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도 바빠도 웃기지

국민, 학생

by 코알라

가을은 말조심의 계절이다. 단풍잎이 소담하게 보도에 쌓여가는데, 혹시라도 낙방을 연상시키는 표현은 금기.

오늘은 수학능력시험 날이다.


어제는 예비소집일이라 고사장으로 가는 시내버스에 교복 차림을 한 학생들이 제법 많았다. 어디어디 학교라고, 행선지를 붙여둔 버스마다 풋내 나는 웃음소리가 비어져 나왔지만, 나는 그 분위기에서 도리어 비장감이 감돈다고 읽었다. 나는 어땠는가? 오랜 과거를 되짚어 보자. 별로 기억나는 게 없다. 그만큼 시간이 지나버린 탓이겠지 싶다.

한국인에게 수능은 633 학령기의 성취를 확인하는 순간이라고 하지만, 수능에 그토록 목메는 건 수능 이후의 인생이 달린 중대사라고 관습적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습이 언제부터 생긴 것인지는 모른다. 참고문헌을 뒤져 보려다가 말았다. 유익할 수는 있어도 딱히 유쾌하지는 않아서다.


웃긴 썰을 풀고 싶다.


그런데 수능날, 조판다 씨(중등부터 친구 해주는 유일한 사람)가 일제 소니 CD플레이어를 책상서랍에 두고 귀가해버려서, 훗날 성인이 되어서도 그 일을 곱씹으며 애석해했다는 것이 내가 아는 유일한 에피소드다. 그에게 소니 CD플레이어는 고가의 일제 음향기기이자 수능준비에 찌들어버린 사춘기를 어루만져준 고마운 벗이었다. 전자의 사실이 그를 애통하게 한 점도 없지 않지만, 후자의 역할이 있어서 심리적 공허함을 달랠 수 있었던 것인데, 사라진 청춘은 그렇다 쳐도 CD플레이어마저 잃었다는 것이 조판다 씨에게는 더욱 원통한 일이었다.


웃긴 일이 아니고, 슬픈 일이었다.

아, 수능이 뭐길래.


이제는 유치원생부터 입시를 준비시킨다. 유치원생이 고시를 치른다고 추적 60분에 보도된 일로, 사람들이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고 다시 뉴스가 났다. 학군지에서 자란 나의 경험으로 말하자면, 학원은 사람들로 하여금 많은 시간(비용도 추가)을 할애하게 만든다. 주는 것도 있지만 가져가는 것도 있는 셈이다. 다이나믹 코리아니까 셈법이 확실하다. 그러므로 셈법에 따라 유치원생에게서 빼앗아간 것도 차차 돌려주기를 바란다. 누구에게 하는 말인가. 양육자? 학원? 정부? 나도 모른다. 그냥 답답해서 하는 혼잣말 같은 거다. 놀이터에 나가면 우리 애밖에 없어서 하는 하소연이기도 하다.

나는 학원을 거부해서(학원도 나를 거부) 고등학교 시절 잠을 무척 많이 잘 수 있었다. 공부 못했다고 하는 것보다 이렇게 말하는 게 왠지 멋진 것 같다.


잠이 보약이다. (갑자기?) 이건 틀린 말이 아니다.

수능을 마친 친구들이나 수능을 보지 않은 친구들이나 모두, 앞으로는 잠이 부족한 삶을 살지 않기를 바란다. 다들 잘 자고 먹고 싶은 거 많이 먹고, 대학 가고 싶으면 가고, 가기 싫으면 가지 말고, 결혼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하지 말고, 자기 자신에게 맞는 라이프를 고르면 좋겠다.

교복을 입은 학생 무리를 바라보며, 나는 서점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들이 이겨낸 난관을 '초등수학 6-1' 자습서에서 확인하고 한탄했다. 어려워서 못 풀겠다. 내 양심상 차마 중고등 자습서 코너로 직행하지 않았던 것이었고, 양심은 내게 옳은 일을 하게 한 게 분명했다.

'초등수학 5-1'. 그래, 이거라면 나도 비빌 수 있겠지. 얘들아, 너희는 다 천재들이다. 나도 한 번 노력해 볼게.

나는 비틀비틀 맥도날드 2층에 앉아 감자튀김을 양분 삼으며, 최소공배수의 함정에서 벗어나려고 애썼다. 하늘이 은행잎처럼 노랗게 보였다. 초등수학 4-1로 고를 걸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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