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wooRan Jun 19. 2024

너는 너의 삶을 바꿔야 한다

크로스핏과 자기 수련

릴케의 시 <고대 아폴로의 토르소>가 재미있는 건, 아폴로의 토르소를 묘사하며 전개되던 시의 끝에서 솟아오르는 ‘너는 너의 삶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열린책들 ‘두이노의 비가’ 손재준 역)는 단정적인 시구의 흥미로움 때문이다. 너는 너의 삶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자기 계발의 광풍 이후로도 그 영향력이 살아 있는 지금 뻔한 문구처럼 보이다가도, 아폴로의 토르소에서 발견한 신의 장엄한 명령처럼 들리는 그 낙차가 좋다. 너는 너의 삶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내가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할 때 비슷한 말을 중얼거렸던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내 몸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쿵 다가오는 문장이 있다


페터 슬로터다이크의 철학서 [너는 너의 삶을 바꿔야 한다]를 읽다가 이 문장을 ‘자기수련의 재-신체화’로 해석한 부분에 눈이 갔다. 종교의 영향력 아래 영적 수련이 주도권을 쥐다가 20세기 이후 폭발적으로 증가한 스포츠 숭배와 고대 그리스의 육체 숭배를 연관지은 이 재해석은 아폴로의 월계관이 현대 올림픽 경기의 승자에게 씌워지는 것으로 구체화된다. 이제 자기수련의 방식은 몸을 움직이는 각종 운동과 스포츠로 이관되었다. 너는 너의 삶을 바꿔야 한다, 헬스장 벽에 액자로 만들어 걸어 두기 딱 좋은 문구처럼 보인다.


너는 너의 삶을 바꿔야 한다!


비로소 분명하게 보인다. 10년 전 소설 쓰기를 다짐하며 이를 위한 체력 증진을 목표로 집 근처 GX 전문 센터에 등록했을 때, 2년 뒤 센터가 문을 닫고 거기에서 맛만 본 크로스핏 전문 체육관을 찾아 버스를 타고 정식 박스에 방문했을 때, 내게 ‘운동하라’ 등 떠밀던 목소리 덩어리들을  압축해 한 문장으로 구체화하면 이것이겠구나, 너는 너의 삶을 바꿔야 한다!


파리 올림픽 개최가 다가오면서 스포츠가 가진 자기수련의 방식과 권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신체를 단련하고 기술을 연마하면서 무대 위에서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을 보며 우리는 열광하고 감동한다. ‘편안한 삶의 방식에 대한 너의 애착을 포기하라, 체육관에 나타나라, 완전한 것과 불완전한 것 사이의 차이가 너에게는 상관없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라, 성취-훌륭함, 아레테, 비르투-가 너에게 어떤 외래어로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어라, 너에게 새로운 전력투구에 대한 동기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라!(페터 슬로터다이크, [너는 너의 삶을 바꿔야 한다], 55쪽)’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을 달래고 고통을 이겨내며 스스로를 수련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우리는 스포츠 선수를 통해 배운다. 직접 운동을 통해 체화한다.


나는 점프가 싫어요…


어제 와드로 나온 박스 점프를 위해 박스를 끌고 오면서 중얼거렸다. 나는 박스점프가 싫어…나는 점프가 싫다. 나는 달리기가 싫다. 뛰고 달리는 동작이 싫다. 이는 학생 때 운동장에 줄지어 선 허들을 바라보며 느꼈던 공포에 맞닿아 있다. 장애물 달리기를 앞에 두고 느꼈던 공포는 몇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생생하다. 결국 허들 넘기에 성공했는지, 실패해서 넘어졌는지에 대한 기억은 전혀 나지 않는다. 체육을 앞둔 쉬는 시간에 교실 창밖으로 허들을 내려다보며 어떻게 하면 장애물 달리기를 하지 않고 넘어갈 수 있을까 필사적으로 궁리한 기억만이 남아 있다. 내 몸은 무겁고 나는 운동을 잘 못 하니 반드시 허들에 발이 걸려 넘어질 거야, 나는 실패할 거야, 그러니까 안 할 거야.


하기 싫고 잘 하지 못하는 일이 코앞에 닥치면 피하기 바빴다. 가기 싫은 곳은 가지 않는다. 나를 뽑을 확률이 희박하다면 애초에 원서를 넣지 않는다. 내가 싫어하는 건 실패할 확률이 높고 실패는 부끄럽고 부끄러운 건 싫다. 싫으니까 하지 않는다. 그게 내 삶의 방식이었다.


너는 너의 삶을 바꿔야 한다!


박스 점프를 하면서 몇 번 종아리가 박스 끝에 찍혀 멍이 들고 피가 났다. 그럼에도 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의 와드에 박스 점프가 나온 이상 할 수밖에 없다. 주어진 과제를 잘 못 하더라도 끝까지 할 수밖에 없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몸을 튕겨 박스 위로 뛰어오른다. 두 발이 확실하게 박스 위를 디딜 수 있도록 뛰고 또 뛴다. 박스 위로 몸을 넘긴다.


하기 싫어도 일단 일어나(ㅋㅋㅋ)


여전히 점프나 달리기 동작을 좋아하진 않는다. 하기 싫고 피하고만 싶은 공포의 감정은 거의 사라졌다. 수없이 뛰고 또 뛰면서 내가 못 뛰는 편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일단 하게 되면 하지 않았을 때 상상했던 고통은 별 것 아님을 알게 된다. 하지 않고 얻지 않느냐, 일단 해서 뭐라도 얻느냐. 거절 메일이 쌓여도 계속해서 소설을 투고하고, 아무도 읽지 않을지라도 끝까지 쓰고, 절대 보지 않을 것 같은 영화를 보고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과 대화를 나눠 보고 이전의 나라면 가지 않았을 장소에 가 본다. 과거의 내가 싫어했던 게 경험과 연습을 통해 좋아질 수 있다. 실패하더라도 얻는 게 있다. 실패는 부끄럽지 않다.


하기 싫은 것도 일단 할 것, 하면서 느끼는 불편함과 고통을 받아들일 것, 운동을 통한 수련은 곧 삶의 태도에 대한 수련이다.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너는 너의 삶을 바꿔야 한다!


스포츠 선수를 통해 배우는 자기 수련의 방식(연느님)
매거진의 이전글 중력을 거스르는 나비와 같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