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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책, '마르살라와 리빙코랄 그리고 그 해 여름.'
오후 5시 업무를 마치고 돌아가는 퇴근길, 분주한 선릉역의 테헤란로 한가운데에서 노트북 하나를 들고 카페로 그 발걸음을 향했습니다. 집으로 가는 시원한 전철역을 가볍게 패스하고 사람들이 모여있는 카페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매일이 그렇지는 않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면 항상 즐거운 상상을 하며 노트북을 꽉 안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노트북의 무게감을 온전하게 느끼며 카페로 들어갔습니다. 적어도 그런 실감이 들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합니다.
커피를 한 잔 주문하고 자리로 돌아와서는 노트북의 한 페이지를 열고, 사진 1장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음료가 나올 때까지 생겨난 약간의 시간을 가지고 이런 상상을 했습니다.
"오늘은 아무래도 소설의 끝을 생각해둬야겠어."
3개월 전을 그 시작으로 처음 써 내려갔던 단편소설의 마지막은 그렇게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주문한 커피가 나올 때까지 생겨난 시간과 함께 소설의 마지막 한 글자를 입력하고 엔터를 치는 그 시간도 금방 찾아왔습니다. 그런 시간들을 묵묵히 통과하며 저는 단편소설을 썼던 것 같습니다.
때로는 너무나 행복한 상상과 함께, 때로는 너무나 막연한 고민과 함께, 단편소설은 퇴근길의 저와 함께 그 시간을 받아들였습니다. 이제 와서 이렇게 그 시간을 돌아보니 그건 아무래도 꽤 즐거웠던 것 같습니다. 가끔은 무엇을 써야 할지 머리가 다 아플 지경이었지만요.
■ 97 페이지, 6.65mm의 두께 그리고 8,300원
이렇게 말하기는 참 멋쩍기도 하지만, 처음으로 쓴 단편소설이 이제는 적당한 무게와 그 형태를 가지고 세상에 나왔습니다. 길게 쓰지 않고 "출간을 했습니다. 여러분!" 이라고 적으면 참 간단할 테지만, 저에게는 아직은 조금 어색한 단어이고 또 어울리지도 않은 것 같아서 쉽게 쓰여지지가 않았습니다.
0과 1의 조합으로만 존재하던 워드 파일 속의 이진법이 '97페이지'와 6.65mm의 두께' 그리고 '8,300원'이라는 구체적이고 명확한 아날로그의 숫자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런 사실이 참 신기합니다. 그리고 주민등록번호와 같이 고유의 숫자 (ISBN)를 가지게 되었다는 그 사실 또한 너무나 신기합니다.
책의 완성과 함께 제일 먼저 주문을 하고 회사의 카페에 앉아 이 책을 직접 손으로 만져보았을 때, 수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오래도록 남은 것은 "비록 짧은 3개월이지만 그 순간에, 열심히 이 단편소설을 쓰던 그 순간을 기억할 수 있겠구나. 적어도 그런 수단 한 가지가 나에게는 이렇게 있구나." 라는 점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원고를 처음으로 받아보았을 때, 정말로 수정을 하고 싶은 어떻게 보면 전부 뜯어고치고 싶은 마음도 많이 들었습니다. 너무나 부족한 글에 대한 나름의 반성이 깊이 남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사진 몇 장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고치지 않았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무슨 자신감으로 그런 결정을 했나? 싶기도 하지만 결과론적으로 아무것도 수정이 되지 않는 ‘날것 그대로의 원고’가 이렇게 책으로 나왔습니다.
"나를 기억할 수 있는 수단, 그 당시의 날것 그대로의 나를 기억할 수 있는 수단, 그 당시의 생각과 상상 그리고 즐거움을 지녔던 날것 그대로의 나를 기억할 수 있는 그런 책." 이 바로 처음으로 쓴 단편소설이 가지는 ‘의미’였던 것 같습니다.
2020년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던 순간에서 왼손에는 노트북을 당당히 안고 카페의 문을 열던 그 당시의 저의 모습을 기억하고 싶었습니다. '미스터 그레이'와 '리빙코랄'과 함께 세상 모든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만 같은 그런 자신감을 한가득 안고 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가던 저를 기억하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렇게 쓰여진 저의 단편소설이 누군가에게는 '알맞은 그리고 아주 적당한 포물선'으로 나아가 그 마음속 어딘가에 닿기를 바라기도 합니다. 어쩌면 그것은, 한 명의 글쓴이로서 얻게 되는 제일 큰 그리고 가장 즐거운 실감일 것 같습니다.
카페의 문을 당당히 열고 들어가던 글쓴이의 그 즐거움과 그 상상력이 이 책을 읽는 누군가의 마음에도 온전하게 닿아, 그 당시의 저를 함께 기억해주셨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것도 같습니다.
부족할지도 모르겠지만 전하고 싶었던 내용들이 참 많았거든요. 이 책을 통해서, 이 글을 통해서 그리고 미스터 그레이를 통해서.
그래서, 제 책의 제목이 뭐냐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