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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wooRan Jan 26. 2022

존재야, 눈치 챙겨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읽기 두 번째 시간

20220119 수요일, 카페 얼터너티브


 번째 수요일에 찾은 카페 역시 아인슈페너가 유명하단다. 슈페너와 자인이, 어쩌면 [존재와 시간] 수요일은 반드시 아인슈페너를 먹어야만 한다는 법칙이 생겼을지도. 마침(?) 오늘은 눈이 내렸으니까, 눈을 닮은  크림을 커피에 얹어줘야만 하니까. '현존재', '실존'같은 단어를 이해하려면 새하얀 크림이 한겨울 내내 내린 눈의 양만큼 필요하다. 도시 전체를  담을  있는 거대한 커피잔에 얹은 크림, 2호선에서 바라본 한강은 꽁꽁  수면 위로  눈이 크림처럼 쌓여 있었다. 겨울의 풍경, 겨울의 현존.


현존() : 본질적 존재에 대립하는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존재.


현존재는 언제나 자기 자신을 그의 실존에서부터,   자신으로 존재하거나  자신이 아닌 것으로 존재하거나   있는  자신의  가능성에서부터 이해한다.

-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28


나의 존재를 가능성으로 이해한다는 표현에 대롱대롱 매달린다. 내가 카페에서 [존재와 시간] 읽으며 시간을 보낼 가능성,  장소와 시간과 책을 선택한 순간 탈락하는 무수한 가능성들. 오늘 내가 갔을 수도 있는 카페들과, 다른 시간대와,  책이 아닌 다른 책들. 이 책을 ‘읽지’ 않을 가능성.


오늘 유독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사실 지난주부터 그랬다... 어제  정리하다 새벽   넘어 잠들어서 피곤하다.... 다 집어치우고 잠이나 자고 싶다.... 지금 쓰는  글은 공개가 어렵겠는데?


몽롱한 세계와 현존재와 막 쓴 글


손이 움직이는 대로 나아가는 , 사실   자체가 얼렁뚱땅 마구잡이 글쓰기다. 막춤이 춤보다 어렵고 막글이 정제된 글보다 오히려  까다롭다. 읽는다. 이해가  가서 다시 읽는다. 읽은 내용이 뭔지 몰라서  읽는다. 같은 부분만   넘게 읽는다. 오늘의 슈페너는 호두 크림이 얹어진 커피라 이름이 -E 아주 마음에 드는 작명이다. 맛도 호두마루 맛이라 마음에 든다. 누가 따끈하게 데운 크로와상에 호두마루 아이스크림을 넣어 먹으면 세상 맛있다고 했다. 먹기도 전에 벌써 맛있다. 세상의 모든 쩝쩝박사님들   받으시라.... 지금 내가 졸고 있나?


현존재는 존재하면서 존재와 같은 어떤 것을 이해하는 그런 방식으로 존재한다.

- 같은 , 35


한 문장에 존재가 너무 자주 등장하는 거 아니니? 존재야, 눈치 챙겨. 이름이 존재면 성을 붙이면 김존재, 박존재, 이존재, 이존재와 이시간. 얼굴도 키도 똑같은 쌍둥이가 손을 잡고 조명 안으로 걸어 들어온다. 우리 이름은 이존재와 이시간입니다. 엄마가 [존재와 시간]을 그렇게 좋아하셨대요. 소풍 갈 때도 가방에 도시락이랑 책이랑 꼭 챙겨가시고, 선 볼 때도 상대방에게 [존재와 시간] 읽었냐고 물어보고 안 읽었다 하면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버리셨대요. 우리 집에서 가장 해가 잘 들고 청결한 장소에 책이 모셔져 있어요. 손때 하나 묻지 않은 깨끗한 책이에요. 엄마의 운명을 바꾼 책, 눈이 펑펑 내린 그날, 우리가 잉태된 그날, 그 책을 계기로 우리가 '존재'하게 되었죠, 이 '시간'에. 우리는 곧 이름을 바꿀 것이에요. 우리의 이름이 우리에게서 존재의 힘과 시간의 일부를 빼앗아가거든요. 존재는 존재감이 없고 시간은 모든 일에 시간이 두 배로 들어요. 그런데 어느 눈 오는 날.... 같은 소설을 꿈꾸는 지금.


이 전통은 그에게서 자주적인 처신, 물음과 선택을 빼앗는다. -같은 책, 40쪽


문장이 반수면상태의 내 눈두덩이를 후려친다. 나의 역사가 나의 현존이자 내 존재를 방해한다? '나는 이런 사람이야' 단정 짓고 그 틀 안에서만 움직이는, 나 자신을 이해할 기회마저 박탈하는? 이 수요일 읽기 시간조차 나의 고루한 전통으로 전락할까?


적어도 책 한 권을 지정된 요일에 읽고 그 과정을 전부 기록한 적은 없었다. 이건 내 현존의 새로운 도전이다. 틀을 깨는 역사 바깥의 행위. 물론 이 글은 나의 모든 생각을 말함으로써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폭설주의보가 내린 수요일, 카페 얼터너티브, 서론 완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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