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다스 데커스의 [시간의 이빨]과 앙코르와트 여행의 기억
6년 전, 5월 2주 정도의 휴가를 얻게 된 나는 캄보디아 씨엠립행 비행기 표를 샀다. 첫 해외여행이었고, 처음으로 혼자 떠나는 여행이었다. 많이들 가는 일본이나 태국, 유럽이 아닌 캄보디아로 떠나는 이유는 오직 하나뿐이었다. 앙코르와트를 직접 보는 것. 무너져가는 사원과 그 사원을 뒤덮은 나무를 마주하는 것.
나는 왜 폐허를 보고 싶었을까? 일주일짜리 앙코르와트 입장권을 사서 매일 아침부터 해지기 전까지 부지런히 툭툭을 타고 거의 모든 사원을 방문했다. 하루는 앙코르와트보다 훨씬 멀리에 있어 폐허가 더 보존이 된 벵 밀리아까지 갔다. 폐허를 보러 가서 더 폐허(?)를 보러 간 그 마음을 그때는 정확히 알지는 못했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앙코르와트의 일출과 쁘레 룹의 일몰을 놓치지 않고 보았으며 따 프롬의 유명한 판야나무가 뒤엉킨 사원을 찾아갔다. 자연은 12세기 인간의 건축물을 파괴하면서 동시에 보존하고 있었다.
다 허물어진 사원을 바라보거나 이빨이 달랑 하나만 남은 노파, 또는 잃어버렸던 어느 시의 일부분을 다시 찾게 되었을 때 우리를 엄습해 오는 비애감, 흥분, 호기심 등이 뒤섞인 감정은 아주 독특한 것이라 할 '폐허에서의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그때의 감정은 우리 가슴 깊은 곳에 뚜렷하게 자리 잡게 되며, 우리가 벽난로를 보거나 부드러운 파도소리를 듣는 것과 같은 심리 치료효과도 갖고 있다.
- 미다스 데커스 [시간의 이빨] 55쪽
유명한 관광지인만큼 단체 관광객도 많고 호객 행위도 많았지만, 다른 관광지와 다른 무엇인가가 앙코르와트에 있었다. 도시 전체가 거대한 불가마 같은 후덥지근한 더위 속에서 사람들은 느릿느릿 움직이며 무너진 사원의 벽에 새겨진 신들의 부조를 오래도록 응시했다. 그 표정은 약간 슬프기도 하고, 즐거워 보이기도 하면서 어떤 감상에 젖은 것 같았다. 나도 같은 표정으로 폐허의 바닥을 헤매고 다녔다. 소란스럽게 떠들던 사람들도 어느덧 조용하게 만드는 분위기가 한때 잊혔던 사원을 감싸고 있었다. 일몰 때 가장 아름답다는 쁘레 룹에서 해가 지기를 기다리며 사람들은 목소리를 낮추어 속삭였다. 얼굴이 뭉개져 표정을 알 수 없는 부처의 과거 부조 위로 현재의 태양이 닿는 순간 평소엔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온 '시간'이 온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온전한 성보다는 폐허에서 더 생동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것은 죽은 쥐가 하루도 안 돼 구더기가 우글거리며 새로운 생명으로 변해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부패한다는 것은 결국 변화하는 것인데, 이처럼 변화해 가는 것이 바로 삶이다. 돌은 부서져 산산조각이 나고, 주춧돌 위의 기둥은 언젠간 쓰러지며, 나무의 뿌리가 담장을 무너뜨리고 또 냄비에는 구멍이 난다. - 같은 책, 53쪽
무너진 바닥과 넘어진 기둥을 보며 우리가 느끼는 것은 시간이다. 시간은 흐르는 것이며, 지금도 멈추지 않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며, 현재는 순식간에 과거로 밀려난다. 우리는 시간의 흐름을 두려워한다. 오래된 건물은 철거되고 구멍 난 냄비는 버려지며, 그 자리는 새 아파트와 최신형 냄비로 교체된다. 하지만 인간은 오래되었다고 철거하거나 교체할 수 없다. 인간에게 시간은 나이로 형상화되어 탱탱한 피부에 하나 둘 주름을 새기고 오래 사용한 관절을 삐걱이게 만든다. 예나 지금이나 동안은 최고의 칭찬이 되었다. 제 나이보다 젊어 보이기 위해 각종 광고에 등장하는 화장품과 건강식품을 사들인다. '오래된 물건이나 사람은 별 가치가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같은 책, 396쪽) 나이 듦은 몰락으로 받아들여진다. 할 수만 있다면 시간의 이빨을 빼 버리고 눈 밑에 남긴 이빨 자국들을 지워버리고 싶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몰락을 보러 그 먼 길을 떠났던 것인가? 쇠락한 과거의 흔적 앞에서 생생한 현재를 만끽하고 우월감을 느끼기 위해? 앙코르와트에서 내가 가장 먼저 간 사원은 바이욘이었다. 사원 곳곳에 거대한 얼굴이 새겨진 두상으로 유명한 그곳에서 내가 맞닥뜨린 건 시간의 미소였다.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인간은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거나 멈출 수 없고 다만 최선을 다해 뭔가를 남길 수 있다. 돌에 새긴 미소, 언젠가 사라질지라도 나보다는 오래 남아 있을 작품, 사원이 막 지어졌을 때도 지금처럼 사원과 사원 안 인간들을 비추었을 태양 같은 것들.
그때 나는 서른을 앞두고 있었고, 오래 준비한 시험을 내려놓고 새로운 삶을 모색하는 중이었고, 내 선택이 올바른 길일지 확신할 수 없는 시기였다. 시간은 흐르는데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어영부영 나이만 먹다 막다른 길에 맞닥뜨릴까 두려웠다. 나는 지금 살아 있는가?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보다 조금 나아졌나?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의 불확정성에 불안해하며 쫓기듯 살고 싶지 않았다. 나는 시간을 보고 싶었다. 시간의 흔적을 보고 시간의 냄새를 맡고 시간이 남긴 빛을 보고 싶었다.
돌에 새겨진 시간은 내게 말하고 있었다. 시간은 흐르고 모든 것이 변한다는 사실만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 이를 받아들이고 한 걸음 두 걸음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 시간의 날카로운 이빨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가 남긴 이빨 자국이 곧 나 자신이니까.
자신의 삶 속에서 경험하는 모든 것은 흔적을 남기며, 그러한 흔적은 사람에 따라서 모두 다르다. 하지만 한 걸음 한 걸음 무덤을 향해 가면 갈수록 사람들은 본래의 자기 모습과 비슷해지고, 결국에는 본래의 자기 자신과 일치하게 된다. 그러면 더 이상 할 일이 없어지는 것이다. 결국 모든 것이 완성된 것이다. - 같은 책, 마지막 결론
ps. 독특한 책 [시간의 이빨]은 이동진의 [이동진 독서법] 의 추천 도서 목록에서 알게 되었다. 시간에 관심이 많다는 평론가님이 자신의 서재 파이아키아를 안내하는 영상에서도 이 책이 언급된다. 현재 이 책은 품절 상태고 나는 우연히 중고서점에서 구했다. 한 권의 책 역시 시간의 이빨을 피할 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