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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wooRan Apr 05. 2021

원숭이의 해, 2016년

패티 스미스의 [달에서의 하룻밤]과 나의 2016년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이 나왔다. 좋아하는 서점으로 달려가 책을 샀다. 술과 함께 책을 읽을 수 있는 단골 가게로 향했다. 압생트를 주문한 뒤 페이지가 천천히 넘어가길 바라며 느긋하게 읽어 나갔다. 일흔의 패티 스미스가 쓴 에세이 [달에서의 하룻밤] 원제는 '원숭이의 해 Year of the monkey', 책에서도 언급되는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웠던 그 해를 나 역시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그때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되었고, 한국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폭풍이 휘몰아쳤다.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채운


최순실의 태블릿 PC가 발견된 날은 내 생일이었다. 만으로도 꼼짝없이 서른이 되는 날에 나는 중2들과 강원도로 수학여행을 왔다. 이미 내가 나에게 주는 생일선물로 리스본행 비행기 티켓을 산 뒤라 가벼운 마음으로 아이들과 설악산을 올랐다. '영영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해결은 환상이다. 마음이 해방되는 것처럼 보이는 즉흥적 밝음의 순간들이 있긴 하지만, 그건 단순한 현현에 지나지 않는다.'(달에서의 하룻밤, 133쪽) 이 자리는 3개월짜리고 단기간 일해 번 돈으로 여행을 떠나는 일로 일 년이 다 갔다. 확고한 일자리 없이 방랑하는 자아의 불안을 작가라는 정체성이 붙잡아 주다가도 불쑥, '근데 너 등단은 언제 하는 거야? 네 책은 언제 나오는 거야?'같은 질문이 늑골 아래서 튀어나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2016년 5월 제주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어도 뭐라도 해야 한다. 2016년에 나는 생애 첫 유럽 여행을 떠났고, 제주도로 일주일 여행을 떠났다가 돌아가는 비행기 표를 취소하고 한 달짜리 게스트하우스 스텝 일을 구했다. 빨간 배낭 안에는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서]가 들어 있었다. 올레 12코스 중반부 바다 앞 카페의 이름은 사우다드 saudade였고 포르투갈어로 '삶에서 그리운 무언가를 표현하는 감정'을 뜻한다고 했다. 삶에서 그리운 무언가, 서른 이전까지 나는 굳게 믿었다. 세계를 움직이는 힘은 명료하고 확고하여 매일 달리면 강인한 육체를 얻고 책을 읽으면 진리를 깨우치게 되며 끝없이 노력하면 언젠가 내가 꿈꾸던 삶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삶이란 이런 믿음을 파도에 깎여가는 바위처럼 조금씩 잃어가는 과정이었다. '나는 삶에게 극히 사소한 것만을 간청했다. 그런데 그 극히 사소한 소망들도 삶은 들어주지 않았다.' 페소아의 문장을 읽는 내 이마를 바람이 스치고 지나갔다. 바람에 색채가 있다면 지금 이 바람은 바다를 닮은 새파란 빛깔이다. 언젠가의 나는 바다를 새파랗게 칠할 줄 아는 아이였다. 지금의 나는 바다가 이토록 새파랗다는 것을 믿지 않는 의심 많은 어른이 되어 있었다. 제주에 와서 두 눈으로 직접 보기 전까진.


제주 다음이 리스본이었다.


2016년 12월 리스본에서


같은 해 패티 스미스 역시 리스본에 왔다.

나보다 한 발 먼저 리스본의 거리를 걸었고 페소아의 집에 머물렀다.


여기서 나는 페르난두 페소아의 집 기록 보관원들을 만나고, 사랑하는 시인의 개인 서재에서 시간을 보내도록 초대받는다. 그가 아끼던 책들 몇 권을 살펴볼 수 있게 해 줄 하얀 장갑을 받는다. 탐정소설, 윌리엄 블레이크와 월트 휘트먼의 시집들과 귀한 장서 [악의 꽃], 발터 벤야민의 [조명]과 오스카 와일드의 동화집이 있다. 페소아가 가졌던 책들이 그의 글보다 오히려 더 페소아를 내밀하게 들여다보는 창문처럼 느껴진다. 페소아에게는 각자 주어진 이름을 가지고 글을 쓰는 수많은 페르소나가 있었지만, 이 책들을 사고 사랑했던 건 페소아 본인이기 때문이다. 이 소소한 깨달음이 내겐 묘하게 흥미로웠다. 이 작가는 각자의 삶을 살고 각자 자기 이름으로 글을 쓰는 독립적 캐릭터들을 발전시킨다. 무려 75명이나 되는 이 캐릭터들에게는 별도의 모자와 코트가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참된 페소아를 알 수 있을까? 그 해답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그의 책들, 완벽하게 보존된 그만의 서재.
(... 중략...)
페소아의 도시에서 나는 떠나지 못하고 머무르지만, 정확히 내가 뭘 하고 있다고 말할 수가 없다. 리스본은 길을 잃기에 좋은 도시다. 카페들에서 또 다른 공책에 글을 끼적거리며 맞는 아침들, 빈 페이지 한 장 한 장이 도피처를 제공하고, 펜은 유유히 믿음직하게 봉사한다. 나는 잘 자고, 꿈을 별로 꾸지 않고, 방해받지 않는 간주곡 안에 그저 존재한다.

- 패티 스미스 [달에서의 하룻밤], 141-142쪽


그녀와 나의 주파수가 맞았다는 사실이 기뻤다. 내 인생에서 가장 자유로웠던 해, 원숭이처럼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뛰어다니듯 거처를 옮겨 다녔던 서른의 기억. 늦은 밤 캐리어를 끌고 리스본의 언덕 꼭대기에 있는 숙소까지 올라갈 때의 가쁜 숨, 다음 날 아침 숙소 테라스에서 경이에 차 바라보던 리스본 전경, 특별한 목적지 없이 발길 닿는 대로 걸었던 거리들, 그녀의 말대로 리스본은 길을 잃기 좋은 도시다. 뭘 한다고 뚜렷하게 말하지 않아도 내가 가는 길 자체가 하나의 문장이 되는 도시. 그녀처럼 가방에 노트와 만년필과 페소아를 챙겨 들고 무작정 걸었던 5년 전의 나.


페소아의 집, 그의 유품
카페 브라질리아, 페소아 동상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더라도 절망하는 대신 무엇이든 쓴다.   우리는 부정한 권력을 파면시켰고, 그때 당선된 대통령은 다시 바뀌었고, 죽기 전에  책이 나올  있을까 불안에 떨었던  손에 인생  번째 책이 들어왔다.  책의 서문에 나는 페소아를 초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패티 스미스가 드림인Dream Inn간판과 대화하듯이, 중요한 것들은 눈으로 보는  아니라 꿈처럼 느끼는 것이니까. 꿈에 형태가 있다면  책과 같은 내용일 것이다. 어떤 페이지를 펼쳐도 즉각 꿈에 돌입할  있는 차원의 . 한때 다른 세계로 통하는 문을 찾아 유럽으로, 제주도로, 리스본으로 헤매고 다녔다. 문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나의 노트에, 노트를 기반으로 만든 나의  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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