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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wooRan Mar 01. 2020

먹는 기쁨으로 사는 거지

육아보다 쉬운 소설 쓰기 : 먹고 자고 배출하는 3


인간이 가장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단 것을 먹을 수 있는 오후 세 시, 분유를 원샷한 아이의 눈이 슬슬 감긴다. 트림하기를 기다리며 오늘의 간식 시간을 머릿속으로 세팅한다. 분유포트로 물을 끓여 디카페인 드립백으로 커피를 내리고, 냉장고에서 치즈브라우니를 꺼내 접시에 담는다. 배부른 아이는 낮잠을 달게 잘 것이며 나는 달게 오후의 여유를 즐길 것이다.


아이는 날이 갈수록 자기주장이 강해진다. 며칠 전 갑작스러운 직수 거부에 두 시간 넘게 전쟁이 벌어졌다. 조리원에서부터 유두 보호기를 착용하고 젖을 물려 왔는데, 아이가 입에 보호기만 들어가면 자지러지는 것이었다. 혹시나 하고 보호기를 빼고 물려도 마찬가지였다. 젖을 물리면 몇 번 빨다 울고, 울어서 빼면 아직 배가 안 찼다고 또 운다. 배는 고프고 젖 물기는 싫고 집이 떠나가라 울고 나도 울고 싶고... 얼굴이 새빨개진 아이를 안아 달래며 속으로 주문을 외웠다.


냉장고에 치즈브라우니가 있으니 나는 괜찮다. 네 울음도 나는 다 받아들일 수 있다.


하루 한 조각씩 허락된 행복...!


힘겨운 혼합수유의 길


모유수유 힘들면 분유 먹이면 되지~예정일을 앞두고 육아 계획을 세우며 결심했었다. 그토록 어렵다는 완모의 길을 고집하다 일찍 지치면 안 된다고, 뭐든 잘 먹고 크면 된다고 생각했다. 막상 내 품 안에서 젖을 빠는 데 열중하는 아이의 얼굴을 보니 욕심이 생겼다. 탯줄이 끊기고 아이와 분리된 막연한 상실감이 모유로 다시 이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래서일지, 처음으로 젖을 거부하는 아이의 새빨개진 얼굴을 보며 나 자신이 거부당한 기분이었다. 혼합수유를 하다 보면 아이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한다는데 그게 내 쪽일 줄은 생각지 못했다. 아기가 엄마의 젖을 빨 때 젖병보다 몇십 배 강한 힘을 쓴다고 한다. 힘이 덜 드는 편을 들기로 한 거야? 눈물 없는 울음에 지친 아이의 얼굴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평화로운 식사 시간

먹고 자고 배출하는 인간 본능 3단계 중 아기에게 가장 중요한 건 사실 ‘먹는 것’이다. 배부르게 양껏 먹어야 푹 자고 소화가 잘 되어야 배변이 원활하다. 아직은 모유를 먹일까 분유를 줄까, 분유 중에서 어떤 종류를 고르는가 같은 비교적 간단한 문제지만 이유식을 시작하고 밥을 먹게 되면 복잡해진다.


곧 아이에게도 좋고 싫은 음식이 생길 것이다. 실컷 뛰어놀다 과자를 달라 조르거나 오늘 반찬이 무엇인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묻는 네 얼굴을 상상한다.


너도 곧 삶의 기쁨 중 먹는 행복을 알게 되겠지.


먹는 기쁨으로 산다


먹방 방송을 시청하듯, 책에서 등장인물이 무엇인가 맛있게 먹는 장면을 읽는 걸 좋아한다.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에서 해리가 호그와트에 입학하고 첫 연회에서 온갖 진수성찬을 마주하는 장면은 주인공의 기쁨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당시 홀로 아이를 키우며 힘겹게 살아가던 조앤 롤링이 본인 먹고 싶은 음식을 책에 줄줄이 나열했다던가.


최고로 애정하는 론 먹방짤 ㅋㅋ


등장인물이 무엇을 먹고 마시는지 신중히 골라 묘사하는 것도 좋다. 두 인물이 대화를 나눌 때 커피를 마시느냐 술을 먹느냐에 따라 이야기의 행방은 달라진다. 꼭 줄거리에 필요한 내용이 아니더라도 주인공 K가 직장에서 영혼까지 털린 뒤 ‘집에 돌아와 라면을 먹었다’고 쓰는 대신 ‘쉑쉑버거에 가서 버거와 바닐라 셰이크, 치즈감자튀김을 먹었다’고 자세히 쓴다. 지친 주인공에게 라면을 먹이고 싶지 않아서, 그리고 쓰는 내가 먹고 싶어서... 오늘 저녁엔 치킨 시켜서 넷플릭스 보며 치맥할 거야!라는 마음으로 힘겨운 하루를 버텼을 누군가를 상상한다.


젖병을 빨며 잔뜩 집중한 발꼬락이 귀여워


내가 모유 주고 싶어도 네가 싫다면 엄마는 강요할 이유가 없지, 먹는 기쁨을 빼앗고 싶지 않다. 모유면 어떻고 분유면 어떠하리, 네 입맛대로 마음껏 먹으렴........라고 쓴 지 며칠이 지났고 요즘은 또 모유는 모유대로 분유는 분유대로 번갈아가며 시간 맞춰 잘 먹고 잘 자고 잘 내보내는 중.  어렵다는 혼합수유의 길을 택해 현재까지(2개월) 무탈히 먹는 기쁨과 주는 기쁨을 서로 주고받는다.


30분 넘게 양쪽 가슴을 오가며 식사를 마치고 만족스러운 얼굴로 잠든 너를 침대에 눕히고 치즈브라우니 타임이 시작되었다. 이 글은 해피엔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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