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의 노래
또 아침이 밝았다. 오늘부로 백수 24일 차다.
배경음악으로 한대수의 <하루아침>이 흘러나온다.
한대수 님이 이 노래를 처음 불렀던 때도, 백수의 기상시간은 아침 11시 반이었나 보다... 누가 정해 놓은 건 아니지만, 보통 새벽 4시 전에 잠이 들면, 11시 반쯤에 살며시 눈이 떠진다. 아마도 배가 고파서겠지. 하여간 아무리 늦게 자도 왠지 12시 전에는 일어나야 태양에 대한 예의일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젯밤부터 지금 아침까지 깨어 있는, 난 오늘 예의가 지나치다 못해 흘러넘치고 있다. 술이건, 시건, 뭐건 취해 있으라고 했던가. 그렇다. 뭐든 간에,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으면 정신은 언제나 육체를 넘어선다.
요즘 나의 나날은 대충 이렇다. 규칙적인 불규칙..
퇴사 후 2주간, 혼자만의 봄을 즐기며 새로운 사람들도 만나고, 고향집에도 다녀오고, 넉넉한 시간을 즐기며 텅빈 영화관에서 같은 영화를 두 번 연속으로 보기도 하고, 나름 문화생활도 즐기면서, 정신없이 빈둥거렸다. 그러면 좀 비워질까 했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다.
그리고 일주일간은 뭐 했나 모르겠다. 증발된 것처럼 기억이 없다. 아차차!! 중요한 실업급여인정을 받았구나! 이제 난 공식적으로 국가도 인정해 준 백수가 된 것이다.
연인들이 헤어지면 처음에는 실감이 안 나다가, 나중에 가서야 헤어진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지금 문득 이런 묘한 기분이 든다.
그건 그렇고,,
최근에 지난날의 기록을 들춰보자니, 지난 5년간 일기의 내용이 99%로는 불확실한 진로에 대한 고민이었다. 그리고 간간히 소스로 사회생활의 쓴 맛, 연애의 달콤한 맛 정도로 버무려져 있다.
졸업 후 직장도 여러 번 바꾸고, 직업도 여러 번 바꿨다. 내가 생각해도 끈기 있게 한 곳에 머무르지 못하고, 많이 방황했다. 5년 동안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먹고살 궁리를 한 셈이다. 이쯤 되면 뭐라도 나와줘야 이야기가 되는 건데, 아직도 불확실이다. 하지만 그 불확실이 5년 전에 느꼈던 것보다는 덜 두려워진 거 같다.
지난날의 다이어리를 꺼내보니, 이런 메모가 있었다. <지금 돌아가는 길이 나중에 가서는 가장 빠른 길임을 알 것이다.>
그 소설가 선배의 말을 한번 믿어보기로 했다.
난 지금 최상의 속도로 내 삶을 이끌고 있는 것이다.
그나저나 아직도 대수 형님의 노래가 흘러나오려나.
한대수 이 양반 참 양호하단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