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일이 정해지고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휴대 가능한 크기의 수첩 구하기였다. 평소에 가지고 다니는 가죽 노트는 매일 출퇴근에 동행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묵직하고 두툼한 나의 노트는 출근과 어울리지 않는다. 가지고 다닌다 해도 노트를 펼쳐 뭔가 쓸 시간이 없다. 코트나 카디건 주머니에도 무리 없이 들어가고 슬쩍 펼쳐도 티가 나지 않는 작고 가벼운 수첩이 필요했다.
어릴 때부터 유독 노트와 수첩에 집착했다. 하굣길에 단골 문구점에 방문해 새로 들어온 수첩을 찾아보는 게 나의 취미였다. 취향저격의 새 수첩을 사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다.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수첩과 노트를 사는 건 아니었다. 대부분의 수첩들은 첫 페이지의 순결함을 유지한 채 내 가방 앞주머니 자리를 지켰다가 다음 신참 수첩에게 '애착 수첩' 타이틀을 넘겨주었다.
새 수첩의 텅 빈 페이지가 좋았다. 거기엔 무엇이든 쓸 수 있다는 무한한 가능성이 실존했다. 가능성에 취해 아무것도 쓰지 않고 바라만 보았다. 어쩌다 한 번씩 용기 내어 뭔가를 썼다가 마음에 들지 않아 찢어버리고, 찢긴 흔적에 속이 상해 그 수첩을 서랍 가장 안쪽으로 치워버리기도 했다. 무엇이든 쓸 수 있기에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다면, 상처도 없겠지만 성장도 없다. 하지만 뭔가 하게 되면 나는 어떤 식으로든 성장한다. 심지어 시도했으나 무엇도 제대로 해내지 못했을 때조차도 성장한다. 그러니 일단 써보자. 다리가 불탈 때까지는 써보자. 그리고서 계속 쓸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하자. 마찬가지로 어떤 일이 하고 싶다면, 일단 해보자. 해보고 나면 어떤 식으로든 우리는 달라져 있을 테니까. 결과가 아니라 그 변화에 집중하는 것, 여기에 핵심이 있다.
- 김연수 [소설가의 일] 98쪽
임용고시 준비를 접고 소설을 쓰기로 결심한 지도 2년 뒤 이 부분을 읽은 순간 깨달았다. 나는 죽기 직전까지 이 문장들을 외우고 다니리라는 사실을. 내 유언의 마지막 문장은 '아무것도 쓰지 않으면, 넌 그냥 아무거나라는 뜻이란다.'가 되리라는 것을. 유언이 정해진 이상 거기에 맞춰(?) 최선을 다해 뭐라도 써야 했다. 집에 사두고 아까워 뜯지 못했던 몰스킨 한정판 노트를 꺼내 첫 문장을 썼다. 두 번째 문장을 썼다. 한 페이지를 채웠다. 노트 한 권이 내 글로 꽉 찼다. 다음 노트를 꺼냈다. 책을 사고 사은품으로 받은 수첩을 꺼내 영감 노트로 나란히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쓴 수첩과 노트들이 단편소설이 되고, 소설집으로 묶여 나오고, 원고가 되었다. 쓰인 노트가 꿈의 구현이다. 가능성은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는다. 행동이 나를 구한다. 불확실한 미래를 문장의 형태로 현재에 붙잡을 수 있다. 출근 전 주말 성수동의 애정 하는 문구 전문점에서 고른 손바닥 하나 크기의 검은 가죽 수첩은 하나의 약속이었다. 단 빈 페이지를 채워야만 실현 가능한 약속.
한 달 동안 틈틈이 쓴 메모들을 다시 읽는다. 이 글의 초고도 이 수첩에 썼다. '나라는 존재의 유통기한은 언제까지라고 못 박혀 있을까?' 별 의미가 없는 듯하면서도 어느 날 한 편의 소설로 완성될지 모를 질문들. 한 글자도 쓰지 못하는 하루라도 바로 옆에 수첩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안심한다. 주머니에 넣을 수 있는 나의 수첩은 휴대 가능한 나의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