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원가족에 대하여…
점심때쯤 경매 임장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오랜만에 아버지께 안부 전화를 드렸다.
“요즘 잘 지내세요??”
“우린 별 일 없이 잘 지낸다”
수화기 너머 아버지의 목소리가 밝다.
그러곤 나와 아내 그리고 손녀의 안부를 묻는다.
“애는 무탈히 잘 크고, 우리도 다 잘 지내요.”
한참을 손녀의 재롱을 얘기하며 “운동신경이 있는 것 같다”며 운동을 시켜 보라고 권하신다. 손녀를 끔찍이 아끼고 사랑하시는 게 느껴진다.
잠깐의 정적..
“형 하고도 최근에 통화해 봤나??” 뜬금없이 형 안부를 나에게 묻는다. 옆에서 엄마가 시킨 것 같다. 엄마는 우리 형제가 우애 좋게 지내길 열렬히 바라신다. 안 그래도 방금 형한테 전화해 봤는데 “지금 일어났대요”
“그럼 안 되는데..” 형의 불규칙적인 생활습관을 못마땅해하며 또 물으신다. “니 형 술 끊는다고 하더니 끊었대?” “끊는다 했으니 끊었겠지”라고 난 무심히 답했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이야기 주제가 건강과 운동으로 넘어갔다.
옆에 계신 엄마 안부를 물으며 “엄마, 요즘 운동하세요?”라고 아버지께 물었다. 아버지는 본인 얘기 먼저 하신다. 본인은 운동을 열심히 하시고 자기 관리도 잘하고 있다며, “난 매일 만보 넘게 걷고 산에도 간다, 그런데 너네 엄마는 운동을 안 한다. 자긴 할 필요가 없다고 하던데.. 요즘엔 일 다녀서 피곤하다고 못 한단다”라며 은근 비꼰다. 그래도 “아빠가 엄마를 끌고 같이 운동 다니시라”고 잔소리로 마무리를 했다.
또 화제를 돌려 아버지는 술을 끊으신지 5년이 되셨지만 아직 담배를 태우신다. 그래서 담배도 끊으시라고 걱정스런 잔소리를 했다. 아버지는 “담배도 끊어야지”라며 멋쩍어하셨다.
그리곤 아버지는 갑자기 앞으로 계획을 물어보신다. “퇴사 후 먹고살려면 자격증 하나라도 따놔야 하지 않나??” 내가 “무슨 자격증이요?”라고 되물으니 “머.. 주택관리사 같은 거라도 따놓으면 괜찮지 않겠나”라고 하신다. 이것 역시 불안한 자식의 미래를 걱정하는 잔소리이다. 그러면서 지난날, 나의 잦은 퇴사를 언급하며 “니는 보면 꾸준히 하는 게 없다. 저번에 공인중개사 시험 준비하던 것도 관두고.. 그게 보면 니가 회사를 많이 옮긴 것과 다 상관이 있데이.” 그러면서 “뭐든지 제발 꾸준히 끝까지 하라”고 신신당부를 하신다. 난 갑작스런 지난 얘기에 기분이 잡쳐서 ‘화’가 올라왔지만 꿀꺽 삼키고 “지금 하고 있는 경매를 될 때까지 할 것이라고, 이게 내 노후준비다. 이번엔 다르다고, 끝까지 하겠다”라고 강력히 어필했다. 아버지는 더 이상 잔소리를 하지 않으시고, “잘해보라”라고 쿨하게 말해주셨다.
훈훈한(?) 안부전화는 서로를 걱정해 주며 물고 뜯는 한 편의 잔소리극으로 끝났다.
나의 원가족 구성원은 아버지, 어머니, 형, 그리고 ‘나’이다. 우리는 서로를 챙긴다는 명분으로 서로를 판단, 체크하고 비난한다. 가령 아버지께 안부 전화를 드렸는데 근황 토크 이후에 자연스레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터치하며 훈계를 시작한다. 엄마는 한결같이 숨 쉬듯이 잔소리를 하신다.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의 일에 대해 혼자 소설을 쓰시며 너무 많이 생각하신다. 어머니의 세상은 너무 완벽하다. 아버지는 안 그러셨는데, 퇴직하시고부터 잔소리가 더 많아 지신 것 같다. 여기에 형도 합세해 우리는 서로 빈틈만 보이면 불안과 걱정이 썩인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잔소리의 주제는 사소한 자동차 관리부터 직장, 돈, 부동산, 정치, 건강, 운동, 손녀 등등 무한하다. 요즘 자주 건드리는 주제는 ‘건강’과 ‘운동’이다. 부모님은 이제 70대로 접어드시고 형과 나는 이미 40대에 합류했다. 집안 병력으로 고혈압이 있다. 자연스럽게 ‘건강’에 제일 관심이 간다.
오늘 불현듯 깨달았다.
나의 원가족 구성원들은 불안이 많구나!
그것이 잔소리로 나오는 것이구나!
불안에 대한 해결책은 없다.
그저 지금처럼 서로의 잔소리를 들어주며 또는 들어주는 척하며 불안이 스며들지 않게, 전념되지 않게 불안이 사그라들길 고요히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