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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일상의 시간을 보내다가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낯선 무언가로의 노출' 그 순간이 필요한 시점. 언제 이런 감정이 자연스럽게 느껴지는지, 어떻게 하면 그런 의지가 생기는지 명확히는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일상의 평범함을 보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는 점입니다.
그런 생각이 귀결되는 지점은 전부 각자 다르겠지만 저에게는 "예술의 영역"이 그 한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고등학교 수학 2, 미/적분 그리고 물리 2를 배웠던 이과생 (정말로 그 당시에는 전자기학에 너무나 빠져서 순수 물리학을 전공하려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이론 물리학자가 되고 싶은 그 열정 하나로)에서 대학교로 와서는 공대생으로, 어떻게 보면 숫자와 함께하는 시간을 보낸 것 같습니다.
[a. 개인적으로 너무 좋아하는 장소인, 토크라피 (Talkraphy)의 설명서 같은 내용인데 정말 문구 하나하나가 와 닿습니다. 특히 "적당한 소음 (Proper Decibel)"이라는 단어의 조합이 너무 세련됩니다. 대화를 지향하는 사람으로서 요즘의 소음은 가끔 한 방향으로 그리고 너무나 크게 울리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과생 + 공대생 조합을 가진 저에게 있어서 "예술의 영역"은 조금은 신기합니다. 오히려 수학적 이해가 불가능한 또는 통하지 않는 영역이라 그 신기함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X라는 변수를 대입하면 어떠한 과정 (Function)을 통해 Y라고 하는 해답이 나와야 하는데 이상하게 예술은 이 Y라고 불리는 최적의 해가 너무나도 다양합니다. 아마 이것은 받아들이는 사람의 차이에 따라 발생하는 결과 값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그림 혹은 음악 혹은 건축물을 만든 예술가가 본인만의 X라는 요소 (한 명에게 나왔기 때문에 동일한 변수일 것입니다.)를 투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른 Y가 나왔다. 그럼 이 안에서 중요한 것은
"Function"
아마 이 함수 (Function)의 차이는 "예술을 받아들이는 개개인의 독특한 사고"에서 온다고 생각을 합니다. 적어도 제가 이해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이런 게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차이를 좁히기 위해서는 대화가 필요하고 적당한 소음을 가진 언어가 필요합니다. Proper decibel. 적당함의 경계선을 찾는 그런 대화를요.
[b. 토크라피의 목적과 함께 그 안에 담겨있는 색감 또한 이 목적을 지향한다고 생각합니다. 은은한 조명과 자연 채광을 비추는 커튼 (Curtain)의 디테일함은 이를 드러냅니다.]
[c. 개인적으로 좋아하기 때문에 사진에 자주 등장을 하지만, 목재와 조명은 정말 좋은 조합인 것 같습니다. 전구로부터 나오는 그 인공의 빛을 하나의 입자로 온전하게 받아들이는 목재에는 그 자연스러움?이라고 생각합니다.]
[d. 주황색의 빛이 맴도는 분위기 (혹은 무드 Mood)가 아무래도 조금은 진정의 효과를 주기 때문에 대화의 흐름에도 분명히 영향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적당한 긴장감과 적당한 안락함이 주는 그 경계선에는 아마도 적당한 대화가 숨어있지 않을까 합니다.]
[e. 개인적으로는 미래의 어느 순간에는 과거의 산물인 살롱 (Salon) 이 굉장히 유행을 할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서로의 대화를 통해 지식을 탐구하고 서로의 감정을 통해 사고를 향유하는 그런 목적이 가득한 장소, 모임으로써.]
[f. 그림 속에 있는 이런 느낌의 순간을 좋아합니다. 아직은 저도 부족한 부분이지만 어느 나른한 날에 책 한 권을 들고 여자 친구와 만나서 조용히 (대화가 없더라도 어색하지 않은 그런) 책을 읽더라도 그 시간이 어색하지 않음을 느끼는 그런 순간입니다. 평소에도 핸드폰은 최대한 자제를 하려고 하는데 이 곳에서 만큼은 핸드폰은 가방 속, 저 멀리 넣어두고 한없이 대화를 하고 싶었습니다.]
[g. 토크라피에서 본 가장 마음에 들었던 그림입니다. 이 날의 분위기를 아마 우리도 어느 한순간에는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해가 지는 어느 한 시간에, 조용한 카페 그리고 책 한 권과 커피가 놓인 테이블. 그리고 기분 좋은 그런 하루의 느낌.]
"대화"가 가지는 그 느낌을 전달하고자 하나의 공간으로써 "토크라피"를 보았지만 결국, 예술이라는 영역이 가지는 철저한 주관성으로 이를 적당한 공통 코드로 바꾸기 위해서는 대화가 필요함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같은 것을 봐도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한다면, 이는 하나로 합쳐지지 못한 채 평행성을 달릴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적당한 소음을 가진 대화는 그 관계를 질적으로 발전시키는 하나의 과정이 될 것도 알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저에게 있어서는 그렇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은 자연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 것처럼, 우리의 대화도 아마 과거의 기억으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수단을 통한 기록 혹은 적절한 이미지로써 남겨놓지 않는다면 이는 각자의 기억으로 남아서 미래의 언젠가 같은 과거를 이야기할 때, 서로 다른 의미로 해석을 할지도 모릅니다.
[h. 덕수궁의 건축물, 그때의 손길과 그때의 발걸음은 어딘가에 적당히 남겨져있을까요? 아니면 지금의 손길과 발걸음으로 철저하게 지워졌을까요? 아마도 그것은 자연으로 돌아가는 그 순간에 담겨있을 것 같습니다.]
[i. 덕수궁 건축물 아래 설치된, 전구. 필라멘트에 전기를 가해 열을 발산하는 전구는 지금의 형광등과는 그 원리를 포함한 성능도 전부 뒤떨어지지만, 저에게는 전구가 주는 빛의 색감은 현재의 형광등이 따라올 수 없는 느낌이 담겨있습니다. 그래서 몇십 년 뒤에, 미래의 세대에게 얼마나 전구가 좋은지를 설명한다면 정말로 와 닿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
개인적으로는 "예술 그리고 대화는 서로를 채워주는 관계"라고 생각을 합니다. 철저히 주관적인 예술이 가지는 의미를 서로가 이해할 수 있는 공통의 코드로 변환을 하기 위해 대화가 필요하듯이.
#일상의정리 #Talkraphy적당한소음의대화와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