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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den Nov 18. 2022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 카트라이더 박인수

카트라이더 리그에 진심인 직장인 일기

세상은 냉정하다. 같은 무대에서 경쟁하는 타인보다 더 많은 노력을 했다고 하더라도, 승리의 결과로 입증하지 못하면 인정받기가 어렵다. 사실 우리는 알고 있다. 단 하나의 결과를 위한 아흔아홉번의 과정도 꽤나 중요하다는 것을. 그래서 열심히 무언가를 준비한 친구가 좋지 못한 결과를 얻었을 때, 그를 진심으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그가 다시 도전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줄 것이다.


하지만 프로 스포츠의 세계는 조금 더 냉정하다. 진심으로 위로와 격려를 전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플레이에 대한 질책은 물론 경쟁자 대비 깎아내리는 인신공격까지 맞이하게 된다. 프로이기에 견뎌야 하지만, 사람이기에 너무나 무겁다. 사실 무대를 떠나면 그 부담에서 도망칠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이 목표하는 영광의 순간을 위해 절대 포기하지 않고 온갖 풍파를 다 견디고 있는 사람이 있다. 내 지인이 아닌 사람 중 내가 가장 응원하는 사람, 카트라이더 프로게이머 박인수이다.


최근 롤드컵을 우승한 데프트 선수가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사실 선수의 인터뷰를 기자가 제목으로 뽑아내면서 탄생한 말이라고 하는데, 이 선수의 서사가 너무 감동적이라서 화제가 되었다. 사실 나는 롤을 해본 적도 없고 롤드컵에 대해서도 잘 모르지만 인터넷에 올라온 이 선수의 이야기를 보고 감동받을 수밖에 없었다. e-스포츠가 주는 감동을 보며 예전 스타크래프트 리그가 생각나기도 했고, 공감하는 사람이 많은 롤드컵 팬들이 부럽기도 했다.


그래서 보는 사람도 롤보다 적고, 아직 서사가 완성되지도 못했지만 내가 좋아하는 카트라이더 리그와 박인수 선수 이야기를 글로 써보고 싶었다. 내 브런치에 오는 사람 대부분이 카트라이더에 관심이 없겠지만, 그래도 읽어주었으면 하는 마음에 모르는 사람도 이해할 수 있게 써보고 싶었다. 관심 없겠지만 그래도 '얘는 요즘 뭐에 관심을 가지고 있나' 궁금하시다면 읽어주시면 좋겠다.


카트라이더는 오래된 게임이다. 게임은 2004년에 시작했고, 리그는 2005년에 열렸다. 요즘은 카트라이더보다 세상에 늦게 태어난 애들이 이 게임의 프로게이머로 활동하기도 한다. 전 국민을 열광시키며 시작한 카트리그는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며 축소 운영되었다. 하지만 2018년 인터넷 방송 및 PC방 역주행의 인기로 다시 활성화될 수 있었다. 덕분에 나 역시 20대 중반이 되어서야 카트리그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평범한 선수 1이었던 박인수는 2018년 카트와 함께 떡상하게 된다.


카트라이더는 새로운 유형의 카트(차)를 선보이면서 '듀얼레이스 X'라는 이벤트 대회를 열었고, 박인수는 이 대회의 팀전/개인전에서 모두 우승하게 된다. (최근 카트라이더의 대회는 동일 시즌 내에서 팀전/개인전으로 구분되어 진행된다.) 해당 대회는 팀전 내에서도 개인별 1:1을 하는 특이한 방식이 존재했는데 박인수는 해당 모드를 완벽하게 캐리 하면서 이름을 알린다. 또한 실력뿐 아니라 게임을 '재미있게'한다는게 어떤 것인지 보여주며 많은 팬을 확보하게 된다. (안타깝게도 이 대회는 이벤트 대회라서 공식 리그 우승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대회이다.)


그리고 열린 정규대회. 2019년 시즌 1. 이벤트 전이지만 전 시즌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던 박인수는 예상대로 승승장구했고, 카트라이더 하면 모두가 아는 카트황제 문호준과 양강 구도를 이뤘다. 팀전 결승도 박인수팀 vs 문호준팀 구도였으며, 개인전 결승도 박인수, 문호준, 유창현(박인수의 팀 동료) 3강 구도로 진행됐다. 결승전은 같은 날 개인전-팀전 순으로 진행되는데 이 날은 개인전/팀전 모두 드라마였다.


먼저 개인전 결승은 8명 중 1등이 80점을 획득하면 1라운드가 종료되고 1등과 2등이 5판 3선 1:1을 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1라운드 마지막 몇 경기를 남겨둔 상태에서 점수는 아래와 같았다. (한판에 얻을 수 있는 최대 점수는 10점이다.)


