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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O Jun 20. 2021

밤을 걷다.

어둡고, 고요한

어렸을 적에 난 밤에 심부름하는 게 정말 싫었다. 정확히 말하면 무서웠다. 금방이라도 어둠 속에서 갑자기 귀신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도 괜히 무서웠다. 그래서 무조건 앞만 보고 전력질주로 가게와 집을 오갔다.

 

그러던 내가 처음으로 아무도 없는 밤거리를 뛰지 않고 걷기 시작한 건 고등학교쯤이다. 학교에서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고 독서실로 가는 길, 그리고 독서실에서 집으로 오는 길, 그때는 아무도 없는, 고요한 밤이 참 좋았다. 물론 지금도 좋다. 더 이상 무섭지도 않고, 모든 것이 차분하게 가라앉은듯한 느낌이 좋다. 시끄러운 소음도 없고, 가벼운 바람 소리뿐이었다. 그때부터 어둠이 좋아지기 시작한 모양이다. 정확히 말하면 어둠이 가져다주는 분위기가 좋다. 뭔가 무거운 듯, 가볍고, 자유롭게 하며, 따뜻할 때도 있다. 아무도 없는 거리를 걷는 기분이란 마치 내가 이 거리의 주인이 된 것만 같다. 나 혼자만 그 거리를 온전히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밤은 어쩌면 나 자신과 마주할 수 있는 집중의 시간일지도 모른다. 난 어둠의 고요함 속에서 내 안으로 더욱 깊이 들어간다.

 

그렇다. 밤은 개인의 시간이다. 나만의 시간이다. 온전히 나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이다. 우리는 그 시간 동안 스스로 치유되며, 스스로 생각하게 된다. 지금은 그 시간이 부족한 느낌이 든다. 다시 찾아야 한다. 우리 모두에게 밤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니까…


그런데 이 밤의 고요함을 도시에서 찾기는 힘들다. 제대로 된 밤을 즐길 수가 없다. 어딜 가든, 심지어 새벽 1시에 운동하는 곳에도 운동하는 사람들로 넘치고, 유흥가는 말할 것도 없다. 24시간 편의점이 그렇게 좋은 건 아닌 듯하다. 밤을 잃어가는 사람들…


그들에게 밤은 필요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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