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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wooRan Jan 05. 2020

우리 만난 지 이제 일주일

육아보다 쉬운 소설 쓰기 : 조리원 생활

조리원 생활 일주일 만에 첫 외출을 나섰다. 미역국이 없는 저녁식사를 하고 영화관에서 뒤늦게 <겨울왕국 2>를 보았다. 밥 먹고 영화 보기 전 틈틈이 배내캠 어플로 신생아실의 아이를 확인했다. 실시간 동영상으로 아이를 볼 수 있는 어플인데 계속 잠만 자니 정지된 사진을 보고 있는 기분이다. 신생아는 밥 먹을 때를 제외하고 하루 종일 잠을 잔다.      


하루 거의 모든 시간에 꿈을 꾸는


병원에서 2박 3일 입원 후 산후조리원으로 옮겨 지내는 중이다.

출산 후 2주 간 조리원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은 크게 두 가지,

만신창이가 된 몸을 최대한 회복시킬 것

모유수유 배우기     


조리원의 일상


아침식사 전 새벽 6시 수유 콜을 받으면 오늘의 첫 수유를 한다. 잠깐 자다가 8시 반 아침을 먹는다. 수유를 하고 아기가 미처 다 먹지 못해 가슴에 단단히 고여 있는 모유를 유축한다. 오전 필라테스를 하거나 그날의 육아 관련 강의를 듣거나 소아과 회진을 받는다. 12시 반 점심을 먹는다. 1시 반부터 3시까지 신생아실 소독하는 동안 모자동실 시간 방에서 수유하거나 자는 아이를 들여다본다. 3시 간식을 먹고 전신 마사지를 받고 온다. 5시 반 저녁을 먹은 뒤 수유를 한다. 9시 간식을 먹고 수유를 한다. 수유를 하거나 유축을 한다. 수유 그리고 수유....


사실 조리원 생활의 리듬은 아기가 결정한다. 아이가 배고파 울면 신생아실에서 수유를 할 것인지 묻는 전화를 하고 거기에 응하면 아이를 방으로 데려와 젖을 물린다. 대부분의 일정은 최대한 모유수유에 영향을 주지 않는 선에서 결정된다. 베이비 마사지에 대한 강의를 듣다가도 아이가 잠에서 깨면 달려간다. 식사는 모유가 잘 나오는 식단 위주로 간이나 양념이 약한 영양식으로.


흔한 조리원 식사_miyoek


이미 아이를 낳은 친구나 선배들은 수유 콜을 무턱대고 다 받지 말라 조언했다. 산모의 몸 회복이 우선이라고, 집으로 돌아가 진짜 육아 전쟁이 시작되기 전 마지막으로 쉴 수 있는 기회라고. 그 말을 새겨들으며 틈나면 무조건 침대에 누워 자고 새벽 콜은 가끔 건너뛰었다.      


그런데도 가능한 오는 콜 다 받으며 아이를 안은 건 젖을 빠는 아이의 표정 때문이었다. 조리원으로 옮긴 뒤 조리원 원장님의 지도하에 수유 자세를 배우고 젖을 물렸다. 임신 기간 산모교실에서 미리 배웠던 지식들은 이미 머릿속에 남아있지 않았다. 육아는 실전이었다. 내 어색한 자세에 아이는 젖을 빨다 고개를 가로젓고 울었다. 긴장된 마음에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건가?


틈틈이 가슴 마사지를 받고 젖양이 늘어가면서 뿌듯하긴 했지만 우울의 징조를 피할 순 없었다. 규칙적인 식사와 간식과 마사지와 조리원에서 하는 이 모든 행위들이 내가 아닌 아이를 위한 것이라는 생각. 내 존재가치는 아이 밥 주는 기계에 불과한가?


한 생명을 책임지는 것


신생아는 엄마 젖을 빨 때, 젖병 무는 힘의 60배를 필요로 한다. 젖을 물면 아이는 2-3분간 열심히 쪽쪽대며 빨다가 한숨을 쉬면서 잠시 멈춘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며 발버둥을 치면서 얼굴이 새빨개져 자신이 지금 모든 힘을 끌어다 쓰고 있음을 온몸으로 표현한다. ‘젖 먹던 힘까지 쓴다’는 단순한 관용어구가 아니었다. 성인인 우리에겐 무의식적인 습관인 삼키는 동작조차 생후 일주일 된 아기에겐 전신을 써야 하는 힘겨운 일이다.


밥 먹는 것, 하품하는 것, 숨 쉬는 것 하나까지 당연한 것은 없었다. 내 품에서 떨리는 몸이 느껴지고 아직 초점이 맞지 않는 눈으로 나를 응시하는 아이의 표정 앞에서 나는 쉽게 풀어 쓸 수 없는 응집된 감정을 느꼈다.     


엄마로서 나의 존재는 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3.3kg의 삶을 책임지는 것으로 결코 가볍지 않다. 우리는 한 생명을 이 세상에 내어놓은 책임을 져야 할 의무가 있다.      


찰나의 평화로움


일주일 뒤 함께 집으로 돌아가면 모유만 먹일 것인가, 분유로 갈아탈 것인가, 혼합수유를 할 것인가, 밥 먹는 것 말고도 처음부터 배워야 할 수많은 육아 의무 앞에서 기저귀 가는 것도 서툰 초보 부모는 비 온 뒤 새싹들 마냥 걱정이 동시다발적으로 싹트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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