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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카, 정우 그리고 Since 2018.03월
사무실에서 부지런히 야근을 하고 있을 때, 뜬금없이 엄마한테 연락이 왔습니다. 평소라면 밀린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다시 전화를 걸었겠지만, 그날은 이상하게도 지금 받아야만 할 것 같았습니다. (참, 사람이 가지는 감각이라는 것은 때로는 정말 신기합니다.)
"조카가 생겼다!"
그렇게 받은 연락의 압축적인 메시지였습니다. 조카가 생겼다니, 아니 누나가 출산을 했다니 참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조카' 라는 단어가 낯설기도 하고 솔직히 말하면, 실감으로 잘 와 닿지 않았습니다. 그저 '한 명의 새로운 생명이 이렇게 탄생을 했다' 정도의 느낌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채워지기를 기다리고 있던 엑셀 파일을 저장하고 서둘러 가방을 챙겨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그냥 가기에는 조금 허전할 것도 같아서 평소 누나가 먹고 싶어 하던 디저트를 가득 사서 가기로 했습니다. 누나에게 줄 것만을 고민하고 샀던 것을 보니 그때까지도 저에게는 '조카의 탄생' 보다는 '누나의 건강' 이 혹은 '누나의 출산' 이 가지는 그 사실이 더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
유리창 너머로 본 조카의 첫 모습은 아직도 그 기억이 생생합니다. 흰 보자기 안에서 잠자고 있는 빨간 얼굴, 그게 그 당시의 전부였습니다. 빨간 얼굴이 '조카' 로 다가오기보다는 하나의 '생명' 으로 저에게는 먼저 다가왔습니다. 아마도 그건 어색함과 놀라움의 범주를 가진 감정이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정확히 설명은 되지 않지만요.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갈 수 있다면, 흰 보자기 안에서 잠자고 있던 빨간 얼굴이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말해주고 싶기도 합니다.
"와, 내가 외삼촌이라니 정말 말도 안 돼! 고마워!"
물론 지금은 조카, 정우가 너무나 좋습니다. 저를 외삼촌으로 만들어줬다는 단순한 사실을 아주 가볍게 뛰어넘어 그 자체로 애정을 주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이제는 그냥 ‘정우’ 가 아니라 외삼촌인 저에게는 '조카, 정우' 이기 때문입니다. 앞에 아주 흔한 두 글자가 붙은 것, 그뿐이지만 아무래도 그건 엄청난 차이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 호기심 가득한 눈망울, 그 속에 놓인 투명한 빛.
퇴근을 하고 집으로 오면 창 밖에서 이미 조카, 정우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누나는 엄빠 찬스를 통해서 꽤나 편한 육아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요.) 대부분은 소리를 지르거나 아니면 뭔가를 보고 웃고 있는 목소리여서 참 반갑습니다.
걸어 올라가는 그 계단에 벌써 '정우가 뭐 때문에 저렇게 기분이 좋을까?' 하는 상상이 자연스럽게 찾아올 만큼요.
그리고 자동차를 좋아하는 정우를 위해 현대 모터 스튜디오에도 가끔 찾아갑니다. 그 조그마한 장난감을 보다가 실물의 사이즈를 가진 자동차를 보면 얼마나 좋아할까? 하는 상상과 함께.
역시, 예상대로 정우는 소리를 지르며 여기저기 뛰어다닙니다. (하지만 다른 관람객을 위해서 뛰거나 소리를 지르면 안 되는 장소이기 때문에 그걸 말리느라 상당히 고생을 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빨간색의 G70 앞에서는 어찌나 한참을 구경하는지 '3살이라도 좋은 자동차는 직감으로 아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렇게 신나게 뛰어노는 정우를 먼발치에서 가만히 보고 있자니 수많은 감정이 교차를 합니다.
"정우가 이렇게 자랐으면 좋겠다." 하는 삼촌으로서의 마음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겠지만, 가끔은 "정우가 이런 환경에서 자라났으면 좋겠다." 하는 희망으로써의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왜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일까? 에 대해서 고민을 해보니 아무래도 미래를 상상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33살, 정우는 3살.
30년의 간격을 둔 세월에서 앞으로 정우가 묵묵히 걸어 나갈 그 30년에 저의 모습을 비추어 봤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저와 똑같은 길을 가야만 할지도 모르는 조카, 정우의 발걸음이 걱정되기도 했습니다.
점수를 기준으로 서로를 나누고, 등급을 기준으로 그 방향이 정해지고 그리고 뭔가를 입증하지 않으면 안 되는, 때로는 필요하지 않다고 일방적인 판단이 내려지는 그런 사회가 여전히 정우에게도 존재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입니다.
지나친 걱정인 것은 저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정우의 선택과 판단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빨간색의 자동차를 바라보는 정우의 그 눈망울이 너무나 찬란했습니다. 너무나 찬란해서 가만히 지켜보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속으로 바랬습니다.
정우가 가진 이 찬란한 눈망울이 그리고 그 속에 놓인 투명한 빛이 30년이 지난 뒤에도 그대로 보였으면 좋겠다고. '60살의 아저씨가 된 내가 30살의 정우를 가만히 바라보았을 때, 여전히 그 찬란함이 가득하게 보였으면 좋겠다고'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솔직하게 말하면, 정우가 '무엇' 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엔지니어', '의사', '공무원' 등 그런 직업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꽤 현실적으로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좀 더 큰 마음으로는 '무엇' 의 삶이 아니라 '어떻게' 에 가까운 삶을 살기를 희망합니다.
"어떤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혹은
"인생을 어떻게 살았으면 좋겠다." 하는 그런 희망입니다.
현실의 벽 앞에서 '무엇' 아니라 '어떻게' 를 선택하기란, 여전히 쉽지 않다는 것도 물론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조카, 정우의 하나뿐인 외삼촌으로서 그리고 한 명의 팬으로서 꾸준하게 애정으로 바라봐주고 싶습니다. 그건 욕심도 지나친 걱정도 아니니까요. 그건 저만 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