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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wooRan Dec 31. 2022

22년 세부능력특기사항

2022년 결산

60일 이상 글을 업로드하지 않으면 알람이 뜨는 걸 처음 알았다. 변명처럼 들리고 당연히 변명이지만 바빴다. 기말고사 출제, 수행평가 마감, 첫 수능감독, 첫 포장이사, 성적처리, 각종 행사 등등. 겨울방학식을 하고 돌아온 날 기다렸다는 듯 몸살이 났다. 이불을 둘둘 감고 생강차를 홀짝이며 과목별 세부능력특기사항을 쓴다. 일 년 동안 국어 수업을 맡았던 고등학교 1학년 전체 220명가량의 아이들에게 나는 생기부에서 750바이트 정도의 흔적을 남기고 잊히겠지. 내 이름을 아는 학생도 거의 없이 나는 가장 먼저 잊힐 것이다.


일터의 귀여운 방해꾼^^*


기대가 없으니 편했다. 교사가 나의 1순위가 아니라는 생각은 내게 자유를 허용했다. 일 년 동안 한 번도 학생들에게 화를 내지 않았다. 너희들도 다 계획이 있겠지, 너희들은 내 정체(?)를 모르니까 따위의 중2병스러운 생각이 나를 지켰다. 바쁜 업무 속 단 한 줄도 글을 쓰지 못할 때 바닥으로 추락하려는 나의 자아를 지켰다. 무의미한 날만 남진 않았다. 가끔 내가 하는 말이 온전히 이해되고 있다는 순간들이 있었다. 성석제의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수업을 하면서 자기 자신을 지키는 일의 어려움에 대해 설명하던 때는 내 수업을 내가 녹화하고 싶었다. 위험과 손가락질을 무릅쓰고 오롯이 자신의 소신 아래 본인과 상관없는 궐기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경운기를 끌고 새벽에 홀로 나서는 황만근 같은 당당함을 나도 가지고 있다고 착각했다. 아주 잠깐.


변명처럼 들리고 당연히 변명이다, 이 글은. 연말에 쓰이는 참회의 글은 다 이런 식이다. 22년 1월 1일 다이어리 맨 앞장에 나는 선언했다. 올해 나는 한 편의 장편소설과 세 편의 단편과 에세이 세 묶음을 완성하겠노라고. 딱 한 편의 중장편 소설을 완성했다. 아들이 급성 폐렴으로 급히 입원했던 입원실 바닥에 허리를 굽힌 자세로 썼다. 다시 읽어보니 첫 문장부터 다시 써야 한다. 올해 전체를 통째로 다시 써야 한다. 그 이유는, 바빴으니까?


개미는 뚠뚠 일을 해서 뚠뚠 새신발을 사지 뚠뚠


재미있는 건 최근 몇 년 간 가장 큰 성취를 얻은 해가 22년이라는 사실이다. 불가능하다 여긴 두 가지를 얻었다. 돈과 경력, 그리고 성취에서 오는 자아 효능감. 나의 존재는 학생들에게, 학교에게 필요했고 정당한 대가를 받았다. 받은 것으로 꿈의 값을 치른다. 내가 번 월급은 내가 나에게 지불하는 창작지원금이라는 문장을 썼던 것 같고 여전히 유효하다. 이게 네가 원하던 일인가? 하면 한 번은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버지니아 울프의 말대로, 글쓰기에는 자기만의 방과 안정적인 수입이 필요하니까.


이사를 오고 방 하나를 서재로 만들었다. 좀 더 넓어진 책상에 앉아 올해의 세부능력특기사항을 작성한다. 초반부 각종 위기와 갈등 상황 속에서 의기소침할 때도 있었으나 적절한 타이밍에 금융치료로 새롭게 태어나는 활기찬 모습을 보임. 돈과 경력이라는 구체적인 목표 아래 진취적인 태도를 갖춤. 힘든 상황 속에서 소설 쓰기를 포기하지 않는 의지가 돋보임. 내년은 토끼해라 토끼띠로서 많은 기대가 된다는 말을 남김. 한 해 수고하셨고 내 어설픈 글들을 읽어주신 여러분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내년에 만나요~


이것은 나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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