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의 찬미
아르바이트를 한창 하던 2천 년대 초반.
왜인지 당시에도 나의 활동 거점은 신촌이었다. 멋과 유행의 첨단을 달리는 신촌을 동경했던 까닭이 아니었고, 어쩌다 보니, 신촌에 구경 갔다가 구인 표시를 보고 카페 문을 밀고 들어갔던 것이 신촌생활의 시작이었다.
사는 동네도 아니었고 학업과도 연이 없어서, 말 그대로 무연고지였다. 신촌은 이름 그대로 내게 “새로운 동네”였다.
새로운 동네.
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새로웠다.
아름다운 청춘들을 구경하기 좋았고 신선한 실패도 매일 맛보았다. 카페는 수시로 주문이 밀리고 손님이 즐비하게 늘어선 이름난 곳이었다. 그러나 그때까지 원두커피 한 잔 제대로 마셔본 일 없는 나였다.
"원두커피를 마셔봤거나 좋아하시나요?"
"아니오."
"원두커피 말고, 저희 매장에서 드셔본 게 있을까요? 아니면 에스프레소 종류 말고도 좋았던 거요."
"캐... 러멜... 마끼?"
"아또."
"아, 마끼아또." (캐러멜 마끼아또는 에스프레소 샷이 들어가는 커피음료다)
"그래요. 내일 소공동에 가서 우선 교육을 이수하고 매장에 출근하는 걸로 하죠."
"소공동? 네, 알겠습니다."
온갖 종류의 사람을 다 만나봤을 매니저님의 심정은 어땠을까. 아마도 나는 심각하게 새로운 인종이었을 것이다. 반면 나는 내심 '에스프레소?', '원두?' 등 자문하면서 새로운 종류의 면접에 당혹하고 있었다. 이렇듯 다른 의미로 나는 신촌과 신선함을 교감했는데, 나는 무지를 떳떳함으로 지나치게 무장한 나머지 며칠이 지나서도 사태 파악을 못했다.
정말로, 유명한지 어떤지, 손님이 미어터지는지 줄을 서는지, 아무런 감도 없이 무작정 일을 시작했던 것이다. 그렇게 어제는 캐러멜 마끼아또가 에스프레소 음료라는 걸 배우고, 오늘은 프라푸치노 레시피를 속으로 외우고 잘못 만든 음료를 싱크대에 밀어 넣고 눈물을 삼켰다.
그래도 어찌어찌 (눈물의) 근무시간을 채우고 앞치마를 벗을 무렵이면, 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사회를 경험하고 실상은 좁은 베드타운이면서 도시 흉내를 내던 곳에서 벗어나 진실한 서울에서 살다 간다는 감상을 느끼게 해 줬다.
신촌은 화려했고 젊음의 열기는 변화무쌍하게 시대의 멋을 창조해나가고 있었다.
세련되게 차려입은 남녀, 인터넷망 사용을 물어보는 인텔리 한 사람들, 낯선 언어로 읊조리는 음악, 영어로 주문을 받는 고참 직원들의 여유로움을 어깨너머로 훔쳐보며, 나는 커피 레시피를 달달 외우고 있었다.
그리고 백룸 타이머가 울리면 3층 매장을 순차적으로 돌고 2층 화장실까지 점검했다. 일의 흐름이 체화되어 가자, 어느 날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사실이 눈에 들어왔다.
자꾸 화장실 변기가 막히는 것이었다.
정신없이 주문량을 빼고 있으면, 이따금 손님들의 은밀한 요청이 추가되었다.
“변기 좀 뚫어주세요.”
혹은 항의성 멘트를 남기고 눈을 흘기는 손님도 있었다.
“변기 뚫어 달라고 아까도 말했거든요.”
여기에 대고 “그래도 커피 만들다 똥 치우러 갈 수 없잖아요?”나 “손님, 음료가 필요하신가요? 아니면 변기가 필요하신가요?” 등 빈정거리고 싶은 마음은 절대 없었다. 일이 손에 익어가려는 시기라서, 눈알이 돌아가게 바쁘고 할 일이 쉬지 않고 쏟아졌기 때문에, 변기 뚫는 일의 성격이나 손님의 태도를 일일이 점검할 심적 여유가 먼지 한 톨만큼도 없었다.
그래서 당연히, 매우 상식적으로, 죄송합니다를 연발하고 가능한 한 빨리 2층 화장실로 튀어 올라갔다. 화장실 앞에는 차분하지만 본능을 한껏 억누르는 듯한 표정을 지은 손님들이 항의의 눈빛으로 나를 맞이하고는 했다.
"화장실이 막혔어요."라고 사건의 신속한 해결을 종용하는 이도 있었다.