13트랙 후 : 박인수67 / 유창현64 / 문호준 50

14트랙 후 : 박인수72 / 유창현 67 / 문호준 60

15트랙 후 : 박인수 77 / 유창현 74 / 문호준 70

16트랙 후 : 박인수 84 / 유창현 77 / 문호준 80


문호준의 극적인 막판 3연속 1위로 박인수는 팀 동료 유창현이 아닌 카트황제 문호준과 2인전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첫 경기를 준비한 전략대로 굉장히 멋지게 승리했지만 내리 3연패를 당하며 개인전 준우승에 머무르게 된다. 하지만 곧이어 진행된 팀전 결승에서는 세트 스코어 동점 상황에서 문호준과의 단판 에이스결정전 (1:1)에서 박인수가 승리하며 팀전 우승을 가져오게 된다. 19시즌 1의 경우 워낙 양강구도 였고, 문호준과 박인수가 우승컵을 하나씩 나눠 가졌기 때문에 개인전 준우승에 대한 아쉬움보다는 첫 우승의 감동이 더 컸다. 하지만 이때는 몰랐다. 박인수와 개인전 우승컵이 이렇게 인연이 없을지.


박인수의 팀전 첫 우승 순간
최근 리그 팀전에서 올킬을 달성하며 팀을 우승으로 이끈 박인수(팀전 5번째 우승)

박인수는 19년 이후 진행된 9번의 리그에서 무려 5번의 팀전 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가장 최근의 리그에서는 공식 리그 최초의 승자연전에 나서서 상대 선수 4명을 혼자 모두 잡아내는 말도 안 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물론 가끔은 팀전에서도 아쉬움을 삼키는 순간이 있었지만, 박인수는 팀전에서 더 만들 명장면이 없을 정도로 영광의 순간이 많은 선수이다. 

 

하지만 19시즌 1 이후 박인수의 개인전은 마가 낀 것 마냥 풀리지 않았다. 카트라이더 리그는 3위까지를 입상이라고 하는데, 박인수는 개인전 기준 최근 9번의 대회에서 6번의 입상(준우승4회, 3위 2회)을 했음에도 개인전 우승컵만큼은 들지 못했다. 특히 우승 바로 앞에서 좌절한 경우 박인수 입장에서 안타까운 장면이 너무 많았다. 다만  이것이 리그 전체로 보았을 때는 명장면으로 분류되어 늘 조연처럼 영상에 남곤 했다. 서사를 미쳐 다 말로 하기 어려울 정도로 시즌마다 아쉬운 스토리가 많았는데, 그 깨진 멘탈을 매번 어떻게 수습해서 다음 대회에 나왔는지 놀라울 정도이다. 그중 몇몇을 아래 영상과 그 설명으로 대신한다. 


자신이 가장 잘하는 상징적인 트랙에서 패배하며, 눈앞의 우승을 놓친 21시즌 1 개인전 결승
16년 만의 로얄로더(대회 최초 출전에 우승)를 탄생시키며 우승을 놓친 22시즌 1 개인전 결승  

개인전 우승이 없다는 아쉬움을 차치하더라도 박인수는 이미 카트리그에서 가장 잘하고 인기 많은 선수 중 한 명이다. 신빅3로 불리며 최고의 선수 3인 중 한 명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팀전 우승컵은 이미 여러 번 들어 올렸다. 개인전도 사실 우승만 못했을 뿐 꾸준함과 순위 데이터로 많이 보여줬다. 그럼에도 그는 스스로 당당한 챔피언이 되기 위해서 다시 한번 개인전 우승에 도전한다. 카트리그 내에서 누구보다도 시련이 많았음에도 다시 일어서는 의지와, 프로게이머로서는 나이가 많은 편임에도 열심히 연습하고 연구하는 모습은 내가 박인수를 계속 응원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물론 이제는 한물갔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동정 어린 시선을 보내는 사람도 있다. 또 몇 번의 준우승이 트라우마로 다가와서 결승전의 박인수를 또 무너뜨리려 할 수 있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가장 빛나는 순간을 위한 빌드업이라고 생각하며 기다리려 한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니까. 스타리그의 송병구가, 롤드컵의 데프트가 했던 것처럼 박인수가 보여줄 수 있다고 믿어보려 한다. 그래서 언젠가 서사 마지막 퍼즐이 맞춰질 때 이 글을 자랑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렇게 멋진 결승전의 마지막을 이루기 위해 그렇게 준우승을 했던겁니까

끝으로 나의 매주 수요일 퇴근길 / 주말 저녁을 즐겁게 만들어주는 카트리그 선수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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