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wooRan Mar 27. 2020

육아는 체력

모든 일의 기본은 체력이도다

출산 당일, 병원에 간 지 한 시간 반 만에 아이를 낳았다. 무통 주사를 맞고 본격적으로 힘주기는 6-7번 정도 했던 듯 삼십 분이 안 걸렸다.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 얘기를 하면 놀라워한다. ‘초산인데 어떻게 그렇게 빨리 낳았죠?’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너는 그럴 줄 알았다.’


임신 전까지 4년 정도 크로스핏을 했었다. 크로스핏이란 오늘의 운동이 매일 달라지는 피트니스 프로그램으로 역도, 체조, 기본 심폐지구력 종목(달리기, 로잉머신 타기 등)이 주요 운동이다. 취미로 시작한 운동에 깊이 빠져 크로스핏 코치 자격증을 따고 역도 수업을 따로 들었다.


역도 수업을 듣던 어느 날 코치님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역도 선수가 아이를 잘 낳는다고 말씀하셨다. ‘무게 들어 올릴 때 숨 참고 순간적으로 배에 힘 딱 주는 거, 이게 아이 낳을 때 쓰는 힘이랑 같다니까.’ 숨을 들이마신 상태에서 잠시 멈추어 힘을 쓴 뒤 다시 숨을 내쉬는 호흡법을 발살바 호흡이라 한다. 역도와 같이 무거운 중량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려야 할 때 이 호흡법을 쓴다.


예정일 한 달 전 출산교실에서 라마즈 호흡법을 연습하는데 역도 생각이 났다. 특히 백 스쿼트back squat를 할 때처럼 바닥으로 다리를 밀어낸다 생각하며, 분만 직전 호흡을 멈추는 타이밍마다 옆에서 간호사 선생님이 열까지 숫자를 세는 동안 최대한 힘주어 밑으로 밀어냈다. 나의 순산은 팔 할이 역도 덕이다.


몸이 완전히 회복되면 다시 역도하고 싶다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 체력을 길러라


매년 마라톤 경기에 출전해 완주하고 매일 크로스핏을 하며 체력을 쌓았다. 틈만 나면 되는 일 없다며 스스로를 갉아먹는 자기 비하의 우울감이 희미해졌다.  길었던 수험생활과 습작 기간 단련된 코어 근육이 책상에 오래 앉아 있을 수 있는 힘을 주었다. <미생>의 명대사 중 하나인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 체력을 길러라’는 말을 몸소 체험했다.


100일 전 7킬로를 향하여 무럭무럭 자라는 아들을 들어 올려 안을 때마다 생각한다. 내가 아들 키우려고 근육 키우고 체력 쌓았구나. 비축한 체력 상당수를 출산 당일 일시불로 써 버리고, 남은 근력으로 하루를 버틴다. 바닥에 놓인 역류방지쿠션에서 데드리프트 자세로 아이를 안아 올린다.


매일 반복되는 밥 잠 밥 똥 밥 잠의 육아 일상에서 지칠 때가 오면 첫 마라톤 완주의 기억을 떠올린다. 흥분해서 오버 페이스로 달리면 빨리 지쳐 버리니까, 천천히 일정한 속도로 박자를 맞추어 앞으로 앞으로, 힘이 들면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쉬고.


규칙적으로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며 온 몸을 신선한 공기로 채운다. 온갖 방법을 동원해도 악 쓰며 우는 아이를 웃으며 안아 올린다. 허리가 휘지 않게, 아래에서 위로, 아이를 끌어올리고 나 자신을 일으켜 세운다.


세계를 받아들이는 몸


육아는 체력이다, 수많은 육아 선배들에게 귀가 닳도록 들은 말이다. 아이들의 체력이란 무한동력 같아서 지치지도 않고 달리고 뛰고 끝없이 놀자고 조른다(고 한다). 조금씩 낮잠 시간이 짧아지는 아이를 보며 처음으로 체력의 소모가 아닌 생산을 목격했다. 5분 모빌 보면 놀다 지쳐 잠들던 아이가 이젠 10분 넘게 아기 체육관에서 멈추지 않고 팔다리를 놀린다. 손을 뻗어 눈 앞에 아른거리는 물체를 탐색하려 든다. 제 팔과 다리를 쓰는 연습을 하면서 슬슬 뒤집기 준비를 한다.


몸 쓰는 연습 중

아직 언어를 갖지 못한 아기에게 세상을 받아들이는 도구란 몸이 전부다. 손에 인형을 쥐어 주면 입에 넣고 탐색을 시도한다. 팔과 다리를 마사지하며 꾹꾹 눌러 주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게 무슨 느낌인지 생각하는 표정이 된다. 아기의 생동하는 체력은 스스로 세상을 해석하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받아들이고 느낄 것들이 너무나 많기에 아기의 체력은 끝없이 생산된다.


이에 지치지 않고 아이의 세상 탐색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부모의 체력 관리가 중요하다. 육아는 결승점 없는 마라톤과 같다. 과도한 의욕에 넘쳐 한정된 어른의 체력을 낭비하다간 낭패를 볼 수 있다. 꾸준히 운동을 하고 몸을 단련해 체력을 비축해야 한다. 모든 게 새로워 흥분한 아이에게 ‘피곤하니 다음에 놀자’는 말을 최대한 하지 않도록. 역시 모든 일의 기본은 체력이다.


...하는 마음으로 출산 3개월 뒤 슬슬 운동을 시작하려는 내 앞을 코로나 19가 가로막았다. 사회적 거리두기 일환으로 체육 시설 이용 및 운영 금지 권고에 마스크 끼고 동네 걷기만 하는 요즘의 일상.


(육아는 체력 편은 아이의 성장에 따라 앞으로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언제 어디서나 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