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도 바빠도 웃기지

나쁜 말

by 코알라

우리 집에서 화쟁사상은 ‘화 내고 전쟁하여 조화를 꾀한다‘는 다소 다른 의미로 아주 잠시 (엄마 혼자) 사용하다 잊혔다. (원효대사님 죄송합니다)

대결구도는 나와 아들이고 아들 아빠는 관전 및 조정자 역할을 맡았다. 나와 아들이 벌이는 내전의 역사가 길고 세월이 흘러갈수록 나의 인내심도 바닥이 났다. 이런 위기에도 저얼대로, 영어로 네버, 일어로 젯타이 나쁜 말(욕)을 하지 않으려고, 나는 부단히 노력했다.

이번 편은 나의 위대한 인내심을 찬양하려는 목적으로다가 작성한 것이 아니고, 어떤 일을 겪음에 따라 나쁜 말 없이도 상대방을 곤경에 빠뜨리고 몹시 불쾌하게 만드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고찰하기 위해서다.


나쁜 말, 욕, 육두문자, 비속어.

모두 매일 인터넷에서 배우는 사회언어의 일종이다. 공격성이 있어서 상대방의 정신에 상처를 입힐 수 있으므로, 사람들은 이것을 위험하게 여기지만 쓸 만한 상황에 직면해서는 사용 및 응용을 스스로에게 허한다.

상대의 정신을 공격하는 고도의 전술, 이라고까지 말하면 좀 과장이고, 자기 품위를 떨어뜨리고 사회적 관계를 저해하는 저속한 언어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날, 케이블티브이 영화를 시청하며, 나쁜 말은 싸움의 필수요소라는 공식을 내 마음대로 정했다. 그런데 일상에서 타인을 상대로 쌍욕을 던지고 싸울 일이 자주, 아니 거의 없다. 그런 대사건은 흔치 않다. 어지간한 일로 사람들은 타인을 공격하지 않는다. 다들 적당히 참고 산다.


나는 딱 한 번 욕을 마음껏 한 적이 있는데, 다시 강조하자면 정말 딱 한 번이었다.


산책하다 목이 말라, 한강 수변공원 수돗가에서 서울의 자랑 아리수라도 맛보고자 했는데, 웬 남자가 개를 돌보는 부부에게 대뜸 욕을 퍼부었다. 부부는 그저 당황하여 저항도 못한 채 서 있었다. 수돗가에서 갑자기 일어난 일이었다. 상황이 벌어지는 동안 나는 둘 사이에 껴서 손도 닦고 아리수도 마시고 있었다. 내 뒤통수 위로 남자가 뱉어내는 지저분한 욕이 빠르게 지나갔다. 부부는 방어 없이 연신 공격당했고 개도 불안한 눈빛으로 자리를 지킬 뿐이었다.


남자는 개를 싫어하는 것 같았는데, 이것도 추정이다. 아직도 그 자가 부부에게 욕을 해댄 이유를 확실히 모르겠다. 행색도 멀쩡하고 언뜻 인텔리 같은 인상을 한 중년이 채 안 된 남자였다. 부부도 그와 비슷하게 말끔한 차림을 한 중년이었다.


나는 생각했다.

‘어째서 욕을 하는 거냐? 친구뻘인데 말로 해라, 말로 해.‘

나를 DMZ인양 끼고 싸움을 거는 것이나 항변 한 마디 못하는 사람들을 세워놓고 돼먹지 못한 짓을 하는 꼴이 영 좋지 않았다.

게다가 슬슬 불안했다.

이 싸움의 불똥이 나에게 튈 것 같았다.


나는 맞서기로 결심했다.


내가 양심적인 사람이라서, 정의로운 성품을 지녀서가 아니라, 물 마시느라 허리를 숙이고 있는데, 남자가 자꾸 욕을 하며 내 얼굴에까지 침을 튀기는 게 그야말로 불똥이 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견디지 못하고 아리수에 젖은 얼굴을 획 돌려 남자를 흘겨봤다.


“뭘 쳐다봐?! 씨발년아!”


뭐어어? 씨이이를 바를 녀언?


나는 얼쑤 좋다 하면서, 알고 있는 나쁜 말을 가능한 한 최대치로 써서 응사했다. 그날 따라 나도 욕이란 것을 실컷하고 싶었나 보다, 라고 잠시 자기합리화를 해본다. 결론, 워낙 많은 욕을 했고 저속하여 지면에 옮기기는 생략하고자 한다.


이제는 인터넷이 발달되었다.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다. 소란을 일으켜 밤잠을 방해한 점, 저속한 언어 사용으로 불쾌감을 준 점, 이 자리를 빌려 망원지구 수변동식물 일동에게 정중히 사과 말씀드린다.


워낙 소심한 나였으므로 (정말로 나는 부끄럼 때문에 안면홍조도 심한 편) 나쁜 말을 다시는 쓰지 않기로 다짐해 왔다. 그건 아주 심하게 나쁜 말들이었다. 남자를 공격하고 쫓아내기 충분했다. 남 말할 때가 아닌 것 같다만, 그런 비이성적인 반사회적 인간에게 유효했던 만큼 나쁜 말은 역시나 위험하다.


언어의 힘. 말에는 힘이 있다.

과거의 사건을 돌이켜보며 말의 힘에 다시금 감탄(?)했다. 좋은 말은 좋은 생각을 만들고 나쁜 말은 마음을 좀먹는다.

그런데 이런 명쾌한 명제의 허를 찌르는 일도 있다. 예외도 있는 법.

이 또한 명확한 명제다.


아들이 저녁밥을 먹다가 나를 바라봤다.

미역국을 우적우적 먹는 어미의 볼을 작은 두 손으로 어루만졌다.


“이 (팔자) 주름만 없으면 완벽한데.”


나쁜 말이 아닌데, 분명 아닌데, 나쁜 말로 들리는 기묘한 언어가 어딘가에 늘 도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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