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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wooRan Apr 06. 2020

순둥이 육아 100일 기록

탄생 100일의 시간

아이가 이 세상에 나온 지 100일, 소박하게 상을 차려 아이의 무탈한 탄생과 성장을 축하했다. 100일까지 무사히 키워 낸 우리에게도 수고의 인사를 전하며 떡케이크를 나눠 먹었다. 소위 '100일의 기적'이 찾아온다는 날, 아이는 어제와 같이 아침 7시 전후로 기상하여 4시간 간격으로 분유를 먹고 하루 한 번 똥을 싸고 잠을 잤다. 밤수를 제외한 평균 밤잠 10시간, 눈을 비비고 칭얼대면 바운서나 침대에 눕히고, 졸린 아이는 멍한 눈으로 쪽쪽이를 물다 조용히 잠든다. 해가 지면 알아서 잠드는 우리 아이는 뒤통수가 납작한 순둥이 아기, '이런 애면 열도 키우겠다'의 '이런 애'다.


우리의 100일을 축하합니다


2개월 때부터 수유 패턴이 잡히고 6시간 이상 통잠을 자기 시작하면서 내 일상 역시 안정적으로 틀이 잡혔다. 순둥이 아이와 함께 100일까지 우리는 어떤 시간을 보냈던가?


1. 아이의 기본적인 성향을 파악하는 시간


100일이란 시간은 아이와 나 서로 적응하는 기간이다. 이때 내 아이가 어떤 성향을 지녔는지 관찰하고 패턴을 기록하며 파악한다. 봉봉이의 경우 기저귀에 오줌이나 똥을 싸도 울거나 징징대지 않았다. 조리원 퇴소 후 첫 일주일을 제외하고 목욕할 때 얌전했다. 극도로 배가 고프거나 너무 피곤할 때를 제외하고 이유 없이 우는 일이 거의 없었다. 아이를 바운서에 앉히고 책을 보다 너무 조용해서 내가 오히려 놀라 아이를 확인했다. 바운서에서 자기 주먹을 보며 혼자 놀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순한 아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자기 주먹이 세상 신기할 시기


아기 때 순한 아이들이 돌 전후로 180도 바뀐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성격은 자라면서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세밀하게 몸을 쓰는 일에 익숙해지고 사고가 확장되며 부모와 외부 세계의 영향을 받아 성격 일부가 바뀔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내면에 씨앗처럼 항상 품고 다닐 아이만의 성품이 중요하다. 기본적으로 순한지, 예민한지, 활발한지, 차분한지, 거대한 손이 스케치한 밑그림을 일별 하듯 아이를 파악한다.


부드러운 선으로 그려진 아이는 조용하다. 요즘 부쩍 누워 있기를 싫어해 내 무릎 위에 앉히면 혼자서 두리번거리며 자기 손을 가지고 논다. 가끔 내가 철학자를 낳은 것 같다고 농담 삼아 말한다. 생각에 빠진 아이의 두 눈은 고요하다.


2. 공동육아의 시간


아직 웃을 줄 모르던 0개월


교사인 남편의 겨울방학이 시작될 즈음 봉봉이가 태어났다. 100일인 오늘(4/5)까지 학교는 열리지 못했다. 코로나 대유행의 시대 우리는 100일 간 공동육아에 돌입했다. 평등한 관계로 이어진 2인 이상의 양육자가 육아의 피로도를 대폭 낮춘다. 한 명이 분유를 타는 동안 다른 한 명이 배고파 우는 아이를 달래고, 젖병 설거지와 아이 재우기가 동시에 가능해 육아 근무 시간을 단축한다. 둘 다 육아에 서툴고 처음이라 서로 모르는 것은 공부해 가며 불필요한 훈수두기가 없다. 아이가 주는 기쁨을 공유하고 힘듦과 슬픔을 나눈다.


체력과 감정이 여유로운 양육자 품 안에서 아이 역시 편안하게 클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하품 하나에도 낯설어 우는 아이에게 '사는 게 힘들지'하고 웃으며 달랠 수 있는 여유 속에 아이도 점점 안정을 찾았다. 아직 뒤집기 전이라 가만히 누워 있는 아이라 보기 편하기도 하지만, 지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평온한 육아를 가능하게 한 건 육아 파트너의 존재였다.


3. 내 감정의 온도를 유지하는 시간


수면부족과 계속되는 직수 거부로 새벽에 수유 쿠션을 바닥에 집어던졌던 그날을 제외하고 감정을 폭발시킨 적이 거의 없다. 버튼을 눌러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는 분유 포트처럼 내 감정의 온도는 50에서 60도 사이로 일정하다. 100도까지 끓어오를 일이 정말로 없는지 가만히 앉아 생각해 봤다. 비교적 순한 아이, 육아를 분담하는 파트너, 햇빛이 잘 드는 집, 육아에 대한 나의 기본 마인드.


임신 기간 정말 많은 신생아 육아 후기를 읽고 듣고 접했다. 공통적으로 아이와 하루 종일 집에만 있어야 하니 할 일은 많고 아이는 울고 호르몬은 날뛰고 스트레스를 풀 방법이 없어 산후우울증에 시달린다는 흐름이 보였다. 조리원에서 일기를 쓰며 마음을 다잡았다.


아이는 원래 많이 운다.

우울해지면 이렇게 글을 쓴다.

스트레스받으면 아이 옆에서 가장 좋아하는 책을 읽는다.

내 감정은 내 것이다. 이 감정은 아이 탓이 절대 아니다.


시야에 낮잠 자는 아이를 걸쳐놓고 내 서재로


꼭두새벽 수유 쿠션을 바닥에 집어던진 이후 유축으로 바꾸고 분유 수유를 늘렸다. 네가 싫다면 강요하지 않을게, 네게도 선택권이 있으니까, 화가 치밀어 올랐다가 곧 화 낼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유축으로 아이의 먹는 양을 정확히 체크할 수 있었고 수유 시간이 줄어들었으며 아이도 나도 평화가 찾아왔으니까.


지금 유축은 하루 한 번 100 이하로 나오고 곧 단유 할 예정이다. 유독 울음이 잦아 지치는 날에는 아기침대 옆에서 책을 본다. 육아에 흔들려 나를 잃지 않기를. 분유를 먹고 바운서에서 꾸벅꾸벅 조는 아이 옆에서 이 글을 쓴다. 네게 너무 뜨겁지 않게 항상 일정한 온도로 너를 대할 수 있도록 내 감정을 다잡기를.



제목에 순둥이라고 쓰긴 했지만 100일이 지난 아이의 목청은 나날로 커지고 비명 같은 울음소리에 놀라 안방으로 뛰어들어갈 때가 있다. 아이가 순하다는 말이 육아가 쉽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한 생명을 책임지는 일이 어떻게 쉬운 일일 수가 있는가? 식물을 말라죽지 않게 키우는 일에도 섬세한 기술과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한 어려운 일인데, '애 쉽게 키운다'는 말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어려웠던 100일간의 시간을 서로에게 축하한다.

100일이나 건강하게 잘 커 줘서 고마워.

100일간의 육아 전쟁을 잘 버티느라 수고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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