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걱정보다 손녀 걱정뿐
"오늘 갔더니 더 말랐다 더 말랐어."
손녀의 입에 한 숟갈의 밥을 넣는다는 게
낙타가 바늘구멍 지나가는 것만큼 힘든 일이라며
왜 저리 밥 먹는 걸 싫어하는지 모르겠다며 엄마의 걱정이 한창이다.
"영양가 없는 이런 군것질만 해서 큰일이야."
소시지 장군으로 불리는 200일 된 손자와
그보다 5년 하고도 2개월을 더 산 손녀의 몸무게가
비슷한 게 말이나 되냐며 한참을 속상해한다.
"예민한 성격이라 그런가... 왜 이렇게 살이 안 붙지..."
홈쇼핑에서 주문한 50개의 영양 약밥 중,
세 개째 약밥의 봉지를 뜯으며 엄마는 걱정을 이어갔고,
그 옆에서 약밥을 뜯으며 엄마의 걱정을 듣고 있다.
"누굴 닮아 그렇게 예민한 건지... 우리 집엔 그런 사람 없는데..."
"눈치의 다른 말은 센스야.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센스 있으면 좋은 거지."
"우리 애들은 밥 걱정 안 시키고 한 그릇 뚝딱이었는데...희한하다."
이 와중에 편 가르는 엄마도 어쩔 수 없는 '시어머니'인가?
매일 나보고 예민해 빠져서 못돼 빠졌다며 혀를 차던 엄마가
'예민함'을 처음 본 사람처럼 손녀의 예민함을 낯설어한다.
"엄마, 맨날 나보고 예민하댔잖아. 고 녀석 나 닮았네."
"너랑은... 많이 다르지..."
"다르긴 뭐가 달라, 나도 예민해서 어릴 때 깡 말랐던 거 아냐?"
"뭔 소리야. 누가 깡말라. 외할머니가 들음 박장대소하겠네."
엄마의 목소리에 한껏 힘이 들어갔다.
어이없다는 듯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내 말을 부정한다.
"나... 어릴 때 마르지 않았어?"
"예민은 했는데, 넌 통실했어. 똑똑히 기억나."
그렇다. 예민은 한데 먹을 건 다 챙겨 먹는
그 시절에서부터 지금까지 통통함이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예민한데 어떻게 통통할 수 있지? 엄마 기억이 잘못된 거 아냐?"
"너 엄청 먹었어, 그때나 지금이나."
손녀의 식욕이 살아나길 바라는 마음과
어린 시절 나의 먹성에 치를 떠는 엄마의 태도는 모순 덩어리.
"난 통통한 유전자를 갖고 있으니 앞으로 절대 날씬해질 순 없겠네?"
"... 그러겠지."
무엇이 엄마로 사는 것보다 할머니로 사는 것에 더 흥미를 가지게 만든 것인가?
나의 앞날엔 별 감흥 없는 엄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