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부터 ‘일’ 합니다
기간제 교사 지원 서류를 제출하기 위해 클릭한 내 이력서는 멈춰 있던 2년의 시간이 딱딱한 돌처럼 굳어 있었다. 이 돌멩이들은 쓸모가 없다. 출산과 육아는 유의미한 경력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그래서 아무런 기대 없이 원서를 넣을 수 있었다. 눈에 빤히 보이는 경력 단절의 흔적이 그대로 드러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가벼운 마음으로 집 근처 학교에 집어던졌다. 오랜만에 일하려면 오래 기다려야겠지, 하고 생각했기에 서류 통과 연락을 받았을 때 진심으로 놀랐다.
면접 일시를 통보하는 전화가 왔을 때 나는 카페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할 나이에 급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고 긴 투병 끝에 완치되었으나 기대했던 미래를 잃은 여성의 에세이었다. '시간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난치병 환자로 사는 건 이등 시민으로 사는 것과 같았다. 하루하루가 더디게 진행되는 응급 상황이었다. 내 삶은 하얀 네 개의 벽 안으로, 형광등 불빛이 쏟아지는 병상 위로 쪼그라들었다.'(술라이커 저우아드, [엉망인 채 완전한 축제], 128쪽) ‘쪼그라들었다’라는 표현에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 내 상황이 난치병 환자와 비슷하다는 말은 절대 아니지만, 쪼그라든다는 그 감각만은 이해할 수 있었다. 다들 각자 소망하는 목적지로 씩씩하게 나아가는데 나는 말도 못 하는 아이와 집 안에 갇혀 있다는 느낌, 누군가 내 삶에 정지 버튼을 누른 게 아닌가 하며 실체 없는 그 손가락에 대고 화를 내던 시간들은 ‘쪼그라들어’ 있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내 책을 한 권 더 출간할 수 있으리라 근거 없이 자신했다. 소설만 완성하면 책이 저절로 나오리라고, 혹 책이 나오지 않으면 창작지원금을 받으며 글만 쓸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아이를 키우며 소설을 쓴 작가의 작품을 모두 읽어 보시겠습니까? 아니요, 별로 궁금하지 않은데요. 투고는 거절되고 공모전은 낙선하고 창작지원금 선정 목록에 내 이름은 없었다. 내 삶이 노트북 화면 하나 크기로 쪼그라들었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이제 나는 나 자신의 창작지원금을 벌어야 한다. 나를 위해서, 그리고 나를 기다려 준 아이를 위해서.
반년의 시간 동안 어린이집에 훌륭히 적응한 아이를 믿고 올해 초 채용 공고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글쓰기를 제외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비정규직 학교 교사. 글은 나의 ‘꿈’으로, 교직을 나의 ‘일’로 분리하고 지원 조건을 확인했다. 아이를 낳기 전에도 연초에 공지되는 1학기~1년 기간제 자리는 경쟁이 치열했다. 한 번도 3월 개학날부터 근무해 본 적 없었다. 하물며 2019년 이후로 아무 경력 없는 이력서는 휴지조각과 비슷한 종류의 것이라 생각하고 어떤 기대도 없이 지원했다. 기대가 없었기에 긴장 없이 면접을 치렀다. 2년의 공백 사유를 솔직하게 답했다.
“2년 동안 아이 낳고 키웠습니다.”
내가 왜 합격했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자리가 6개월의 급한 공백을 메꿔야 하는 것이었고, 기간제 지원자가 많지 않았으며, 육아와 일의 병행을 다른 직장보다 이해하는 학교였기에 나를 받아주지 않았을까 한다. 어쨌든 나는 공인된 교사자격증과 짧지만 꾸준한 경력을 보유한 전문 인력이니까.
면접 다음 날 합격 전화를 받고 가장 먼저 한 것은 내 경력증명서들을 정리하는 일이었다. 임용고시를 완전히 포기하고 소설을 쓰기로 다짐한 뒤로 스스로의 창작지원금을 벌어 왔던 나의 '일'을 11장의 서류가 증명하고 있었다. ‘일’로 맞닥뜨렸던 어떤 곳은 편안했고, 어떤 경험은 당황스러웠으며, 어떤 일은 나를 비탈길로 몰아붙였다. 일이 나를 바닥으로 끌어내리려 발악하면 정색하고 거리를 유지했다. '나는 외부인이야.' 경고하고 한 발 뒤로 물러나 일의 양상을 관찰했다. 그 모든 일의 경험과 시간이 내 글의 양식이 되었다. 일과 나 사이의 거리두기 덕분에 우리 관계가 썩 괜찮지 않았나 생각한다.
2년 전과 달라진 건 지금 내 옆에서 사이렌을 울리며 소방차 운전에 한창인 27개월 아이의 존재. 일과 나 사이에서 뛰어다니는 새 생명체에 당황한 일이 정색한다. "얘는... 뭐니?"
"어린이집... 갈 거야."
3월부터 4살 반으로 진급하는 아이의 수료식 날, 가방에 연장보육 시간을 신청하는 서류를 챙겨 보냈다. 학교에도 오전 육아시간 사용을 요청했다. 아직 말도 느리고 배변 가리기도 요원한 아들은 누구보다 밥을 잘 먹고 그토록 거부하던 마스크를 갑자기 잘 쓰게 되었다. 코로나 확진자 수 10만 대가 일상이 되고 바깥 세계의 요란함이 근심스럽지만, 무섭다는 이유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어떤 것도 얻을 수 없다. 줌 수업 연습을 하고, 숟가락질 훈련을 하고, 등하원 스케줄을 맞춘다. 새로운 수업, 새로운 반, 새로운 생활이 쪼그라든 삶의 주름을 편다. 나도, 아이도, 남편도, 각자의 성장을 위해, 이제 일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