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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O Jun 21. 2022

인문학 씨 잘 지내나요?

응답하라! 2007

언제부턴가 경영대를 중심으로 취업특강이 종종 열리기 시작했다. 지금은 아예 취업프로그램이 있을 정도이다. 그것을 보면서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대학에서 면접 보는 법까지 가르쳐주다니... 순간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대학생들은 다들 취업에 미친 것처럼 보인다. 먹고살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당연하기는 하다. 하지만 취업을 너무 의식한 나머지 동아리 생활도 봉사활동도 취업을 위해서, 이력서에 뭔가 써넣기 위해서 하는 것 같다. 거기엔 어떤 순수함도 없어 보인다. 그들이 원하는 건 뭘까?


현시대를 인문학의 위기라고 부른다. 사회에서 인문학의 수요가 적다는 얘기일 것이다. 소비자의 수요가 적기 때문에 자연히 공급 역시 점차 줄어든다. 인문대 학과의 수의 감소도 이런 맥락에서 함께 한다. 사실 난 이것이야말로 정말로 인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희소식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 사회에서 인문학의 정신이 죽어가고 있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인문학에 정부의 지원이 없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벌어진다고 한다. 하지만 난 인문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이 경쟁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경쟁력은 단순히 우리가 말하는 스펙(specification)이 아니다. 인문학을 전공하는 사람으로서 타전공자들과 뭔가 달라야 한다는 점이다. 흔히 우리는 말을 잘하고, 글을 잘 쓰는 것을 인문학도의 강점으로 삼는다. 그렇지만, 실제로 말을 조리 있게 하고, 글을 효율적으로 쓰는 인문학 전공자는 많지 않아 보인다. 그중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는, 서울대 인문대학장인 이태진(64·국사학과) 교수의 말처럼 인문대 학생들이 법대나 경제학 강의를 많이 듣기 위해 전공 강의는 최소화해 듣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인문학을 공부하러 오는 사람들보다 대학을 졸업하기 위해 점수가 낮은 인문학과를 지원하는 사람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이 당연히 인문학에 흥미를 가지고 공부할 거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대학은 졸업을 쉽게 시켜준다. 그렇게 졸업한 학생들은 인문학 전공자로서 경쟁력을 못 갖추고 사회에 진출하기 때문에 자연도태된다. 사회는 이런 인문학 전공자들을 보고 쉽게 인문학 전공자 전체를 평가한다. 그렇게 사회적 위치가 낮아진 인문학 전공자는 인문학과의 사회적 위치를 더욱 낮춘다. 그럼 다시 인문대는 그런 악순환을 영원히 되풀이되게 한다.


인문학의 위기는 현재의 겉모양만 갖추고 있는, 부실 인문학을 정리할 것이다. 그 위기를 견딘 인문학은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빛을 발할 것이다. 우선 부실 인문학의 정리로 그 수가 적어질 것이고, 질은 높아질 것이다. 거기서 나온 인문학 전공자는 사회에서 경쟁력을 갖게 된다. 사회적 수요는 다시 증가하겠지만, 인문학의 공급은 다른 기술처럼 급격한 수요를 못 따라갈 것이다, 그때, 우리는 인문학 전공자로서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할 것이고, 정당한 대우를 받게 될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인문학적 역량은 다양하게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생각의 힘, 상상력, 아이디어 창출이 주가 될 것이다. 생각하는 것을 꺼리는 사람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인문학적 역량을 가진 사람은 점점 돋보일 수밖에 없다. 기술 습득은 그다음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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