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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wooRan Apr 30. 2022

완벽한 육아란 없다

일과 육아 병행 두 달 간의 회고록

수면마취로 하셔야겠는데요


결국 수면마취가 결정되었다.  아래 아기 손톱만  다래끼 하나 없애기 위해. 작년 크리스마스 즈음부터 생긴 오른쪽  아래 콩다래끼가 도무지 없어지질 않아 대형병원 소아안과를 예약하여 진단을 받았다. 통제 불가능의 28개월 작은 인간으로부터 다래끼를 제거하기 위해 전신마취가 필요하다고 했다. 4개월 가까이 항생제와 안연고 공격에도 끄떡없었던 지긋지긋한 걱정거리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사인을 했다. 수술 동의서, 각종 검사, 전신마취 주의사항, 반나절 이상의 병원 대기. 나와 남편은 각각 따로 가족돌봄휴가를 냈다. 나는 진단을 위해, 남편은 수술 당일 보호자 동석을 위해.


수술은 무사히 잘 받았습니다 ㅠㅠ


3월 2일 개학 당일 어린이집이 문을 열자마자 아이를 맡기고 출근하면서 기도했다. 아프지만 말자, 나도 너도 우리 모두. 3월이 가기 전 아들 코에서 콧물이 흘렀다. 어린이집 확진자 발생으로 신속항원검사를 받았다. 4월 초 내가 극심한 목감기에 걸렸다. 매일 자가 키트로 검사하면서 목을 쥐어짜 수업을 했다. 다래끼 수술 전날 남편과 아이 PCR 검사 결과를 기다리며 설마 했다. 재감염은 아니겠지? 수술 당일 나는 출근했고 회복된 목으로 수업을 하면서 불안했다. 별일 없겠지?


심연이 나를 끌어당길 때


지난주부터 유독 불안에 떨며 아슬아슬한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매일이 벼랑 끝을 걷는 기분이었다. 한 발이라도 잘못 디디면 돌이킬 수 없는 심연으로 추락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아이에게 닥칠 수 있는 수많은 질병들이 불안하다. 아직까지 말이 트이지 않은 아이의 상태가 불안하다. 내가 출제한 시험문제가 불안하다. 처음으로 처리하는 결재문서들이 불안하다. 선거가 끝나고 이어지는 뉴스들이 불안하다. 어제 17도였던 기온이 하루 만에 27도로 훌쩍 뛰어버리는 이 기후가 불안하다. 불안하다, 세계의 모든 요소가.


지난주 고사 기간 내가 담당한 과목 시험을  학생  명이 나를 찾아왔다. 문제 하나가 이상하다고 짚어내는데  자리에서 바로 답을 하지 못했다. 그날 저녁 아이는  먹던 미역국을 거부하고 밥숟가락을 던지며 짜증을 냈다.  분노에 아이는 쉽게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당연히 알던 지식을 까먹고 너무 쉽게 화를 낸다.  불안을 견딜 수가 없어서. 모두가 나를 벼랑 아래로 등 떠미는  같아서.


모든 순간이 이렇게 완벽하길 바라지만..


나는 무엇을 원했던가? 아이는 상처 하나 없이 건강하게 뛰어다니고, 학생들은  수업에 즉각 몰입하고,  글은 흠잡을  없이 모두의 사랑을 받고, 매일 파란 하늘의 미세먼지 없는 세계 속에서 누구도 증오하지 않는 완벽한 . 아이는 오늘 아침 공원을 뛰어다니다 넘어져 얼굴을 긁혔고, 학생들은  시야 밖에서 휴대폰을 하는 방법을 호시탐탐 연구하고,  글은 서랍 속에서 나오지 못한다. 세상은 1도씩 온도를 높이며 미래를 갉아먹는다. 이런 세상에서 불안에 떨며  바에야 차라리 모든  포기하는  방법일까?


불완전함을 받아들이기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는 연습


다음 날 아침 검토한 시험문제는 문제가 없었다. 아이는 거부하던 밥을 김에 싸 주자 넙죽 받아먹었다. 비가 내린 뒤 깨끗해진 공기 속에서 만년필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가게를 찾아갔다. 푸른빛의 잉크로 적어 내려 가는 내 문장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일을 시작하고 두 달, 특히 최근 한 달 간은 소설은커녕 일기도 거의 쓰지 않았다. 공백이 길어진 브런치 글 목록이 보여주고 있었다. 완벽한 글을 쓰지 못해 불안에 떨기만 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진실을. 모든 문제 상황을 통제하려는 목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아이는 자랄수록 내 예상을 벗어나리라. 나는 내 일에서 때로 오타를 내리라. 흠집 하나 없는 완벽한 육아도 일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불완전함 속에서 헤매며 조금 덜 불완전한 곳으로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완벽한 존재인 신도 때로 실수를 저질러 인간을 창조했다고, 불완전함이란 인간의 속성이라고 생각한다. 불완전한 내 글에 이따금씩 달리는 댓글을 읽을 때, 좋아하는 동요를 비분절화된 음성으로 흥얼거리며 웃는 아이를 볼 때, 일주일 만에 바닥까지 싹 비운 아이의 식판을 치울 때, 불완전함이 주는 완전함의 기대치에 대해 생각한다.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내일이 주는 행복감만큼은 완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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