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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냐체크의 '신포니에타(Sinfonietta)'와 함께
이 전의 글에서도 여러 번 (어쩌면 아주 많은 이야기를 통해서) 말했듯이,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가 있다면 그중에 한 명으로 '무라카미 하루키'를 떠올리곤 합니다. 어떻게 보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에 대해 여전히 호불호가 있는 작가이지만, 어디까지나 저에게는 심플한 전달과 디테일한 상상이라는 점에서 상당한 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그의 이런 심플함을 배우고 싶기도 합니다.
때로는 너무 부럽거든요. 풀어나가고자 하는 이야기를 아주 심플한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그 자체 가요.
전주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출장길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서대전을 경유하는 (그만큼 기차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이 길어지게 됩니다.) KTX의 티켓을 '일부러' 구매한 기차 안에서 천천히 책을 읽어 내려갔습니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기차를 탈 때면, 세상과의 단절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적어도 누군가의 방해를 받지 않고 온전히 저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그런 단절입니다. 물론 아무리 멀리 가도 3시간 정도로 정해진 한정적인 시간이지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만들어진 단절은 책을 읽기에 아주 좋습니다. 이는 누군가가 만들어낸 상상의 세계에 빠져들기에 충분한 시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 읽고 있는 책은, 그 당시에 한국에서도 꽤 유명했던 '1Q84'의 제1권입니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이 있다면 이 책 (총 3권에 달하는 장편소설입니다.) 을 구입하고 나서 누군가에게 빌려주었는데 돌려받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기억이 나지를 않더군요. 그래서 이 참에 다시 읽어보자는 마음으로 중고서점에 가서 상태가 좋은 책으로 재구입을 했습니다. 누가 보면 상당히, 아주 상당히 비경제적인 구매겠지만 어디까지나 책을 들고 나오는 제 기분 만큼은 꽤 좋았습니다. 묵직한 책의 그 무게감이 너무 좋습니다.
아마도, "난 이렇게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더 소장하게 되었다!"라는 마음이 들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런 점에서 비경제적인 구매를 넘어서는 무언가가 여기에는 존재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을 합니다. (이미 아시겠지만, 저만의 자기 합리화입니다.)
책을 다시 읽으며, 예전에 읽었던 내용들이 빛바랜 사진과 같이 새록새록 기억났습니다. "아 맞다, 이런 이야기였지? 아오마메와 덴고 그리고 공기 번데기의 이야기였지."와 같은 사실을 하나하나 확인해나가는 과정이 책을 읽어가는 순간과 함께 자연스럽게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조금 생소했던 것이 있다면 '야냐체크의 신포니에타'를 "직접 들어봐야겠다." 라는 마음이 갑작스럽게 찾아왔다는 점입니다. 예전에 읽었을 때는 왜 이 곡을 들어보자고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과 함께.
꽉 막힌 도로 위, 택시 안에서 아오마메가 들었던 그 신포니에타를 몇 년의 시간이 지나서 이렇게 들어보니 1Q84라는 소설을 조금은 더 적절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어쩌면 무라카미 하루키가 소설을 쓰면서 왜 이 곡을 하나의 장치로 넣었을까? 하는 그런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정말, 대단하다. 상상의 세계를 담은 소설은 이렇게 탄생을 해야 하는 것이구나."
■ 그러면, 이상한 세계는 꼭 '이상해야' 하는 걸까?
처음으로 단편소설을 쓸 때도 나름의 고민을 했던 것이 있다면,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를 쓰는 것'과 '지극히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쓰는 것' 사이의 경계선을 어느 정도의 간격으로 유지해야 하는 것일까? 라는 의문이었습니다.
너무 지나치면 "음? 이게 뭐지? SF인가?"라는 반응이 올 것 같고, 너무 현실적이면 "음? 이건 경험담인가? 다큐인가?"라는 반응이 있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읽으면서, 제가 표현하고자 하는 그 상상의 세계를 "줄이지 말자, 오히려 가득하게 보여주자."라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다만, 그 표현에 있어서 중요한 것이 있다면 한 명의 글쓴이로서 "중심을 잡아주어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마음가짐과 기준이 적절하게 유지가 된다면 '이상한 세계'는 더 이상 이상하게 보이지만은 않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마치 '1Q84 속 야냐체크의 신포니에타'처럼요.
몇 편이 남지 않은 에세이를 끝으로, 두 번째 소설을 써보려고 하는 지금, 다시 한번 어딘가에 숨겨두었던 이상한 세계를 구체적으로 상상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상한 세계와 제가 가진 이상한 세계 사이의 간격은 너무나 넓고 또 깊겠지만 이건 지극히 당연한 간격일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라는 것이 하나 있다면, 그 이상한 세계를 전달하는 데 있어 무라카미 하루키가 지닌 마음가짐과 기준이 분명한 것처럼 저에게도 나름의 그 마음가짐과 기준이 시간을 들여서 쌓여가길 바란다는 점입니다.
그게 심플한 전달이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아주 구체적인 묘사가 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저라는 사람의 분위기와 적절한 어울림을 가졌으면 합니다.
그건 아무래도, 글을 전달하는 한 명의 글쓴이로서는 아주 기분 좋은 감정일 테니까요.