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wooRan Jun 07. 2021

술과 관련된 몇 가지 이야기

레슬리 제이미슨의 [리커버링]과 술과 중독과 창작의 관계

1. 나는 이 글을 맑은 정신으로 쓴다.

사실 나는 절대 술을 마시고 글을 쓰지 않는다. 가끔 쓰는 음주 일기를 제외하고.


2. 한때 술을  마신다는  장점이자 특기로 떠벌리고 다녔다. 사람들은 내가 취한 모습을  적이 없다며 나의 음주 신화를 기꺼이 승인했다. 사실 나는 취기가 오르면  마시는 속도가 급격히 느려진다. 과도한 음주가 남기는 두통과 울렁거림과 블랙아웃, 숙취를 정말 싫어하기 때문이다. 나는 술을 취하기 위해 마신다기보다 술이 좋아서 마신다. 두어 잔이 가져다주는 감각의 확장, 모든     같다는 낙관을 사랑한다.  거기까지.


독서와 음주가 어울릴 수 있는가


3. 44쪽, 나의 음주가 어떤 문턱-나는 다섯 번째 또는 여섯 번째 잔 밑에 어떤 실존적인 터널이 감춰져 있다고 상상했다-을 넘으면, 술은 정직해 보이는 어둠 속으로 나를 거꾸러뜨렸다. 마치 세계의 밝은 표면은 모두 거짓이고, 자포자기하듯 취한 지하 공간이야말로 진실이 사는 곳 같았다. 음주는 예술가를 도와 "진실과 단순성, 원시적 감정을 다시 한번 보게"해준다는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주장은 잭 런던의 백색 논리를 명백한 핵으로 재해석해, 일단 술이 나머지 모든 사소한 관심사를 벗겨버리면 그 뒤에 남는 중요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4. 한창 소설 쓰기를 배우러 다닐 때 3과 같이 생각한 시기가 있었다. 술꾼으로 유명했던 레이먼드 카버나 아침부터 취해 있었던 마르그리트 뒤라스처럼 술이 내게 영감을 주지 않을까 기대했다. 과제 마감이 임박하고 초고가 잘 안 나올 때 맥주를 마시며 썼다. 드라마틱한 효과는 없었다. 방바닥이 말랑말랑하게 느껴질 정도로 취해서 글을 쓴 적도 있었다. 다음 날 술이 깬 뒤 다시 읽어보니 엉망진창이었다. 알코올 향이 듬뿍 묻어난 글은 무의미했다. 취한 지하 공간은 텅 비어 있었다.


5. 중요한 것을 찾고 싶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잃어버린 줄도 모르고 잃어버린 ,  인간을 단숨에 불태울  있는 불꽃의 , 찰나의 순간 모든  바꾸어 버릴 정도로 파괴적인 힘을 가지고 싶었다.  글이 그런 불꽃과 힘을 가지길 바랐다. 광야에서 헤매고 있는  뒤로 술이 다가와 속삭인다. '네가 찾는  어디 있는지 나는 알고 있는데.'


맥주는 육퇴 후에


6. 그날은  세상에서 그냥 사라져 버리고 싶다는 충동에 시달릴 정도로 들었다. 모든    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한순간에 무너져버렸다. 내가 하는 모든 일이  엉망진창이었다. 치우고 치워도 엉망이  집안, 뒤돌아서면 쌓이는 집안일, 악쓰며 우는 아이, 좀처럼 나아가지 못하는 글과 상투적인 거절의 멘트와 함께 반송되는 원고들,   지갑. 아무것도 해결된  없는데 시간은 겨우 정오였다. 지금 맥주  캔만 마시면  될까?   잔만, 그럼 모든      같은데. 나는 냉장고를 노려보았다.  시간 만에 겨우 잠이  아이와 쓰다  미완성 원고는 안중에도 없었다.


