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보다 낫고 싶은 건 저예요.
2월 말부터 괴롭히던 목감기가 다 나았나 싶었는데 얼마 전부터 목이 다시 따가워졌다.
작년 10월에도 이놈의 목감기로 한 달 넘게 고생했는데, 언제까지 감기를 달고 살아야 되나 싶어 힘이 쭉 빠졌다.
하도 항생제를 먹어서 그런지 초반에 있던 설사나 속 쓰림의 부작용도 없어진 지 오래였고, 하루에 두 끼 먹는데 익숙한 내가 처방된 약을 먹기 위해 시간 맞춰 삼시세끼 챙겨 먹어야 한다는 게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는 것처럼 미세먼지나 황사로 잠시 목이 따가운 정도인데 괜히 내가 엄살 피우나 싶어 3일을 지켜보다가 오늘 늘 가던 이비인후과에 갔다.
'이 환자 참 감기 자주 걸리네.'라고 혹시 생각하진 않을까 혼자만 민망해하며 진료실로 들어갔다.
의사 선생님의 첫마디부터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 목이 따가워서요. 기침은 잘 때만 조금 나오는 편이고, 가래는 심하지 않은 것 같아요."
단골답게 능숙하게 증상에 대해 의사 선생님께 알렸다.
잠시 아무 말이 없이 모니터를 보던 선생님은 고개를 돌려 몇 번 본 적 있는 정색한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이렇게 약 띄엄띄엄 먹으면 안 된다고 했잖아요. 왜 약 다 먹고 다시 안 왔어요?"
순간 당황했다. 띄엄띄엄 약을 먹은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어... 다 나아서 감기약이 아닌 비염약으로 처방해 주셨는데, 비염약은 증상이 있으면 먹고 없으면 안 먹어도 된다고 하셨던 것 같은데... 그러고 오늘 감기 증상이 다시 있는 것 같아서 왔는대요...?"
"아니에요. 다 나은 게 아니었다고요. 비염약 처방받고 나서 일주일 뒤에 다시 목이 아프다며 왔잖아요. 그때도 벚꽃 구경 가셨다면서요? 무리하면 안 되고, 바깥바람 쐬면 안 되고, 스트레스받으면 안 된다고 했는데 그때 환자분이 벚꽃 구경 다녀와서 다시 감기가 심해져서 약을 처방받아 가셨잖아요. 4월 초에"
의사 선생님이 조목조목 이야기를 하니 기억이 났다.
꼴랑 1시간 바깥에서 벚꽃 본 거 가지고 병을 키웠다며 그때도 엄청 혼이 났다.
마스크 얇은 거 하고 다닌다고 정색하시고, 술 마신 거 아니냐며 의심하며 정색하시고, 스트레스받지 말랬는데 혹시 뭐 피곤한 일 했냐고 정색하시고... 계속 정색의 정색을 듣다 보니 오늘은 서러웠다.
더 이상 아무 말이 하고 싶지 않았다.
처방된 약을 다 먹고 다 나은 듯해서 다시 병원을 찾지 않은 내 탓도 있다면 있겠지만, 병원 올 때마다 의사 선생님의 정색을 들어야 할 만큼 잘못을 한 것인가 싶었다.
두 달 동안 처방받은 약도 꼬박꼬박 잘 먹고, 벚꽃 구경 갔다 정색을 들은 이후론 이동할 때 빼고는 실외활동도 하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은 내가 백수이기 때문에 가능하지 직장인이었다면 완전 불가능할 조심들이었다.
누구보다 그만 아프고 싶은 건 나다.
'얼죽아'인 내가 아이스 음료도 끊고 뜨거운 음료를 마시며 목에 무리가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지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이제는 아이스 음료를 마셔도 된다는 행복감과 사라진 목 통증에 대한 기쁨에 '돌아온 일상'이 얼마나 반가웠었는지 모른다. 예상과는 달리 돌아온 일상에 대한 기쁨이 오래가지 못하고 이렇게 다시 의사 선생님 앞에서 입 벌리고 진료를 받고 있다는 현실이 속상해 죽겠는데, 꼭 이렇게까지 다그쳐야 되나 싶었다.
"네... 죄송합니다."
그러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죄인이 뭔 할 말이 있겠는가?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변명이고 핑계일 것이 뻔했다.
묻는 말에 '네네'만 하며 소극적으로 바뀐 내 태도에 의사 선생님도 본인이 조금 심했나 싶었는지 정색에서 다정으로 목소리의 톤을 바꿔 나에게 이것저것 설명을 해주셨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얼른 이 진료를 끝내고 이 병원을 나가고 싶었다.
목이 따가워지고 바로 병원을 가지 않았던 것은 나 스스로 엄살을 피우고 있는 건 아닌지 경과를 지켜보기 위한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 아니었던 것 같다.
사실은 의사 선생님의 정색들을 다시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아 병원 가는 것을 미루고 또 미루고 있었던 것이었다.
직장인이었을 때는 처방약을 다 먹은 후 다시 병원에 오라는 의사 선생님의 당부를 지키지 못한 적이 많았다.
병원에 가기 위해 외출이나 조퇴를 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매번 내 상황을 봐줄 상사가 어딨겠는가?
그렇게 병원에 가지 못하다 한참 지나 동일한 질병으로 다시 병원을 찾아도 대놓고 나의 잘못이 크다며 탓하는 의사 선생님은 아무도 없었다. 단지, 주의를 줄 뿐이었다.
그 정도의 주의로도 충분히 찰떡같이 알아들을 수 있다. 난 다 큰 어른이니까.
"선생님한테 혼났어. 제대로 관리 안 한다고... 에휴"
"혼낼 거 까지 있어?"
"관리 안 한 내 탓이지 뭐... 나름 한다고 했는데... 더 해야 되나 봐. 맨날 혼나 맨날."
언젠가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진료를 받고 나오는 할머니께서 친구분과 나누는 대화를 들은 적이 있다.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내 일이 되고 보니 대수로워졌다.
나도 그 할머니처럼 처음엔 나의 부주의로 병을 키운 건 아닌지 자책하기 바빴는데, 돌이켜보면 누구보다 최선을 다해 병과 싸우고 있는 건 나였다.
병원을 옮겨야겠다. 아픈 것도 서러운데 주눅까지 들고 싶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