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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wooRan Feb 21. 2020

신생아에 대해 알게 된 21가지

축 50일 : 신생아 졸업

1. 처음 신생아를 안으면 빨갛고 작고 연약하고 부서질 것 같고 숨 쉬는 것까지 조심스러워진다.


2. 성인 남성 팔뚝만 한 크기의 아기는 모든 것이 작다. 폐가 작아 숨소리가 빠르고 격하며 위장이 작고 일자형이라 1-2시간마다 한 번씩 배고프다고 운다. 둥지 안 아기새처럼 수시로 입을 벌린다.


아기새같던 0개월


3. 트림, 방귀, 하품, 딸꾹질, 모든 것이 다 새롭고 어색한 아가는 트림하다 토할 수 있고 방귀 뀌다 놀라 울고 하품하다 울고 딸꾹질하다 울고 시도 때도 없이 운다.


4. 신생아는 이 세상이 무섭다.


5. 아직 시력이 발달되지 않아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신 소리에 민감하다. 뱃속에서 들었을 소리와 비슷한 백색 소음-비닐 부스럭거리는 소리, 헤어드라이기 소리, 물소리, 쉬~-을 들려주면 울음을 그치고 안정을 되찾는다.


네가 나를 보고 웃기 시작할 때


6. 눈이 트이기 전이라 초점이 맞지 않아 눈동자가 제멋대로다. 밤중 수유하다 까뒤집어지는 애 눈 보고 무서워서 잠 깬 적도 있다... 아직 색깔을 인지하지 못해 흑백으로 된 초점책이나 모빌을 보여주면 조금씩 아이가 뭔가를 ‘본다’가 보인다.


7. 방황하던 동공이 어느 순간 나를 향할 때 가슴이 벅차오른다.


8. 네가 나를 본다. 나를 발견한다. 나를 바라보며 웃는 순간 이때까지 힘들었던 기억은 우주 저편으로 날아가버린다. 나는 엄마가 된다.


9. 신생아 시절의 미소는 감정보다 본능이라, 아기들이 자면서 입이나 코 등을 쫑긋거리며 웃는 것을 배냇짓이라 한다. 근육의 반사작용이지 감정의 표현은 아니다.


부처의 미소


10. 딱 50일 되는 날 5시간을 내리 숙면한 뒤 타이니러브 모빌을 ‘보며’ 소리 내어 웃었다. 즐거움을 한껏 드러내는 아이의 웃음에 우리도 따라서 웃었다.


11. 아기는 글자 그대로 ‘응애’ 하고 운다.


12. 정확하게 응애! 응애! 자막처럼 ‘응애’라는 글자가 크게 벌린 잇몸뿐인 입 속에서 튀어나오는 것 같다.


13. 응애, 앙아, 아, 에, 온통 모음으로 가득한 아기의 옹알이, 옹알이라는 단어조차 아기의 벌린 입을 닮았다.


온 몸으로 응애를 표현하는 중


14. 잇몸뿐인 입이라도 깨물면 아프다ㅠㅠ


15. 신생아를 통해 실제로 체감하게 된 두 관용어구,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젖 먹던 힘까지 쓴다


16. 입으로 빠는 힘과 손으로 쥐는 힘이 상상 이상이다. 갓 태어난 아기의 생존을 위한 반사작용으로, 먹기 위해 온 몸을 비틀어가며 젖을 빨고 엄마에게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두 손을 꼭 쥔다.


17. 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아기는 자기 자신에게 팔다리가 있다는 사실에 놀라 허우적대다 잠에서 깬다. 운다. 팔다리의 존재에 놀라 운다. 제 몸의 무게에 휘청이며 운다.


우는 모습은 왜 또 귀엽고 난리야...


18. 눈물 없는 울음. 신생아는 눈물샘이 발달하지 않아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19. 코털이 없어 콧물이 코털 역할을 대신한댔나, 콧구멍도 작아 코에서 그렁그렁하는 오래된 엔진 소리가 난다. 가끔씩 코뻥이나 면봉으로 코를 뚫어줘야 호흡이 원활해진다.


20. 피부도 얇아 붉고 푸른 핏줄이 나뭇잎 잎맥처럼 보인다. 새파란 몽고반점이 엉덩이 전체를 덮고 있어 몸에 지도가 그려진 것 같다.


21. 하늘을 향해 열려 있는 두개골. 아기 정수리 부근에 조심스럽게 손을 가져다 대면 말랑말랑한 부분이 있다. 대천문이라 불리는 아기의 숨구멍. 아이가 잘 때 가만히 들여다보면 대천문 위로 자란 머리카락의 신중한 움직임이 느껴진다.


기억하지 못할 신생아 시기,

내 아이를 키우며 다시 한번 경험한다.

나 역시 이토록 작고 연약했음을, 지금 이 순간에 도달하기까지 무한한 애정과 관심과 기적이 있었음을 되새긴다. 내가 받은 사랑과 기적을 내 아이에게 배로 얹어 주며, 11000일을 살아온 사람이 이 세상에 도착한 지 50일 된 생명에게,


우리에게 와 줘서 고마워.


기적의 존재, 50일을 축하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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