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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wooRan Oct 25. 2021

생일선물로 시간을 받았다

서른네 번째 생일을 축하합니다

올해 가장 큰 생일선물은 시간이었다. 시계 아니고, [존재와 시간] 아니고, 기본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으로서의 바로  ‘시간’. 정확히는 1 2  혼자 투숙하는 호텔 숙박권을 말한다. 코로나로 멀리 떠나진 못하고 집에서 30 거리의 서울 도심 한가운데 비즈니스호텔을 예약했다.


경의선 숲길 공원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호텔은 수영장도, 호텔 조식도, 룸서비스도 없다. 하나도 중요하지 . 핑크퐁 동요 대신 조성진 쇼팽 연주를 블루투스 스피커로 재생하고 욕조에 물을 받아 입욕제 넣고 기다리며 배달음식을 주문하고 술병을 땄다. 아이가 뺏어갈 걱정 없이 책을 읽으며 맥주를 마실 것이다.  방이니까 마스크를 쓰지 않고, 가끔씩 춤을 추며.


해피벝뜨데이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나 온전히 소유라고 말하긴 어렵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도  시간은 나의 것이 아니었다. 학생일 때는 공부가  시간을 가져갔고, 임용고시를 준비할 시험이 자신의 지분을 주장했다. 대부분의 시간은 안정적이고 확실한 미래를 얻는 대가로 지불되었다. 소설을 쓰며 시간강사로 한창 일할 시기에도  시간은 등단과 시급을 핑계로 끊임없이 인출을 반복했다.


지금  시간의 대주주님은 당연히 아이다. 잠잘 때를 제외하고 자신이 깨어 있는 매 분매초 엄마의 관심과 집중과 감정을 요구한다.  때도 이따금씩 칭얼거리거나 울면서 벌떡 일어나 나를, 나의 시간을 찾는다. 자동차를 가지고 노느라 조용한 틈을  책을 펼치면 어디 감히 너의 시간을 네 마음대로 쓰려하는가 검문하러 달려오신다.


엄마를 향해 달려간다!


' 시간' 대한 집착과 그로 인한 우울이 깊어질 때쯤 시의적절하게 아이의 어린이집 입소가 결정되었다. 하루  시간부터 출발한 '시간'  시간,  시간으로 조금씩 늘어났. 이제 어린이집에서 낮잠에 드는  성공한다면 하루 여섯 시간은 충분히 확보할  있다.


그렇게 되찾은 시간을 어떻게 쓸지 결정하는 사람은 나 자신이다. 처음 일주일은 무조건 근처 카페로 들어가 하루 한 권씩 책을 읽었다. 아이가 점심을 먹고 오기 시작하면서 멈춰 놓았던 소설을 진행시켰다. 가끔은 청소기를 돌리고 빨래를 하고 아무렇게나 쑤셔 넣었던 서랍들을 하나씩 정리하는 데 시간을 쓴다. 청소기에 달려들다 발이 걸려 넘어지거나 널어둔 빨랫감을 잡아당겨 몸에 둘둘 감고 다니는 아이가 없다는 것만으로도 산뜻하다.


 소유의 시간이라는 의미는 시간을 어떻게 쓸지 선택하는 결정권이 내게 있다는 뜻이다. 시간의 성분은 가능성이다. 가능성이란 무색무취의 찰흙 같은 덩어리로  손길에 따라 어떤 모양으로도 빚어낼  있는 것이다. 수많은 가능성 중에 집안일을 선택한다 해도 그게 나의 선택이라면, 집안의 질서를 재구성하고 청결과 반찬을 창조하는 예술적인 시간이   있다. 누군가 쿠키  같은 '집안일 '  시간을 찍어내 버리면 가능성은 고정되고 시간은 지루한 의무로 변해버린다.


있는 그대로의 시간이란,


1년 중 단 하루, 특별할 것 없는 날이면서도 이 세상에 내가 존재하게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특별한 의미를 찾고 싶은 날. 수학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나 2의 10승이라는 개념은 절대 잊지 않는데 2를 열 번 곱하면 1024가 되고 지구에서 달까지 갈 수 있는 숫자이자 내 생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특별한 날을 축하하며 남편은 내게 시간을 선물했다. 육아도, 빨래도, 청소도, 요리할 필요 없는 익명의 호텔 방 안에서 나는 일기를 제외한 글 한 줄 쓰지 않았다. 몇 번 읽었는지도 잊은 책을 아무 페이지나 펼쳐 읽다 창밖의 차들이 차선에 맞춰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욕조에 물이 다 찼고 새 술병을 땄다.


시간을 주물러 술병 모양을 만들어도, 편백 향이 나게 해도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만들어도 된다.  시간엔 무엇이든 자유롭게   있다는 가능성  자체로 존재하기. 34  새벽 6  엄마의 몸에서 미끄러져 나온  순간 내가 가진 유일한 것이었던 가능성으로 충만한 시간으로.


10월 24일의 1024의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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