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읽기 두 번째 시간
20220119 수요일, 카페 얼터너티브
두 번째 수요일에 찾은 카페 역시 아인슈페너가 유명하단다. 슈페너와 자인이, 어쩌면 [존재와 시간]의 수요일은 반드시 아인슈페너를 먹어야만 한다는 법칙이 생겼을지도. 마침(?) 오늘은 눈이 내렸으니까, 눈을 닮은 흰 크림을 커피에 얹어줘야만 하니까. '현존재', '실존'같은 단어를 이해하려면 새하얀 크림이 한겨울 내내 내린 눈의 양만큼 필요하다. 도시 전체를 다 담을 수 있는 거대한 커피잔에 얹은 크림, 2호선에서 바라본 한강은 꽁꽁 언 수면 위로 흰 눈이 크림처럼 쌓여 있었다. 겨울의 풍경, 겨울의 현존.
현존(재) : 본질적 존재에 대립하는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존재.
현존재는 언제나 자기 자신을 그의 실존에서부터, 즉 그 자신으로 존재하거나 그 자신이 아닌 것으로 존재하거나 할 수 있는 그 자신의 한 가능성에서부터 이해한다.
-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28쪽
나의 존재를 가능성으로 이해한다는 표현에 대롱대롱 매달린다. 내가 카페에서 [존재와 시간]을 읽으며 시간을 보낼 가능성, 이 장소와 시간과 책을 선택한 순간 탈락하는 무수한 가능성들. 오늘 내가 갔을 수도 있는 카페들과, 다른 시간대와, 이 책이 아닌 다른 책들. 이 책을 ‘읽지’ 않을 가능성.
오늘 유독 책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사실 지난주부터 그랬다... 어제 책 정리하다 새벽 두 시 넘어 잠들어서 피곤하다.... 다 집어치우고 잠이나 자고 싶다.... 지금 쓰는 이 글은 공개가 어렵겠는데?
손이 움직이는 대로 나아가는 글, 사실 이 글 자체가 얼렁뚱땅 마구잡이 글쓰기다. 막춤이 춤보다 어렵고 막글이 정제된 글보다 오히려 더 까다롭다. 읽는다. 이해가 안 가서 다시 읽는다. 읽은 내용이 뭔지 몰라서 또 읽는다. 같은 부분만 세 번 넘게 읽는다. 오늘의 슈페너는 호두 크림이 얹어진 커피라 이름이 월-E고 아주 마음에 드는 작명이다. 맛도 호두마루 맛이라 마음에 든다. 누가 따끈하게 데운 크로와상에 호두마루 아이스크림을 넣어 먹으면 세상 맛있다고 했다. 먹기도 전에 벌써 맛있다. 세상의 모든 쩝쩝박사님들 다 복 받으시라.... 지금 내가 졸고 있나?
현존재는 존재하면서 존재와 같은 어떤 것을 이해하는 그런 방식으로 존재한다.
- 같은 책, 35쪽
한 문장에 존재가 너무 자주 등장하는 거 아니니? 존재야, 눈치 챙겨. 이름이 존재면 성을 붙이면 김존재, 박존재, 이존재, 이존재와 이시간. 얼굴도 키도 똑같은 쌍둥이가 손을 잡고 조명 안으로 걸어 들어온다. 우리 이름은 이존재와 이시간입니다. 엄마가 [존재와 시간]을 그렇게 좋아하셨대요. 소풍 갈 때도 가방에 도시락이랑 책이랑 꼭 챙겨가시고, 선 볼 때도 상대방에게 [존재와 시간] 읽었냐고 물어보고 안 읽었다 하면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버리셨대요. 우리 집에서 가장 해가 잘 들고 청결한 장소에 책이 모셔져 있어요. 손때 하나 묻지 않은 깨끗한 책이에요. 엄마의 운명을 바꾼 책, 눈이 펑펑 내린 그날, 우리가 잉태된 그날, 그 책을 계기로 우리가 '존재'하게 되었죠, 이 '시간'에. 우리는 곧 이름을 바꿀 것이에요. 우리의 이름이 우리에게서 존재의 힘과 시간의 일부를 빼앗아가거든요. 존재는 존재감이 없고 시간은 모든 일에 시간이 두 배로 들어요. 그런데 어느 눈 오는 날.... 같은 소설을 꿈꾸는 지금.
이 전통은 그에게서 자주적인 처신, 물음과 선택을 빼앗는다. -같은 책, 40쪽
문장이 반수면상태의 내 눈두덩이를 후려친다. 나의 역사가 나의 현존이자 내 존재를 방해한다? '나는 이런 사람이야' 단정 짓고 그 틀 안에서만 움직이는, 나 자신을 이해할 기회마저 박탈하는? 이 수요일 읽기 시간조차 나의 고루한 전통으로 전락할까?
적어도 책 한 권을 지정된 요일에 읽고 그 과정을 전부 기록한 적은 없었다. 이건 내 현존의 새로운 도전이다. 틀을 깨는 역사 바깥의 행위. 물론 이 글은 나의 모든 생각을 말함으로써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폭설주의보가 내린 수요일, 카페 얼터너티브, 서론 완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