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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wooRan Oct 03. 2020

내가 만든 소우주에서

최승필 [공부머리 독서법]과 애서가의 탄생

내가 가진 책이 모두 몇 권이나 될까?


코로나로 집콕하게 된 추석 연휴, 남편과 아이는 잠들고 혼자 서재에서 정현주 작가님의 [그래도, 사랑]을 읽고 있었다. 사랑에 대한 다정한 글 속에 언급된 영화와 책 중 앤 패디먼의 [서재 결혼 시키기]가 눈에 띄었고 즉각 내 등 뒤의 서가에서 책을 꺼냈다. 이런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책은 선반 가운데가 내려앉은  책꽂이들을 빽빽하게 채우고 있는  수많은 잡동사니로부터 내가 창조하려고 했던  전체이다. -
 패디먼 [서재 결혼 시키기]


갑자기 궁금해졌다. 내가 가진 잡동사니들이 얼마나 되는지, 이 방에 정확히 몇 권의 책이 머물고 있을까? 결혼과 함께 이고 지고 온 책들을 기반으로 3년 간 열심히 불려 온 서재의 몸무게를 제대로 측정해 본 적은 없다. 과거 엑셀로 장서 목록을 만들어 볼까 시도하다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두 번 실패했다. 마침 요즘 사용 중인 독서 관리 어플에 바코드만 찍으면 자동으로 책 목록을 만들어 주는 기능이 있었다.


어플 ‘산책’으로 장서목록을 만들어 보았다


저녁 먹고 9시쯤 시작된 장서 목록 만들기는 새벽까지 이어졌다. 도서관의 사서 선생님들처럼 책을 꺼내 바코드를 찍고 또 찍고, 바코드만 찍는 일도 수고로웠다. 겉표지가 없어 바코드가 사라졌거나 너무 오래되어 바코드 검색이 안 먹히는 책들은 인터넷 검색으로 목록에 더했다. 한 권 두 권 사 모은 만화책들, 십 년도 더 지나 속지가 노랗게 나이 먹은 책들, 낭독회나 강연회에서 저자에서 사인 받은 책들 하나하나 확인하고 정리했다.


새벽 세 시에 끝난 목록 만들기의 결과는 딱 900. 이 방에 구백 권의 책이 잠들어 있었다.  


애서가의 탄생


기억이 닿는 어린 시절부터 책은 내게 당연했다. 초등학교 입학 전 책장이 떨어져라 읽은 동화 전집, 분당 삼성 백화점(현 롯데백화점) 바로 옆의 서현 문고에서 그 자리에 서서 한 권을 다 읽어버린 해리 포터, 서점에서 한 권씩 내가 골라 사 모았던 지경문고...부모님은 동화 전집 한 질을 제외하고 다른 전집을 더 들이지 않으셨다. 대신 서점으로 데려가 직접 책을 고르게 했다. 제목과 표지를 보고 재미있어 보이면 몇 페이지를 읽어본 뒤 고른 책을 아빠에게 내밀면 두 말 없이 사 주셨다. 그렇게 나만의 서재가 태어나 자라났다.


3년 전의 서재, 이땐 500권은 됐을까?


최근 우연히 [공부머리 독서법]을 읽고 나서야 아빠의 방법이 독서가를 키우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독서가로 성장하는 데 있어서 '책 구경하기'는 반드시 거쳐야 할 통과의례입니다.(전자책 319쪽)' 읽고 싶은 책을 찾아 읽으면서 자기만의 독서 이력을 쌓아야 책과 친해지고 읽기 독립을 이룰 수 있다. 동화책이나 판타지 소설만 읽는 아이에게 부모가 공부에 도움될 것 같은 책들을 강요하게 되면 오히려 책과 멀어진다. 책을 읽지 않으면 언어 능력이 떨어지고 언어 능력은 학교 성적에 바로 반영된다.


제목만 보면 '아이 성적을 올리고 싶으면 당장 책을 읽혀라!'같은 양산형 교육법을 강요하는 책 같지만, 내용은 의외로 정석 독서법을 기반으로 '좋은 독서 지도법'을 설명하고 애서가의 탄생을 자세히 묘사한다.


독서 지도할 때 명심해야 할 7가지

1. 재미있는 독서가 좋은 독서다
2. 독서시간을 정해 매일 읽는다
3. 지식도서를 강요하지 않는다
4. 일주일에 한 번은 도서관이나 서점에 간다
5. 스마트폰과 컴퓨터는 늦게 접할수록 좋다
6. 학습만화는 금물이다
7. 천천히, 많이 생각하며 읽을수록 똑똑해진다

 - 최승필 [공부머리 독서법]


정확히 이 독서 습관을 기반으로 매일 책을 읽은 결과, 중학생 때까지 평범했던 내 성적은 고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급상승했다. 숨 쉬듯 소설을 읽었고 매주 서점이나 도서관에 갔다. 책 읽는 게 재미있어 자발적으로 어려운 책도 찾아 읽었다. 우주와 인체에 관심이 많아 과학 전문 서적을 찾아 읽은 내게 교과서는 오히려 읽기 쉬웠다. 읽기 능력이 '공부머리'로 이어진 것이다.


제목 보고 든 거부감이 싸악 사라진 좋은 책


그렇게 아빠는 내게 애서가 유전자를 물려주셨다. 아빠 역시 매일 책을 읽고 꾸준히 책을 사 모으는 애서가다. 안방 한쪽 벽면을 차지한 아빠의 서가를 참고하며 나의 서재를 키웠다. 아빠는 내가 아빠 서재에서 [수호지] 같은, 아이가 읽기엔 다소 선정적인 소설을 읽어도 막지 않았다. 대신 읽을 때 윤리적으로 주의할 점을 짚어 주셨다.


서재는 나의 소우주


이렇게 모인 나의 '잡동사니'들로 나는 무엇을 창조하려 했을까? 절반 이상이 소설에, 관심 가는 대로 이 분야 저 영역 조금씩 사 모은 이 서재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나의 취향은 어느 정도 확립이 된 상태지만 정확한 한 문장으로 정의 내리기는 아직 어렵다. 소설과 소설을 둘러싼 책들이 모여 뭔가를 쑥덕거리는데 내 서툰 귀는 그들의 말을 다 알아듣지 못한다.


무슨 얘기중이니?


한동안 아이의 서재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머리가 두 배로 복잡했었다. 좋은 아동용 전집을 구해야겠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책육아 카페에 가입해 전집 공구 게시물을 정독하며 초조해했다. [공부머리 독서법]에서 7세 이전의 영유아기 조기 교육은 오히려 아이 뇌 발달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내용을 읽고 정신을 차렸다. 지금 아이에게 필요한 건 '하루에 한 번 그림책 읽어주기'다. 전집을 쌓아두고 많이 읽히기보다 한 권의 책을 제대로 읽어 주기가 중요하다.


아빠가 했던 대로 아이 스스로 자신만의 서재를 만들 수 있도록 서점과 도서관에 자주 데리고 가서 직접 책을 고르게 할 것. 가끔 내 서재를 흘끔거리면 기꺼이 공개하고 읽은 책에 대한 대화를 나눌 것.


아직 책은 장난감일 뿐ㅋ


책이 저자가 만든 하나의 세계라면,

서재는 그 세계를 모아 만든 나만의 소우주다.

자신의 우주는 스스로의 손으로 만들어야 온전히 자기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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