정말이지, 배관관리사가 아니고, (아무 생각 없이) 바리스타로 취업한 것이었지만, 이런 일을 반복적으로 겪으며 한 가지 법칙을 깨달아갔다.
"먹으면 나온다. 그리고 사람은 누구나 배출한다."
그랬다. 아무리 잘생기고 멋들어지게 꾸민 사람이라고 해도 변기 없이 살아갈 수는 없다.
특히 이들(요즘은 인싸라고 하는 외향 성향의 인기인)은 데이트를 하고 쇼핑을 즐기느라 도회지를 자주 찾는데, 그들에게는, 아니, 결국 우리 모두에게는 근사한 그 어떤 곳에 가더라도 화장실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므로 주말이면 화장실 칸은 십중팔구 아수라장이다.
1미터 높이의 휴지통은 덩치 값을 못하고 휴지를 토해내고 있고, 변기에서 흘러넘친 오수가 바닥을 적시고 있는 것이 예삿일.
내가 할 일은 불평이 아니었다. 불평할 틈이 없다.
당장 변기 구멍에 자유를 주고, 저 흘러 넘 칠 듯 차오른 인고의 덩어리에게 탄탄대로를 선사해야 한다. 그리고 3층부터 매장 정리를 하며 돌아가서, 백룸에 쌓인 설거지를 하고 혹시 시간이 되면 일회용 잔을 세척하며 크기별로 분류하여 박스에 정리해야 한다. 손님이 정점으로 미어터지면 갑자기 바리스타가 되어 음료도 만들어내야 하고, 아니면 갑자기 주문을 받기도 해야 한다(시급 3,500원을 받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정신을 차리면 나는 계속해서 변기 앞에 서서 똥오줌으로 환생한 아메리카노와 뉴욕치즈케이크를 하수관으로 이전시키고 자취를 지우기 바빴다.
그 무렵, 누군가 내게 하는 일이 어떠냐고 물으면, 100퍼센트 같은 답을 해줬다.
"변기만 뚫다가 오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사실에 기반한 답변이었고, 답변의 이유를 분연설명하자니 커피고 나발이고 그만두고 싶은 욕구가 솟구쳤다. 그만두고 배관관리사가 되고 싶었다. 나에게 그만한 재능이 있다는 것을 당시까지는 정말 몰랐고, 모를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신규매장에 영입되는 영광을 누리며 약 2년 간 일을 계속했다. 결과를 보면 당시 매니저님은 옳은 판단(?)을 내렸던 걸지도 모른다. 꾸준히 사고를 치고 혼이 나면서도 그만두지 않는 나를 보고 이해할 수 없어했을 수도 있지만, 그 심정은 그분만이 알 터이다.
적어도, 인내심만은 인정받았다고 자축하면서 나는 지난날을 회고한다(따지고 보면 매니저님의 인내심이 더 굉장하다).
매장 일을 하면서 사람에 대한 환멸이 일었던 것은 사실이다.
솔직히 말해, 막히는 건 여러 물리적인 문제가 작용해서 일어난 사고라고 생각한다. 당사자도 얼마나 당황스럽고 범람을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 것에 무력감을 느꼈을까.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다. 그러니 그들을 원망하지는 않는다.
내 환멸의 대상은 '물을 내리지 않는 인종'이다. 자꾸 양껏 먹고 잔뜩 싸고 물을 내리지 않고 달아나는 건 왜인가.
넘칠까 봐? 안 내려갈까 봐?
두려워 말라. 우리는 수세식 변기 문명권에 사는 한국인이다. 우리가 애써 이룩한 시스템을 이용하고 이점을 누려야 한다. 막히면 뚫으면 된다. 내리지 않으면, 갈 곳 잃은 그 녀석은 어떡하냐.
하지만 나는 경멸과 혐오로는 이 문제나 나의 내면을 다스릴 수 없음을 차차 받아들였다.
분노에 찬 내가 연대와 이대 방향을 향해 손가락 중지를 올렸다 접었다를 무수히 반복해도 달라질 일이 아니었다.
그 일은 시간이 해결해 줬다. 지난 일이 되었음에 안도한다.
그래도 종종 그 일이 떠오르고 한때 사람을 미워했던 내 모습도 생각난다. 얼마 전에 카페에서 열심히 화장을 하는 여인을 보았다. 나는 조금씩 변신하는 것이 대단히 신기하고 재미있어서 과정을 열심히 지켜봤다. 그리고 아름다워진 여인이 소지품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나는 모습을 보면서, 아, 누구나 화장실에 가지. 그래, 그래야 사람이지, 이렇게 혼잣말을 하고 카페인에 취한 몸을 일으켜 내 갈 길이 어딘지 방향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