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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wooRan Dec 31. 2021

올해가 하차합니다

2021년 마지막 날의 일기

크리스마스 이후 새해 이전 일주일은 올해와 새해 사이 덤으로 주어진 사은품 같다. 덤으로 붙여주는 증정품   사용해보시고 후기 남겨주세요! 새로운 책을 시작하기엔 아쉬워 읽다 멈춘  더미를 살폈다. 로베르트 무질의 소설 [특성 없는 남자] 코웃음 치는 소리를 들은  같다.  불렀니?  말에도 책은   소리로 콧방귀만 흥흥거린다.  페이지의 3 합본판은 320페이지에서 멈춰 있었다.  책을 사기 위해, 정확히는  책을 서점 극장 라블레에서 들이기 위해     생일날 공덕에 숙소를 잡았다.


2021.10.24


세계문학 전문서점인 라블레는 내가 원하는 것들이 모여 있었다. 바닥에서 빵 부스러기만 쪼아 먹고 연명하던 참새가 방앗간 문틈으로 우연히 날아들어가 받았을 충격 비슷한 것을 느꼈다. 천국이란 나의 열망을 정확히 구현한 곳이고 여기가 나의 천국 이리라, 나는 전 세계의 끝나지 않을 소설 목록을 원해. 물론 참새는 방앗간에서 쫓겨나고 나는 서점을 통째로 살 순 없으니 가장 두꺼운 소설을 품에 안았다. 우리는 시를 읽을 수도, 철학을 공부할 수도, 그림을 살 수도 있고 밤새 토론을 벌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것에서 얻는 게 과연 정신일까? 설사 정신을 얻는다 가정하더라도, 과연 그것을 소유할 수 있는 것일까?(로베르트 무질, 특성 없는 남자, 232쪽) 현대 모더니즘 소설의 3대장을 읽는다 하여 내가 21세기 현대소설 3대 작품에 들어갈 만한 글을 쓸 순 없는 법이다. 올해 한 권이라도 출판에 실패한 내가 할 말은 더더욱 아니다. 천국이란 완벽한 이상향이고 함부로 입장할 수 없는 곳이니까.


조금이라도 가질  있지 않을까 조바심 내며 읽고 썼다. 2021  독서량은 111, 18  정도의 장편소설을 완성했고  편의 단편소설 초고를 썼고 브런치북 에세이  권을 발행했다. 메일함에 수십 통의 출간 거절 메일이 쌓이고 그보다  많은 침묵을 답장으로 받았다. 예술인활동증명 인증을 받고 창작지원금떨어졌다. 시간의 열차에서 동행한 2021년에게 묻고 싶었다. 올해 내가 받은  온통 거절뿐이야, 내게   없니? 2021년은 멍하니 나를 보다 고개를 숙인다.  내려야 해서 그만 지나가겠습니다- 5시간 뒤에 열차가 정차하고 문이 열리면 2021년은 하차할 것이다. 원망할 틈도 주지 않고.


어차피 내릴 사람 붙잡고  말도  없으니 새롭게 승차할 2022년에게  것들을 헤아린다. 새로운 글쓰기 목표, 독서 계획, 굵직한 내년의  일들, 계획을 세우고  마음으로  물건들을 주문한다. 가열찬 창작을 도모하고자 블루투스 키보드를 구입하고 새해   읽을  책을 산다. 이를 옆에서 지켜보던 특성 없는 남자가  콧방귀를  소리로 발사한다. 지금 집에 있는 책이나 읽어 보시지, 예를 들면 ? 알겠으니까 삐진  그만 하고, 일단 아들 저녁  챙겨주고 나도 남편도 올해 마지막 저녁식사를 하고,  글을 마무리하고, 그리고...


2021년 마지막 봉봉


그리고 남은 것은 현재의 시간. 낮잠  자고 일어나 좋아하는 간식을 먹고 피아노 장난감을 뚱땅거리는   아기가 가진 것은 오로지 현재의 시간, 오늘이 12 31일이고 내일은 1 1일이라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은 아이의 세계는 좁고 깊다. 과거와 미래가 분리된 현재는 극대화되어 지금  순간을 몰입하게 한다. 지금 먹는 시금치 된장국은 나쁘지 않,  먹고 미끄럼틀 타는  재미있군, 뽀로로 동요는 언제 들어도 즐겁군,  조그만 머리로 이런 생각을 하려나 상상하니 엄마 아빠는 행복하군, 미소 짓는  옆으로 2021년이 슬쩍 다가와 귓속말을 한다.


올 한 해도 수고하셨습니다.


 역시 슬쩍 손을 들어 2021년을 향해 흔든다. 나쁘지 않은 일 년 동행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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