끄럽고 지저분하고 비싸고 사람 많고 기분 좋은 건 없어요.
난지천공원 가세요.
바람은 불어도 한강을 바라보면 힘든 일도 바람에 실려 날아가요.
오늘 일도 다 날아갈 거예요.
잘 가세요.
다음에 놀러 올 때는 꼭 카드충전 하고 오세요.
꼭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