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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den Mar 24. 2022

떨어진 아말감은 왜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을까?

작은 우울감에도 잠식되는  현대인

아말감이 깨졌다.


구정 날 혼자 서울에 돌아와서 축구를 보며 오징어를 씹고 있었다. 

곧 역겨운 이물감이 느껴졌다. 피와는 미묘하게 다른 맛이 버터구이 오징어의 달콤함 사이로 스며든다.


아말감의 수명은 통상 10년 정도라는데, 재수가 좋고 나쁨에 따라서 10년을 넘길 수도 그러지 못할 수도 있다. 내 입안에 있는 것들은 아마도 중고등학생 시절부터 나와 함께 했을 것이다. 올해 나는 스물아홉이 되었고, 잠시 때워 놓은 것들은 이제 깨질 때가 되었다. 이놈들은 사실 기대 이상으로 버텨준 것이다.


하지만 부러져 버린 이는 사람을 센치하게 만든다.

(센치해진 내가 굴렸던 불행 회로는 아래와 같다.)

아말감과 함께 이가 너무 많이 부러져 '최소 크라운, 최대 임플란트' 진단을 받음

회사원이 되고 나서는 이를 정말 열심히 관리하고 있는데 뭔가 억울함

치과1에서는 그냥 임플란트를 하라는데, 20대에 벌써 임플란트를 박는 것에 대해 상실감이 느껴짐

학창 시절 집 형편이 안 좋아서 좋은 재료 대신 아말감으로 때워놓은 것이 괜히 서러움

하다못해 늘 임시방편으로 땜질만 하며 살아온 것이 내 삶의 태도 같다는 생각마저 들어 후회됨


사실 처음 이 글을 쓰던 3주 전쯤에는 불행회로의 우울감에 정말 잠식되어서, 공허하고 우울하고 그랬다. 사실 공허한 건 오른쪽 윗니뿐인데, 어떻게 깨진 아말감이 29년 삶의 태도를 부정하는 것으로 이어졌는지 모르겠다. 지금 생각하면 이해가 잘 안 된다.


어쨌든 3주 정도 후, 우울감은 걷어낸 후 다시 내린 결론은 아래와 같다.

결국 치과2(보존치과)에서 임플란트 대신 크라운을 끼워 이를 살리고, 나의 상실감도 꽤나 메꿔짐

임시방편으로 땜질하며 살아온 것치고는 결과가 늘 괜찮은 편이었음

다만, 앞으로는 땜질보다는 예방을 하며 살자는 교훈을 얻었고, 난 겨우 83만 5천 원에 그것을 샀음

형편이 안 좋아서 아말감 밖에 고를 수 없었던 소년은 83만 5천 원을 멋지게 지불할 수 있는 어른이 됨


난 우울증 환자가 아니다. 사실 감정 기복이 별로 없는 편이라는 나름의 자부심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사람이기에. 마음이 약해졌을 때에는 작은 이벤트로 인한 불행을 끝없이 파고드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아마도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도 종종 그럴 것이다. 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허지웅 만화(https://pgr21.com/humor/405685)속 교훈처럼, 불행이 발생했을 때는 그것을 파고들지 말자.


이가 망가졌을 때 할 일은 그 불행을 더 깊이 파고드는 것이 아니라 치과에 가는 일이다. 


(3/1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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