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2일~14일 3일 동안 감기에 걸려 유치원에 가지 못한 조카를 대신 돌보고 난 뒤 지독한 감기에 걸려버렸다. 내 인생 통틀어 이렇게 오랜 기간 일상생활을 못할 정도로 심한 감기에 걸려 있어 본 적이 없었다. 신종플루에 걸렸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병원에서 처방받은 감기약을 아직 복용 중이다. 강한 항생제 덕에 쾌변 인생이었던 내가 변비까지 걸려버렸다.
10월 22일 올케가 둘째 조카를 출산했다.
주말부부인 동생네를 대신하여 올케가 조리원에서 돌아오기 전까지 조카를 돌봐주기로 약속했고, 3주 전부터 나는 동생집에서 생활 중이다. 지난주에는 동생과 함께 조카를 돌보았지만, 오늘부터 한 주동안은 오롯이 나 혼자 5살인 조카를 돌보아야 한다.
머리 좋은 내 동생은 힘내라며 오늘 내 통장에 소정의 금액을 입금시켜 주었다.
이것이 오래간만에 느끼는 금융 치료인겐가!
9시 50분까지 조카를 유치원에 보내고, 4시 하원 시간에 맞춰 그녀를 데리러 다시 유치원에 간다.
유치원 하원이 끝이 아니다. 월화는 귀가 후 집에서 몬테소리 수업을 하고, 수목은 언어 수업과 심리 수업을 위해 '노리센터'에 정해진 시간까지 그녀를 데려다주고 기다렸다가 다시 그녀를 데리고 와야 한다. 아! 중간 간식을 드셔야 하기에 요구르트와 귤, 사탕이나 젤리를 반드시 가지고 가야 그녀의 짜증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
조카의 손을 잡고 온 낯선 나를 쳐다보며 얼굴에 물음표를 한가득 안고 서있는 유치원 선생님들과 노리센터 선생님들에게 나의 신분이 '고모' 임을 밝히면, 다들 이렇게 말한다.
"아! 이모가 아니고 고모시군요."
나는 '고모'가 없기에, '고모'인 나조차 '고모'라는 단어가 입에 잘 붙지 않는다.
모든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그 이후가 나에겐 가장 힘든 시간이다.
먹기 싫어하는 그녀에게 저녁밥을 배불리 먹이고, 과자를 먹고 싶어 하는 그녀의 입에 과자 대신 과일이나 주스를 먹이는 미션을 이뤄내야 하며, 샤워하기 싫다며 칭얼대는 그녀를 어르고 달래 샤워를 시키고 물놀이를 더 하고 싶다며 옷을 입지 않으려는 그녀를 다시 어르고 달래 감기 걸리지 않도록 재빠르게 내복을 입히고 머리를 말린다. 잠들기 전 과자를 먹지 않은 것이 억울하다는 듯 다시 젤리를 달라며 칭얼대는 그녀의 입에 5개 정도의 젤리를 넣어주고 치카치카 노래를 불러주며 이를 닦이고, 저녁 9시 무사히 그녀를 잠들게 하는 일이 결혼하지 않은, 아이를 키워본 적은 더더군다나 없는 나에겐 너무나 버거운 일이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해내야 한다.
우리 집에 손님으로 온 조카를 하루 이틀 정도 돌보는 것과 내가 그녀의 일상에 들어와 있는 지금, 마음가짐이 너무 다르다.
그녀의 임시 보호자가 되어, 오늘 하루 있었던 조카의 일상을 선생님들께 전해 들으며 내가 주체가 되는 하루보다는 그녀의 일상이 평소처럼 유지될 수 있도록 모든 것이 그녀의 스케줄에 맞춰 내가 움직이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옷 하나 입히는 것도 내 맘대로 되지 않고 시간 맞춰 유치원에 보내는 것도 쉽지가 않다.
모든 것이 쉽지 않고 내가 계획한 대로 순순히 들어주지 않는 조카를 보고 있자니 정말 마음속에 '참을 인' 이 한가득 새겨지는 기분이다.
이래서 동갑이어도 엄마의 역할을 하고 있는 친구들이 더 어른스럽게 느껴졌나 보다.
분명 나는 지금 이전처럼 날 위한 시간을 보내며 글을 쓰고 있는데 이전과는 다른 기분이다.
미세하게 두통이 있고, 잠을 8시간이나 잤는데도 마치 4시간만 자고 일어난 것처럼 계속 잠이 몰려온다. 건조기에서 수건을 꺼내어 정리를 해야 하고, 설거지도 해야 하고 식탁에 널브러진 각종 반찬통도 치워야 하는데 몸이 천근만근이다. 비타민을 챙겨 먹고, 피로회복제를 약국에서 사 먹었는데도 내가 정말 먹는 것이 맞는지 의심스럽다.
그녀의 하원이 한 시간 정도 남아있는 지금, 미리 한숨 때려 놓아야 할지 TV를 보며 심신을 달래 놔야 할지 모르겠다. 무엇을 하기엔 너무 부족한 한 시간이긴 하다.
원래는 글을 쓰고 5번 정도는 수정 작업을 거치는데, 오늘은 2번 정도 훑으니 이 작업도 고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