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보다 쉬운 소설 쓰기 : 임신편6
어젯밤 거실에서 드라마를 보다 무심코 창밖을 바라보니 반쪽이 된 달이 남편의 머리 위에 걸려 있었다. 저 달이 만월이 되고 우리 아이는 곧 태어나리라. 저번 달 독서 모임에 가던 길 보름달을 바라보며 새삼 생각했다.
달 한 번 더 차오르면 예정일이구나.
어른이 되면 시간이 점점 빠르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다들 말한다. 어릴 때는 세상 모든 것이 신기하고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넘쳐나는 정보를 받아들이느라 하루가 길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기회가 줄어들고 깜짝 놀랄 만한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작년 말 다이어리를 정리하면서 시간에 무뎌졌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일기라도 쓰지 않았다면 영원히 망각했을 하루들, 불과 한 달 전에 있었던 일도 기억에서 희미했다. 장기 여행이나 한 달 이상의 정기적인 출근을 했던 큼지막한 이벤트가 한 해를 어설프게 채웠다. 재작년과 작년의 차이를 느끼지 못하고 무심한 손길로 달력을 넘겼다. 봄이나 여름이나 미세먼지 수치는 같고 지난주와 이번 주 내 키와 몸무게는 변함이 없으니까.
삶은 습관이 된다.
임신을 확인한 후 우리는 임신 어플을 깔았다. 마지막 생리 일자를 입력하면 자동으로 임신 주수를 계산해 매주 매달 푸시 알람을 보낸다. 임신 10주, 뇌세포가 대부분 완성되고 초기 입덧이 심할 시기입니다. 16주, 체중이 증가하고 태동을 느낄 수 있습니다. 27주, 아이 머리가 아래로 향하고 임신중독증에 주의하십시오, 등등. 태아의 발달 단계와 내 몸의 변화를 꾸준히 안내받았다. 2주에서 4주 간격으로 병원도 갔다. 초음파 화면으로 검은 점 같던 아기집에 흰 완두콩 같은 존재가 보이더니 인간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머리와 몸통에 팔다리가 보이고 심장이 뛰었다. 입체초음파를 찍던 날 선명한 눈 코 입에 우리는 감격했다.
당연한 것들이 특별해졌다.
시간은 더 이상 어제와 오늘이 같지 않았다. 지난주의 아이와 이번 주의 아이는 몸도 움직임도 더 커지고 활발했다. 임신을 알게 된 봄의 벚꽃, 태교여행을 떠났던 여름 바다, 출산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 가을 단풍으로 계절을 예민하게 감각했다.
시간은 착실하게 제 일을 하고 있었다. 우리가 무심했던 것이다.
몸무게는 특별히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3키로 넘게 빠졌다가 막달 되어서 조금씩 찌는 중이다. 시간의 흐름을 배의 크기로 느꼈다. 매달 아기집을 짓고 부수기를 반복하던 나의 몸은 입주에 성공한 아기를 받아들이며 하루하루의 시간을 기록했다. 바지 대신 고무줄 치마를 입고 임산부용 레깅스를 주문했다. 그냥 살이 쪘을 때 나왔던 지방 가득한 배와 달리 바위 같은 단단함을 자랑하는 복부. 라벨의 <볼레로>처럼 리듬과 강도가 더해지는 태동. 배꼽에 바닥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내 몸 한가운데 보름달이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