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드라이브를 좋아한다. 노래가 함께해 준다면 이루 말할 것도 없이 더 좋다.
한 달에 세네 번 정도는 사람과 차가 드문 늦은 밤에 드라이브를 가곤 했었는데, 요즘 부쩍 피곤해하는 운전자 J 씨에게 입 떼기가 어려워 드라이브를 못하고 있다가 기회가 왔다.
평점이 높아 궁금했던 영화 '헤어질 결심'을 금요일 낮에 혼자 관람하고 왔는데, 여운이 도저히 가시지 않아 J 씨와 함께 한 번 더 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이 영화가 주는 남녀 주인공의 감정을 너와 함께 꼭 공유하고 싶다고 침을 튀기며 강하게 호소한 끝에 나는 '헤어질 결심' 두 번째 관람을, J 씨는 '박찬욱 감독 영화 극장에서 첫 관람'이라는 영광스러운 시간을 갖게 되었다.
"영화 보러 가기 전에 오랜만에 드라이브 갈까?"
"그래. 좋아."
우리가 자주 가는 리클라이너 영화관은 팔공산 근처에 있어서 영화 보러 갈 때마다 팔공산이나 파계사로 드라이브를 가곤 했기에 슬쩍 드라이브를 제안했고, 운전자 J 씨는 흔쾌히 응했다.
23시 20분에 예매한 영화 시간에 맞춰 21시 40분쯤 간편한 복장을 하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 샀다.
"라디오 말고 USB 노래 들을래?"
"아니. 생각지도 못한 노래가 듣고 싶어. 라디오 듣자."
라디오 주파수를 돌려 드라이브할 때 자주 듣던 KBS2 '유지원의 밤을 잊은 그대에게'를 틀었다.
드라이브 중에 노래 듣는 것을 좋아하는 날 위해 J 씨는 USB에 내가 좋아할 만한 노래를 담아 차에 놓아둔다.
그가 담아 온 노래도 좋지만, 요즘엔 생각지도 못한 노래가 흘러나오는 라디오 듣는 게 더 재미있다.
비가 온 뒤라 그런지 팔공산으로 향하는 드라이브 길이 모두 초록 초록한 향기들로 가득했다. 에어컨을 틀지 않아도 될 만큼 바깥공기는 시원했고, 어둠에 가려 실루엣만 보이는 나무들과 산이 조용하니 매력적이다.
나를 힐끔 쳐다보다 운전자 J 씨가 입을 뗐다.
"드라이브하고 싶은 거 참고 있었어? 대개 좋아하네. 진작 드라이브하러 가자고 얘길 하지......"
"오늘 갑자기 드라이브하고 싶어서 얘기한 거야. 영화도 보러 갈 겸 겸사겸사."
내가 너무 좋아했나 보다. 이렇게 좋아하는데 왜 이제야 드라이브 가자고 했냐는 듯 J 씨가 나에게 물었다.
얼버무리는 날 위해 마침 라디오에서 상콤한 노래가 흘러나왔고, 지금의 내 기분을 100% 표현한 가사들에 감탄하며 큰 소리로 따라 불렀다. 아무도 없으니 내 세상이다.
난 크게 외치고 싶어
좋아 니 모든 것이 좋아
머리부터 발끝까지도
조그만 행동까지 하나 하나
다 좋아 니 모든 것이 좋아
너와 함께라면 즐거워
시간이 지날수록 더 좋아져
난 니가 필요해
매일같이 있게 해달라고 난 기도해
나 오직 너만이와 행복하게 살수가 있어
-박재범의 '좋아(JOAH)' 가사 중에서-
그러고 보면 나는 어릴 때부터 '사랑한다'라는 말보다 '좋아한다'는 말이 더 좋았다.
전공과목이었던 중국어를 공부할 때도 '爱' 보다는 '喜欢'이 주는 어감이 더 마음에 들었고, 작문 숙제에 가장 많이 쓰는 단어도 '喜欢'이었다.
喜欢 [ xǐ‧huan ] 1. 좋아하다 2. 즐거워하다 3. 유쾌하다
爱 [ài] 1. 명사, 동사 사랑(하다). 2. 동사 … 하기를 좋아하다. [‘喜欢’보다 어감이 무겁고 ‘好’보다 가벼움]
뭔가......'사랑'이라는 말은 특별해야 될 것 같다.
특별한 날, 특별한 순간, 특별한 사람에게 그 순간 힘을 쏟아 딱 한 번만 말해야 진정성이 인정될 것 같다.
그래서 '사랑'이라는 말을 써도 되는 순간인지 고심하게 된다.
'좋아'라는 말은 언제든 사용이 용이한 것 같다.
평범한 날, 평범한 순간, 곁에 있는 사람에게 지금의 내 감정이 전달되도록 자꾸자꾸 말해도 될 것 같다. 고심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나는 만만하게 손이 가는 '좋아'라는 말이 좋다.
아무도 없는 길에서 신나서 손을 흔드는 나
"좋다. 그치?"
"그래, 니가 좋음 나도 좋아."
적당한 속도, 선선한 날씨, 내 기분을 딱 맞춘듯한 음악, 그리고 우리.
좋지 아니한 것이 하나도 없는 지금 이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은 토요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