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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wooRan Dec 18. 2019

하루 한 잔의 타이밍

육아보다 쉬운 소설 쓰기 : 임신편7

예정일이 2주 앞으로 다가오고 ‘자연 진통을 기다리자’는 의사 선생님의 말 아래 일상이 대기모드로 전환되었다. 출산 전 하루라도 자유로운 시간을 온전히 누리기 위해 무작정 집 밖으로 나왔다. 결혼 후 이사 올 당시 카페란 프랜차이즈가 대부분이었던 이 동네도 이제 분위기 좋은 개인 카페가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다. 오늘 찾은 카페도 개성 확실한 인테리어와 조도를 갖춘 곳. 두 시간가량 라떼 한 잔을 천천히 비우며 책을 읽고 글을 썼다. 


하루를 시작하는 의식
커피는 내게 의식이다.


아침에 일어나 그라인더로 원두를 갈고 필터에 뜨거운 물로 커피를 내리며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의식.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받아 자리를 잡고 하루치 글을 쓰고 책을 읽는 의식. 임신 전 하루에 커피 두 잔은 반드시 마셨다. 


임신 이후 의외로 술 생각은 전혀 나지 않았다. 커피는 초기 입덧이 한 차례 지나간 뒤 조금씩 마시기 시작했다. 하루 한 잔, 2-3일에 한 번씩, 카페인 수치 200mg 이내로. 가끔씩 마시는 커피는 괜찮다는 담당 의사 선생님의 승인이 떨어지고 하루 한 잔의 타이밍을 언제 잡을지 연구가 시작되었다. 


임신 중 한창 출퇴근을 할 때는 아침에 한 잔을 마시며 일과를 시작했다. 후반기에 접어들어 일을 그만두고 집에 있게 되면서 커피 시간을 오후에 배당했다. 자주 가던 유명 프랜차이즈 카페의 커피가 맛없게 느껴지면서 귀한 한 잔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전문 로스터리 카페나 독특한 커피를 파는 카페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역사가 오래되었거나 카페 주인의 개성이 드러나는 공간으로 알려진 카페도 하루 한 잔을 기꺼이 허락할 만한 즐거움을 주었다. 


최근 찾아낸 동네 카페, 땅콩 라떼가 있다니


 오늘은 어떤 카페를 갈까?


거리가 좀 멀어도 걷기 운동한다 생각하고 가방에 책과 노트를 챙겨 외출했다. 하루 종일 집에 있는 것보다 한결 몸과 마음이 가뿐해졌다. 오늘도 내게 충실한 하루였어. 너를 기다리는 시간을 헛되이 쓰지 않았어. 이렇게 태교일기도 쓰고, 책도 읽고, 출산 전까지 완성하기로 마음먹은 소설도 착실히 결말에 가까워지고 있고.


커피는, 커피를 마시기 위해 카페를 가는 것은 하루 중 온전히 내게 집중하는 시간을 알리는 신호다. 커피 마시기는 보통의 음식과 달리 ‘나’의 개입이 강렬한 행위다. 내게 커피는 읽고 쓰기와 같은 의미다. 얼마 전 첫 시집 『무구함과 소보로』를 낸 임지은 시인의 인터뷰를 우연히 읽었다. 시를 투고한 뒤 애를 낳으러 가고, 새벽에 카페로 나와 쓰고, 주말에 남편이 애를 보는 동안 죽어라 썼다는 말에 밑줄을 그었다. 출산 후 남편과 일주일에 한 번 ‘카페 커피 타임’을 보장해 줄 것을 미리 약속했다. 엄마로서의 나에서 작가로서의 나로 전환하는 의식.


나 자신만의 시간을 알리는 의식


완벽한 커피 한 잔이 있는 아지트를 찾아 오늘도 동네를 여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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