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자수.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다가.
최근 면접에 떨어지고 울적한 기분을 떨쳐내려 배우고 싶었던 프랑스 자수 수업을 신청했다.
주 1회 작업실을 방문하여 2시간 동안 선생님께 자수 기법을 배우고, 다음 수업일까지 숙제를 해가야 한다.
선생님이 내주신 숙제를 다 해가려면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짧게 느껴진다. 잡생각 할 겨를이 없다.
몰두할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역시 스트레스 해소에 탁월하다.
오늘도 새로운 기법을 배운다는 생각에 설레어하며 작업실로 향했다.
선생님이 내어준 따뜻한 홍차를 마시며 바늘과 실을 잡은 두 손을 쉬지 않고 계속 움직였다.
내 입도 쉬지 않고 말하느라 바쁜 두 손에 버금갈 정도였다. 선생님도 나와 마찬가지시다.
대화를 이어가다 뭔가 생각났다는 듯 선생님이 나에게 질문하셨다.
"그런 적 없어요? 본인의 사이즈보다 큰 사이즈를 주문하는 엄마를 보며 의아한 적? 내가 보기엔 55 사이즈도 맞을 거 같은데 늘 엄마는 66이나 77을 주문하더라고요. 그런데 그게 또 입으면 크지도 않고 딱 맞더라고. 희한하게."
"맞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한 적 있어요! "
가끔 '나만 그렇게 느끼나?' 싶었던 의아했던 상황을 상대방이 먼저 의아하다는 듯 물어봐주면 친밀감이 샘솟곤 한다. 조용조용 얌전 빼며 대화하던 나의 가식이 한 꺼풀 벗겨지며 격하게 선생님의 질문에 공감했다.
"그런데 40대가 되니 엄마가 이해되더라고요. 내가 지금 20대 때랑 몸무게가 똑같은데, 그때 산 코트를 어제 옷정리를 하다 입어봤거든요? 안 맞아 안 맞아. 어깨랑 팔뚝이 꽉 껴. 그리고 전반적으로 뭔가 옷이 태가 안 살아. 아. 이게 바로 나잇살이구나~ 확연히 느껴지더라고"
선생님은 본인의 팔뚝을 만지작만지작 거리며 몸소 체험하여 알게 된 비밀을 나에게만 털어놓으시는 듯 나뿐인 작업실에서 아무도 엿듣지 못하게 목소리를 한 톤 낮췄다.
"엥? 몸무게가 같은데 옷이 안 맞다고요? 그럴 리가요. 옷이 줄어든 게 아닐까요?"
"비싼 코트라 내가 얼마나 철저하게 관리했다고~ 옷에 변형이 있을 리는 없어."
선생님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수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옷장을 열었다.
3년 전 여름, 해외여행을 계획하며 두 달 동안 샐러드만 먹으며 인생 몸무게를 얻었던 적이 있었다.
날씬해진 몸에 맞춰 신나게 옷을 사댔고 여름이 가고 요요가 오면서 그때 산 옷들은 그렇게 한여름밤의 꿈처럼 다신 입을 수 없게 되었더랬다.
용기 내어 그 옷들은 꺼내 침대에 펼쳐 놓았다.
퇴사 후 기구 필라테스와 만보공원 걷기 운동, 1일 1식을 꾸준히 한 덕에 그때만큼은 아니지만 살이 좀 빠져서 지금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기대하며 입어 보았다.
다행히 옷이 내 몸에 들어는 왔다. 단지 옷 태가 나지 않고 편하게 움직일 수도 없을 뿐이었다.
"너 그거 나잇살이야. 이제 그 옷 못 입어."
움직이지 못하는 나를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이젠 너도 진실을 알 때가 되었다는 듯 건넨 엄마의 말을 믿고 싶지 않았다.
자수 선생님이 코트를 입어보고 느낀 그 감정을 나도 똑같이 느끼게 되었다.
찌다 찌다 나잇살까지 쪄버린 내가 거울 앞에 서 있었다.
그렇다고 꺼내 입을 날을 기약할 수 없어져버린 그 옷들을 당근마켓에 팔아버리거나, 친구에게 나눠 주거나, 버리고 싶진 않았다.
왠지 옷들을 버리면 나의 기대도 버려질 것 같았다. '언젠가 입을 날이 있겠지.'라는 허황된 기대 일지라도 말이다.
'정신 차리자!'
나이 듦이 서글퍼져 침대에 널브러져 있다가 벌떡 일어났다.
화장대 구석에 처박아 둔 괄사를 꺼내 얼굴과 목, 다리 곳곳의 근육을 풀어준 뒤, 고주파 디바이스 기계를 켜 콜라겐 크림을 잔뜩 바른 얼굴에 문질러댔다.
얼굴 마사지를 끝내고 골프공 두 개를 꺼내 들어 발바닥 지압 마사지를 해준 뒤 요가매트를 펼쳐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서글퍼할 겨를이 없다.
'예뻐져라... 예뻐져라... 아, 아니다. 젊어져라... 젊어져라...'
이젠 더 이상 예뻐지기는 바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