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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O Jun 19. 2021

농구 예찬

농구가 내게로 왔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농구가 내게로 왔다'


'농구대통령' 허재를 비롯한 허동탁과 연고대 오빠부대, 그리고 '마지막 승부'의 장동건, 심은하가 티비를 점령하던 시절이었다. 게다가 중국 대륙의 스타티비에선  NBA를  강원도의 시골까지 전파해 주어 나에게 신세계를 선사했다. 내가 처음 본 NBA 경기는 '샬럿 호넷츠'와 ‘올랜도 매직’의 게임이었다. 타이론 보거스, 알렌조 모닝, 팔팔한 샤킬 오닐, 엔퍼니 하더웨이... 그야말로 쇼킹이었다. 외계 농구를 보는 것 같았다. 어떻게 저런 플레이를 할 수 있는지 경이로움에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였다. 그 당시 아버지는 형의 고등학교 진로문제로 우리들에게 심각한 얘기 중이었는데, 난 이미 NBA와 함께 내 맘대로 진로를 결정해 버렸다.


그 이후 난 엄마에게 졸라 베스타 농구공과 페니 하더웨이의 나이키 농구화를 갖게 되었다. 드라마 '마지막 승부'를 보며 누워서 농구공을 던지고, 얼마나 좋은지 농구공을 안고 잠이 들곤 했다. 그런데 베스타 농구공은 싼 만큼 질이 좋지 않았다. 난 눈이 오든지, 춥든지 말든지 밖으로 나가 골대 같지도 않은 놀이터 골대에서 농구를 했다. 결국 베스타 농구공은 한쪽이 볼록 튀어나오고 겉에 껍질이 다 벗겨지더니 검은 고무공이 되어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터졌는지 버렸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 보물인 나이키 농구화도 대부분의 농구화가 그렇듯이 실내용이라 밑창을 드러내 주며 안타깝지만 어디론가 사라졌다. 참 순수하게 미쳐있던 시절이었다.

 

중고등학교 내내 농구는 나에게 친구가 되어 주었고, 더불어 내향적인 나에게 친구를 소개해주기까지 했다. 중학교 때부터 수없이 따라 했던 NBA와 만화책 ‘슬램덩크’, 그리고 모래주머니를 발목에 차고 점프력 운동까지.. 공부를 이렇게 했으면 진짜 하바드 갔을지도 모른다. 하여간 고등학교 때는 테크닉의 절정기였다. 감히 자타공인 일대일은 최고라고 자부하던 시절이었다. 고2 때 길거리 농구대회에 나가서 우승도 해버렸다. 상으로 르까프 농구화를 받았는데, 사실 2등 상이 더 좋았던 걸로 기억한다.


혼자 북 치고 장구치고 꽹과리까지 치는 농구 스타일을 추구하며 자부심이 교만함이 되어갈 때쯤... 급기야 나는 NBA 슈퍼스타 '코비 브라이언트'와 나를 동일시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모든 내 물건에 'KOBE BRYANT'를 써 놓고 나와 친구들을 세뇌시키곤 했다. 그렇게 농구는 나에게 충만한 자신감을 심어주었고, 재미와 성취감을  동시에 느끼게 해 주었다.

 

고등학교 때까지 농구를 너무나도 많이 해서 대학교 때는 다른 걸 많이 하려고 했으나, 대학교 때까지도 농구를 꽤 했던 것 같다. 공부보다는 농구를 하며 놀았다. 날씨가 좋으면 날씨가 좋은 대로, 더우면 더운 대로, 흐리면 흐린 대로,,, 비만 오지 않으면, 그날은 농구하기 딱 좋은 날이 되었다. 사실 나에겐 언제나 농구하기 딱 좋은 날들이었다. 졸업하기 전까지 농구는 인간관계의 윤활유였으며, 내 자신감의 원천이었다.

 

이제는 반코트 2~3 게임만 뛰어도 무릎에 이상한 느낌이 온다. 오늘 간만에 농구를 했는데도 슛이 잘 들어가고 너무 재미있었다. 역시 난 자뻑 농구 천재다!!! 간만에 땀을 흘리니 참 기분이 좋다. 그래서 오늘의 느낌을 이렇게 글로 기억하고 싶었다.

 

이렇게 재밌는 걸 나이를 더 먹게 되고 무릎이 아파서 못하게 된다면 슬플 것 같다. 몸 관리를 잘해서 오래오래 즐기고 싶다. 예전엔 혼자 잘난 맛에 도취되어 농구를 즐겼다면, 이젠 나보다는 누군가를 빛나게 해주는 농구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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