7. 그때 한 잔을 마셨다면, 한 잔이 두 잔이 되고 두 잔은 네 잔이 되고 맥주에서 도수 높은 술로 바뀌었을 것이다. 낮부터 술을 마신 내가 부끄러워지고, 부끄러우니까 술을 또 마시고, [어린 왕자]의 술꾼처럼 추락하는 건 순식간이다. 나는 나의 미래를 봤다. '오히려 나는 고통을 정신적 비료로, 미학적 목적을 지닌 어떤 것으로 이해하려고 애썼다. 나는 고통이 나를 복잡하게 만들고 심화시켜주기를 바랐다.'(93쪽) 이 고통은 모두 창작의 연료라고 정당화하는 나의 구질구질한 모습을 보았다.


8. 그래서 마시지 않았다.


9. 472쪽, 평범한 갈망은 어느 시점에 병이 될까? 지금 내 생각은 이렇다. 갈망이 수치심을 일으킬 만큼 충분히 포악해졌을 때라고. 갈망이 자아를 구성하기를 멈추고 그것을 결핍으로 해석하기 시작할 때라고. 당신이 그만두고 싶지만 그만둘 수 없을 때라고. 그리고 다시 그만두기를 시도하지만 그만둘 수 없을 때, 또다시 시도해도 그만둘 수 없을 때라고.


10. 알코올 중독에서 회복으로 넘어가는  작가의 자기 고백을 읽으며 나는 나의 평행우주를 엿보았다. 정신을 잃을 정도로 퍼마시면서 넘어지고 부러지고 상처가 가지고 온 고통이 창작의 연료라고 착각하는 , 이제 글을   있겠다고 웅얼거리며  글자도 쓰지 못하는 , 아무것도 만들지 못하는 .


그녀는 썼다. 중독에서 벗어나 회복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상세하게 고백했다. 술을 끊었다가, 완벽하게 음주를 통제할 수 있으리라 믿으며 다시 마셨다가, 다시 끊었다가, 마시고, 단주에 성공하기까지의 기나긴 여정을 썼다. 술이 주는 창작력을 믿었던 수많은 알코올 중독 작가들의 이야기를 썼다. 술을 끊고 더 많은 글을 쓰게 된 작가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우리는 중독에 매혹되지만, 사실 우리의 삶은 지난한 회복의 과정이라고 알려 주었다.


11. 18, 중독 이야기가 어둠-계속 깊어만 가는 위기의 최면성 악순환-이라는 연료로 달린다면, 회복 이야기는 흔히 서사적 느슨함, 건강함이라는 따분한 영역, 눈을   없는 불꽃에 딸린 지루한 부록으로 여겨진다. 나는 그런 이야기에 면역이 되어 있지 않았다.  파멸의 이야기에 마음을 뺏기곤 했다. 그러나 회복 이야기가 파멸의 이야기만큼이나 강렬할  있는지 알아내고 싶었다. 그럴  있다고 믿어야 했다.


정제된 한 잔의 술과 한 권의 책


12. 책을 가지고 단골 바에 갔다. 술을 마시면서 책을 읽을  있는 곳이다. 술을 마시는 곳에 알코올 중독에 관한 책을 가지고 간다니 뭔가 묘한 기분이었다. 내게 술은 중독의 대상이 아닌, 책과 함께 즐기는 취미라는  보여주고 싶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평행우주의 다른 나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한두 잔의 술로 삶의 채도를 충분히 올릴  있어, 다채롭게. 깨끗하게 치워진 집에서 아이는 평온하게 잠들었고 막혔던 글은 결말을 향해 착실히 나아가는 중이야. 모든 일을 마무리하고 열심히 일한 일주일의 보상을 위해 필요한   잔의 절제된 위스키와  영혼의 주파수와  맞는   권과 고요한 장소.


처음 마셔보는 종류의 위스키에선 훈제 향이 느껴졌고 나는 바닷가  숲에서 조용히 타오르는 나무  그루를 떠올렸다. 숲을  태우지 않고도   그루의 나무가 내뿜는 연기만으로도 충분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